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달력’ 만들어… 근육병 환자 돕는 치과의사

오유진 기자 2023. 10.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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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세브란스병원 신수정 교수

지난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 대회의실. 신수정(51) 치과보존과 교수의 기부금 전달식이 열렸다. 신 교수는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담은 ‘치과의사의 2024 여행달력’을 만들었고, 이를 판매해 얻은 수익금 1300만원을 호흡재활센터 측에 전달했다. 기부금은 호흡재활센터를 이용하는 루게릭 등 근육병 환자들의 치과 진료에 쓰일 예정이다. 신 교수는 “치과 병원에서 근육병 환자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 치과병원에서 신수정 치과보존과 교수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담아 만든 달력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달력에는 신 교수가 지난 5년간 국내외 여러 곳을 여행하며 그린 그림이 담겼다. 프랑스 니스의 마티스 미술관, 파리 마레지구, 미국의 그랜드티튼 국립공원 등이다. 그는 “여행을 다니며 일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취미”라며 “2018년 여름 프로방스 지역을 여행하면서 풍경에 반해 색연필을 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듬해부터는 여행용 물감을 들고 다니며 그렸다”고 했다. 그는 “소소한 취미 생활이 누군가를 돕는 일로 이어질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지난 3월부터 디자인 업체 캘리엠 박서영 대표와 달력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신 교수의 그림을 본 박 대표가 달력 제작을 추천했다고 한다. 지난 7~8월 인터넷을 통해 펀딩을 했다. 295명이 후원해 당초 목표 금액(100만원)의 30배가량인 2700여 만원이 모였다. 근육병 환자를 돕는다는 취지에 공감한다는 기부자가 많았고, “달력 그림이 예쁘다”며 후원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신 교수와 박 대표는 후원금 중 달력 제작비, 배송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 전부를 기부했다.

근육병 환자들은 간단한 치과 진료도 받기 어렵다고 한다. 신 교수는 “근육의 힘이 약해서 고개를 돌리거나, 한 자세를 유지하며 의자에 누워 있거나, 입을 크게 벌리는 것 등이 어려워 충치 치료나 스케일링을 진행하기 힘든 편”이라며 “환자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기관 절개를 하거나 인공호흡기를 낀 채 생활하는데, 종일 호흡기를 착용하다 보니 치아 배열이 많이 틀어져 있다”고 했다. 신 교수는 “호흡재활센터에서 어렵게 진료받는 근육병 환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부를 진행했다”며 “근육병 환자들의 치과 치료에 작은 희망과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날 기부금 전달식에 참석한 강성웅(64) 호흡재활센터장은 “근육병 등 희귀 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호흡을 하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의료진들이 이 부분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 때문에 환자들이 치아 배열이 고르지 않아 밥을 먹기 불편한 점 등 일상의 어려움을 놓치곤 하는데, 신 교수가 그런 점에 관심을 기울여줘서 고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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