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배 비싼 암표... 법으로 못 막자 가수들이 ‘암행어사’ 노릇까지

이혜운 기자 2023. 10. 1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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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티케팅 전쟁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팬인 김모(39)씨는 지난달 19일 회사에 반차까지 내고 다음 달 열리는 뮌헨 필하모닉 예술의전당 내한 공연 티케팅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오픈과 동시에 접속해 클릭했지만 “이미 선택한 좌석”이라는 메시지만 떴다. 그리고 한 시간 뒤 김씨는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에 접속했다가 분노하고 말았다. 티켓을 되판다는 글이 우수수 올라왔던 것이다. 정가 8만~36만원인 티켓은 재판매 가격 시작가가 140만원부터였다. 김씨는 “전문 암표상들이 매크로(자동 입력 반복) 프로그램을 돌려 티켓을 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현상”이라며 “팬들 사이에서 티케팅에 성공한 일반인은 ‘하늘이 내리신 분’이라고 부른다. 매크로상들 다 잡아 처벌할 수는 없느냐”고 물었다.

지난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왼쪽)과 29년 만에 정규 리그에서 우승하고 잠실 야구장에서 세리머니를 한 LG트윈스. 티켓이 초고속 매진돼 암표가 돌았다. /조선일보DB, 뉴스1, 그래픽=송윤혜

‘10월 6일 금요일 |  구역| 네이비석 1장 60만원’

프로야구 LG트윈스가 29년 만에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하고 처음으로 안방인 서울 잠실야구장으로 돌아와 우승 세리머니를 하기로 예정된 지난 6일 기아타이거즈와의 경기. 초등학교 때부터 LG 팬이었다는 김모(45)씨는 티켓을 사기 위해 앱에 접속했다가 깜짝 놀랐다. LG트윈스 공식 앱과 티켓링크에서는 일찌감치 매진됐지만, 티켓 거래 사이트 ‘티켓베이’에는 20~40배가 뛴 가격으로 판매 중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벌써부터 티켓값이 이렇게 상승한 걸 보니 한국시리즈 티켓 사기가 두렵다”며 “구단에서는 이런 암표상들을 좌시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의 질문에 답하자면, 둘 다 잡을 수 없다. 온라인에서 티켓을 되파는 행위도, 매크로를 이용해 티케팅을 하는 것도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오늘도 티케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온라인 암표가 합법이라고?

‘해도 해도 너무한다.’

티케팅에 참전한 팬들의 마음이다. 과거에도 암표는 없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규모가 커진 중고 거래 사이트와 소셜미디어 등을 중심으로 더 많은 양이 빈번히 거래된다. 유명 내한 가수 공연은 정상 티켓 가격에 ‘0′이 하나 더 붙는 게 기본이다. 오는 20일 열리는 팝스타 찰리 푸스의 공연도 티케팅 직후 그런 가격으로 거래됐다. 특히, 지난달부터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이 공사에 들어가면서 큰 내한 공연들이 규모가 작은 곳에서 열리는 바람에 티케팅 전쟁은 더 살벌해지고 있다.

비정상적으로 티켓이 매진되고 가격이 뛰는 것은 전문 온라인 암표상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티켓을 대량 매입하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매입된 티켓들이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곳은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다. ‘#티켓’, ‘#아옮(아이디옮기기라는 뜻으로 티켓의 소유자를 바꾸는 것)’ 등의 해시 태그로 수 초마다 올라온다. 엑스의 아이디는 별도의 인증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에 추적이 불가능하다. 그만큼 티켓 거래 사기도 많이 일어난다.

중고나라·당근마켓·번개장터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도 티켓 거래가 활발한 곳이다. 최근에는 암표상들의 아지트로 불리는 ‘티켓 베이’가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티켓 재거래 시장이 커지면서 지난 3월에는 네이버의 계열사 크림이 티켓 베이의 운영사 팀플러스의 지분을 확보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가수들이 암행어사!

온라인 암표 사업에 대기업까지 참전한 이유는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범죄 처벌법에 따르면, 암표 매매의 처벌 조건은 흥행장·경기장·역·나루터·정류장 등에서 웃돈을 주고 티켓을 팔 때만 가능하다. 다행히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티케팅은 지난 3월 관련법이 통과돼 내년 3월부터는 처벌 대상이 된다.

이러다 보니 가수들이 직접 암표상 잡기에 나서기도 했다. 일명 ‘암행어사’다. 아이유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는 티켓 부정 거래자로 의심될 경우 공식 팬클럽 제명 조치뿐 아니라 예매 사이트 멜론 티켓 아이디도 1년간 제한한다. 임영웅 소속사 물고기뮤직도 “최근 부정 예매 및 불법 거래가 의심되는 16개 계정을 제보받아 강제 취소 및 소명 요청 메시지를 발송했다”고 했다.

가수 성시경의 매니저는 수시로 당근마켓에 접속해 암표 거래자들을 직접 잡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데뷔 25주년 콘서트를 가진 그룹 GOD는 앞자리 스탠딩석의 경우 예매자와 티켓 소지자의 신분증을 확인해 다를 경우 입장을 막기도 했다.

아무리 법적으로 틈이 있다고 해도 대기업이 암표를 조장하는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도 많다. 패션플랫폼 무신사는 개인 간 거래 사이트 ‘솔드아웃’이 온라인 암표 거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자 지난달 티켓 부문 서비스를 출시 40여 일 만에 접었다.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회장은 “자체적으로 암표상들을 잡아도 현행법으로는 처벌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당당하다”며 “암표는 언제든 사고팔 수 있는 신발, 가방 등과 달리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용지물이 되는 시간 상품이다. 약자인 소비자의 마음을 악용한 범죄로, 법무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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