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는 ‘오래된 미래’다
[아무튼, 레터] 흰 지팡이의 날
“사람은 둘인데 다리가 여섯이어서 죄송합니다.” 철학자 김형석(103) 교수 집에 노부부가 방문하면서 이렇게 인사했다고 한다. 둘 다 지팡이를 짚고 와 미안했던 모양이다. 김 교수는 “나도 때가 되면 지팡이를 짚고 걸으면서 ‘늙으니까 두 다리가 모자라 셋이 되었습니다’라고 농담할 용기를 내야겠다”고 했다.
지팡이를 짚는다는 것은 자기 신체만으로는 걷기 힘들다는 뜻이다. 스스로 서는 자립(自立)이 어렵다는 뜻이다. 등산할 때 쓰는 지팡이는 논외로 밀쳐두자. 누군가 지팡이 또는 목발을 사용한다면 그는 아마도 노인이나 장애인, 아픈 사람일 것이다.
10월 15일은 ‘흰 지팡이의 날’. 시각장애인의 상징이자 자립의 도구가 흰 지팡이다. 국내 등록 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은 25만여 명으로 약 10%를 차지한다. 흰 지팡이의 날은 평소에도 그들을 배려하며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자는 뜻을 담고 있다. ‘아무튼, 주말’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촉각 디스플레이를 개발한 ‘닷(dot)’ 창업자의 스토리를 B8면에 실었다.
이번에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최영민씨는 열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를 절단했다. 40년 가까이 목발을 짚고 살아왔다. 이 ‘외다리 떡장수’는 “제가 걸음이 빨라요. 다리가 세 개라 유리하죠”라고 할 만큼 명랑하다. 위풍당당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는 그는 “삶의 문제를 하나씩 돌파해 나가는 게 재미있다”며 “다리 하나 없다고 절망할 일인가요?”라고 되물었다.
지난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었다. 김형석 교수 집에는 100세 때 선물 받은 대통령 명의의 ‘청려장(靑藜杖)’을 포함해 사용하지 않는 지팡이가 네 개나 있다. 모두 ‘장롱 지팡이’ 신세다. 아직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걷는다는 김 교수는 “내 나이에 지팡이를 짚게 되면, 몇 해 뒤엔 휠체어를 타게 되고 그 후에는 외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했다.
신화 속 스핑크스는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은?’이라는 수수께끼로 기억된다. 인간의 일생은 사실 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백세 시대라고는 해도 노년만 길어진다. 청년도 살다 보면 언젠가 노인이나 장애인이 될 것이다. 지팡이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오래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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