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흡혈귀가 질문한다,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지
밤이 오면 우리는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140쪽 | 1만4000원
“당신은 당신이 인간인 걸 어떻게 알아요?”
냄새나는 화장실. 인조인간 ‘빌리’가 묻자, ‘나’는 답하지 못한다. 사람의 피를 마시는 흡혈인이기 때문이다. 둘은 ‘빌리’가 탈출한 인조인간 제조 시설을 파괴하러 가는 길이다. 둘의 공통점은 기계 편이 아니라는 것.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빌리’는 스스로를 인간이라 생각하도록 만들어졌다. ‘나’는 기계의 공격을 받아 죽을 위기에서 흡혈인이 되며 살았다.
소설은 인간이 아닌 두 존재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조건에 대해 질문한다. 세계에 ‘안전장치’가 구축됐다는 설정. ‘안전장치’는 각국이 이권을 주장하며 핵전쟁 위협이 커지자, 인간이 아닌 기계가 판단해 모든 살상 위험을 차단하도록 만든 체계다. 그러나 기계는 ‘인류가 살아남는 한 다른 생명체에 위협이 될 것’이라 판단한다. 인간은 살아남으려면 기계의 선택을 받아 따르고, 숨어 지내는 인간을 찾아 죽여야 한다. 이에 대항하는 세력이 흡혈인. 탄생 배경은 불분명하지만, 강력한 힘으로 자신들을 없애려는 기계와 그 추종자들을 없앤다. 이미 수많은 인간을 죽인 ‘나’는 ‘빌리’를 만난 후에야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미 떠나간, 소중한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작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의 신작. 현대문학의 중편 분량 소설인 ‘PIN 장르’ 시리즈 1번이다. “기계 숭배자의 모자가 벗겨지며 머리카락이 입안 가득 씹혔다”처럼 사실적인 묘사가 전하는 비릿함이 책장을 빠르게 넘어가게 한다. ‘인간성’이란 주제는 이미 숱한 SF소설에서 다뤘지만, 이 지점만큼은 차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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