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리커창도 출신인데…中 공청단, 시진핑 나팔수로 전락

이벌찬 베이징 특파원 2023. 10.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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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벌찬의 차이나 온 에어]
위챗·웨이보 등 팔로어만 8억명
청년 불만 잠재우기 연일 홍보전
지난 10월 1일 중국 국경절을 맞아 공청단이 1780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웨이보 계정에 올린 랩 뮤직비디오./웨이보

중국공산당 산하 최대 청년 조직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올해 10월 1일 국경절을 기념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화하(華夏)’란 제목의 랩 뮤직비디오를 올렸다. 랩은 ‘세계의 중앙’ ‘자랑스러운 가슴’ 등 애국적 수사(修辭)로 가득 찼고, 마오쩌둥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설 육성도 들어가 있었다. 랩을 부른 가수는 팬 층이 두꺼운 유명 래퍼 GAI(본명 저우옌)였다.

중국에서 한때 강력한 정치 세력이었던 공청단이 ‘시진핑의 선전 부대’로 변화하고 있다. 2016년부터 시진핑이 지시한 ‘공청단 개혁’과 지난해 ‘공청단 대부’ 후춘화 당시 부총리의 지위 강등으로 조직의 입지가 대폭 약화된 영향이다.

1920년 설립된 공청단은 공산당 내 청년 간부를 양성하고, 청년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조직이다. 공청단에서 간부 활동을 한 엘리트들이 중국 지도부에 대거 진입하면서 한때 ‘공청단파’라는 거대 정치 파벌이 형성되기도 했다. 14~28세가 가입 가능하고, 작년 말 기준 단원 수는 7358만명에 달한다.

중국판 콤소몰은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이고 줄여서 공청단이라고 부른다. 공청단 휘장 위의 붉은색 깃발과 황금색 별은 혁명의 승리를, 아래 원 왼쪽의 밀이삭은 농민을, 원 오른쪽의 톱니는 노동자를, 원 내부의 떠오르는 태양과 햇살은 공산당의 돌봄을 상징한다. 중국공청단(中国共青团)은 모택동의 글씨이다.

그러나 공청단은 이제 세력 확장보다 청년 대상 선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주업무가 대중 홍보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공청단은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웨이보(중국판 트위터)·비리비리(중국판 유튜브)·더우인(중국판 틱톡) 등에 26개 소셜미디어 계정을 개설했다. 팔로어 수를 모두 합치면 8억명이 넘는다.

2020년 2월에는 공청단이 소셜미디어에서 ‘가상(virtual) 아이돌’을 내세워 국가 정책을 홍보하려다 거센 비판을 받고 철회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당시 발표한 남자 캐릭터는 훙치만(紅旗漫), 여자 캐릭터는 장산자오(江山嬌)였다. 두 이름 모두 마오쩌둥의 시에서 따왔는데, 훙치만은 ‘펄럭이는 오성홍기’, 장산자오는 ‘아름다운 중국 강산’을 뜻한다. 그러나 코로나가 확산되는 비극 속에 장난스러운 홍보 수단을 내놓았다는 지적을 받고 5시간 만에 폐기됐다. 2021년에는 공청단 허베이성 지부가 중국 유명 록밴드 ‘만능청년여관’의 대표곡을 개사한 애국 노래를 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체조·스트레칭 영상을 각종 계정에 주기적으로 올리고 있다.

지난해 3월 양회(兩會) 기간에는 웨이보에서 ‘퇀퇀(團團)에게 알려주세요’란 코너를 운영했다. 친숙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공청단의 마지막 글자인 ‘단’의 중국어 발음’ 퇀’을 두 번 반복한 별칭을 썼다. 중국에선 귀여운 애칭을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 부른다. 지난 5월 31일에는 지린성 선전(홍보)부장인 아둥(阿東)이 공청단 일인자인 중앙서기처 제1서기(장관급)에 올랐다.

중국 지도부는 코로나 방역 해제 이후 공청단에 ‘청년 불만 잠재우기’란 새로운 임무를 부여했다. 3년여 동안 이어졌던 코로나 봉쇄, 치솟는 집값, 실업률 증가 등으로 청년들이 ‘탕핑(무기력증)’에 빠진 상황에서 이들의 사기를 높이고 ‘홍색 사상’으로 무장하라고 한 것이다. 시진핑은 지난해 5월 공청단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서도 “공청단은 중국 청년운동 선봉대, 당의 충실한 조수, 믿을 만한 예비군으로 청년을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공청단은 원래 중국의 ‘지도자 양성소’로 불릴 만큼 강력한 정치 세력이었다. 공청단파는 시진핑 집권 초기에는 시진핑이 속했던 ‘태자당’의 견제 세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 시진핑은 공청단 전면 개혁을 선포하고 조직 체계와 역할, 인적 구성을 바꿨다. 공청단 예산은 전년보다 51% 줄어든 3억627만위안(약 565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공청단의 힘이 결정적으로 한 번 더 꺾인 계기는 지난해 10월 공청단 세력의 상징이었던 후춘화(胡春華) 당시 부총리가 최고 지도부(상무위원 7인)에 오르지 못하고 중앙위원(서열 상위 205명)으로 강등당한 것이다. 그의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나면서 후야오방·후진타오·리커창 등 공청단 수장 출신을 중심으로 이어진 중국 최고 지도부의 계보가 사실상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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