군부대 야산까지 털렸다… 동물구조협회가 ‘밤’ 단속하는 이유?
“식량 지켜야 동물 지켜”
밤 채취 단속현장 동행記
“거기서 뭐하세요?”
날카로운 철책 위에 ‘위험 접근 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다. 뒤에는 바리케이드까지. 경기도 파주 군부대 인근 민간인 통제 구역.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에도, 누군가에게는 ‘노다지’다. 조심스레 철책을 넘어 10분쯤 걷자 야산이 나왔다. 무수한 밤껍질이 바닥에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이미 알맹이는 다 털린 상태. 사람의 짓이었다. 근처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났다. 웬 부부가 열심히 밤송이를 깐 뒤 비닐봉투에 넣는 중이었다. 단속에 나선 김종호 경기도동물구조관리협회장이 “동물들 먹이 빼앗는 불법 행위”라고 계도하자, 남자가 “밤이 이렇게 많은데 어차피 짐승들도 다 못 먹는다”고 대꾸했다. “방금 왔다”는 말과 달리 이들 손에 들린 대용량 비닐봉투는 이미 불룩했다.
◇탐욕의 계절… 괜히 전과자 됩니다
수확의 계절, 그러나 이것은 절취다. 그냥 산에 떨어져 있어도, 엄연히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일 경기도 양주 비암리에 있는 노야산(337m)을 찾았다. 사격 등 군대 훈련장으로 이용되는 땅이다. 그러나 곳곳에 나붙은 ‘민간인 출입 금지’ 현수막이 무색하게 산기슭에 승용차가 여럿 세워져 있었다. 김 회장은 “밤 주우러 온 사람들”이라며 “도토리 같은 건 일주일이면 씨가 마른다”고 했다. 산에 오른 지 채 20분도 안 돼 4팀을 단속했다. 모두 서울에서 온 원정객이었다. 인근의 한 농장 주인은 “절정은 지난주였는데 추석 무렵엔 자루째 들고 내려오는 등산객이 매일 100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공단 홈페이지에는 “인간의 탐욕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이는 계절이라 이 시기에는 산에 오기가 무섭다”는 민원 글이 올라와 있다.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경기도동물구조관리협회는 5년 전부터 가을마다 도내 야산을 돌며 단속을 벌인다. 식량을 지키는 게 동물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밀렵 단속만큼이나 중요한 업무다. “밤·도토리는 야생동물이 겨울을 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양식입니다. 먹을 게 없어지면 멧돼지가 민가로 내려와요. 결국엔 사람이 피해를 입죠.” 산림청도 이달 31일까지 불법 행위 집중 단속을 시행한다. 식물 무단 채취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입산 금지 구역에 들어가기만 해도 2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공짜’ 욕심냈다가 도리어 지갑이 탈탈 털릴 수 있는 것이다.
◇“몰랐어요” 그런데 복장은 프로페셔널
드넓은 산을 전부 뒤질 수는 없는 노릇. 요령이 있다. 주차된 ‘자동차’를 노리는 것이다. 빈 차는 차주가 산에 올라갔다는 증거. 내려오길 기다리거나, 따라 올라가 보면 백이면 백, 그들은 밤과 함께였다. 한 남성이 군복까지 갖춰 입은 채 7인승 승합차 트렁크에 뭔가를 싣고 있었다. 급히 달려가 살펴보니 밤이 두 박스, 실한 양지버섯까지 살뜰히 챙겨놨다. “불법”이라고 하니 즉각 “몰랐다”고 한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 한결같은 반응이다. “바람 쐬러 나왔다가 재미 삼아 주워봤다”는 것. 그러나 복장은 프로급이었다. 모자에 장화, 목장갑, 보통은 휴대할 일이 없는 마대 자루나 대용량 비닐봉투까지. 김 회장은 “출입 금지 지역까지 들어와놓고 몰랐다는 건 거짓말”이라며 “그래도 웬만하면 잘 타일러 보낸다”고 말했다.
근처 군 진지(陣地) 내부 야산에도 어김없이 밤을 챙겨가려는 사람들이 차를 몰고 들어와 있었다. 대개 중·노년층이었다. 협회에 사법권은 없지만 현장 촬영 및 인적 사항 확보를 통해, 정도가 심한 경우 다음 날 경찰에 신고한다. 종종 주운 밤이나 도토리를 쏟아버린 뒤 오히려 적반하장식으로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야박하게 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채취가 계속되면 동물에게는 치명적”이라고 김 회장은 말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임산물 불법 채취로 형사 입건된 사람은 2017년 118명, 2018년 152명, 2019년 220명, 2020년 233명, 2021년 232명 등으로 집계됐다. 요새는 드론을 띄우고, 증거 확보를 위해 ‘액션카메라’ 등의 장비도 활용하는 추세. 실종 및 사망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도 경북 성주에서 80대 여성이 산에서 미끄러져 변을 당했다. 도토리를 주우러 나선 길이었다.
◇도토리묵 쑤러 대학 캠퍼스로?
삼림 울창한 대학 캠퍼스, 도토리묵 재료를 구하려는 발걸음이 잇따른다. 신촌 연세대 학생들이 ‘도토리 수호대’를 조직해 운영하는 이유다. 지난해 학교 측이 숲이 우거진 청송대(聽松臺) 주변에 CCTV를 추가 설치했을 정도로 도토리를 주워가려는 외부인이 늘었다. 활동 4년 차 대원 지수원(23)씨는 “대학 시설처 지원을 받아 금지 현수막 등을 설치하고 짬짬이 시간을 내 학교 구석구석 단속을 나선다”고 말했다. 평일 오후에도 매일 5명, 주말에는 10명 이상 도토리 털이 장면을 목격한다. “간혹 폭언을 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별것도 아닌 걸로 유별나게 군다는 식이죠.”
그러나 실제로 대학 뒤편 안산(鞍山)에서 먹이를 찾아 멧돼지가 내려오고, 캠퍼스 내 청설모 로드킬이 발생하는 등 안전사고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 그래서 설치한 것이 ‘도토리 저금통’이다. 신촌 캠퍼스에만 4개가 놓여 있다. 길에서 주운 도토리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이 저금통에 넣어두면, 수거해 냉장 보관해 뒀다가 다시 숲에 뿌려주는 것이다. ‘도토리 저금통’은 2013년 당시 한국로드킬예방협회가 울산에 처음 시범 설치했다. 산에 먹이가 많으면 굳이 야생동물들이 도로를 건너지 않을 것이고, 차에 치이는 비참한 죽음도 감소할 것이라는 아이디어였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 등 대학뿐 아니라, 북한산국립공원 등으로 예금주가 늘어났다.
◇이제는 ‘잣’ 시즌… 개구리까지 싹쓸이
다시 파주로. 한 외곽 도로에서 남녀 한쌍이 승용차 트렁크를 열고는 커다란 군용 더플백을 싣고 있었다. 딱 봐도 수상한 움직임이었다. 김 회장이 차량 사이렌을 울리며 멈춰 세웠다. 열어보니 ‘잣’이었다. 더플백 2개, 마대자루 5개 한가득. “집에 누워 있는 어르신 죽 쒀드리려고 그랬다”고 이들은 말했다. 잣철, 이제 잣나무의 수난이 시작될 예정이다. TV 방송 등을 통해 이른바 ‘자연인’의 산중 생활이 여유의 기쁨을 선사하면서 임산물 채취가 건강한 취미로 인식되고 있지만, 산림청에 따르면 그 자연인들조차 무허가 채취로 단속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하산하는 길, 낙엽 밑에서 뭔가 팔짝 뛰어올랐다. 북방산개구리였다. 동면에 들어가는 다음 달이 되면, 이제 ‘꾼’들의 표적은 도토리·밤·잣에서 이 개구리로 바뀌게 된다. 약재로 인기가 좋다고 한다. 김 회장은 “㎏당 15만원 정도 하다 보니 마구잡이 포획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심지어 예쁘장한 돌까지 산에서 나는 건 죄다 가져다 팔고 있습니다. 사람 욕심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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