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지옥… 어린이·아기까지 왜 전쟁의 일부가 돼야 하나요”
텔아비브 현장 정철환 특파원 르포
“이제 받은 것을 되돌려줄 때가 왔다.” 13일(현지 시각) 아침 텔아비브 시내는 또다시 긴장감에 휩싸였다. 부상자들이 치료받고 있는 수라스키 메디컬 센터 앞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던 택시 기사 우리아(46)씨는 “드디어 군이 가자 지구에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라디오에선 “수일 내 가자 지구에서 대규모 작전이 벌어질 것”이라며 “가자 지구, 특히 그 중심가인 ‘가자시티’의 민간인은 즉시 대피하라”는 이스라엘군 발표가 반복해 나왔다.
지난 7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전쟁이 터진 가운데 이스라엘은 지난 10일부터 가자 지구 근방에 병력 36만명과 탱크 수천 대를 집결시키고 하마스 소탕을 위한 가자 지구 진입을 준비해왔다. 유엔은 이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 주민 110만명에게 ‘24시간 안에 남쪽으로 이동하라’고 통보했다”며 이스라엘군의 작전 개시가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확인했다.
가자 지구 중심 도시 가자시티는 하마스가 지난 20여 년간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요새’로 만든 곳이다. 9년 전 이곳에 직접 투입됐던 한 예비군은 “미로 같은 골목, 거미줄처럼 뻗은 땅굴, 수많은 부비 트랩(인명 살상용 덫) 등이 많은 정글 같은 곳”이라며 “잡혀간 인질과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인간 방패로 쓰이면서 악몽 같은 시가전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단 시가전이 시작되면 현재 약 3000명인 양측 사망자가 순식간에 1만명에 육박하리란 전망도 나온다.
하마스는 7일 이후 이스라엘에서 150여 명을 납치하고 “이스라엘이 예고 없이 가자 지구를 폭격한다면 인질을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가족이 납치당한 이스라엘인들은 지상군 진입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야니브 야코프(46)씨도 그중 하나다. 형과 형수, 조카 둘 등 가족 넷이 납치당한 후 눈물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12일 밤늦게 전화로 들었다. 그는 “부디 가족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한국 국민들도 인질 석방을 위한 국제 여론에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
편집자 주: 본지는 12일 밤(현지 시각) 야니브 야코프(46)씨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우리의 애통한 심정을 한국의 많은 선한 이에게 자세히 전해달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 육성 편지 형식으로 싣는다.
저는 야니브 야코프입니다. 가자 지구 북쪽 ‘간 야브네’란 소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하마스의 민간인 납치 피해자입니다. 형 야이르 야코프(59)와 형수 메이라브 탈(54), 형의 두 아들(16·12세)은 7일 아침 ‘니르 오즈’ 키부츠(집단농장)의 집에서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됐습니다.
그날 오전 8시 45분쯤, 형과 통화할 때만 해도 형은 대피소에 있었습니다. 조카들은 다른 키부츠에 놀러 가 있었고, (다른) 조카딸은 남자 친구와 키부츠의 다른 집에 있었습니다. 대피령이 내래면 즉시 어디든 피해야 했기에 형은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대피령이 해제되는 대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오전 9시 20분쯤, 형수가 음성 메시지를 보내 왔습니다. “테러리스트들이 집에 들어와 총을 쏘고 있어요. 야이르가 대피소 문을 붙잡고 그들이 못 들어오게 막고 있어요.” 말 그대로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그 메시지 이후 형과는 완전히 연락이 끊겼습니다. 전화와 문자, 심지어 ‘잃어버린 전화 찾기’ 기능 등 온갖 방법으로 접촉을 시도해봤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날 오후, 최악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형의 전처가 하마스 테러리스트의 전화를 받았다는 겁니다. 조카 오르(16)가 수화기 너머로 “우리 납치됐다”고 말한 후 전화는 바로 끊겼습니다. 동생 이길(12)이 “난 너무 어려!”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큰 충격과 공포를 느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조카딸과 남자 친구는 다행히 이스라엘군에 구출됐습니다. 조카딸과 아이들 엄마는 이 비참한 상황에 목 놓아 울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소재를 알아내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지 확인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군과 경찰, 인권 단체 등 관련된 곳은 닥치는 대로 찾아가 정보를 줬습니다. 우린 소셜미디어에도 사진을 올리고 “혹시 사진을 보신 분이나 정보를 가지고 계신 분이 있으면 연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30시간 넘게, 이 끔찍한 악몽 속에서 허우적댔습니다.
일요일 저녁, 형의 친구가 전화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야이르가 납치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봤다”는 겁니다. 비디오에는 하마스의 조직적 납치 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형이 필사적으로 대피소 문을 붙잡고 있는데 대피소 옆방에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폭발 충격으로 문이 열리자, 안으로 난입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냈습니다. 어린아이, 여성, 노인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일부는 피를 흘리며 머리카락과 팔다리를 붙잡힌 채 짐승처럼 끌려나갔습니다. 다른 키부츠의 대피소에 있던 조카들도 이런 식으로 납치됐습니다.
이미 여러 보도로 알겠지만, 하마스는 어린이와 아기들까지, 아무 저항 능력이 없는 이들을 모두 인질로 잡아갔습니다. 이것이 반인도적 범죄, 인류에 대한 범죄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어린이와 민간인은 전쟁의 일부가 아니며, 전쟁의 일부가 되어서도 안 되고 전쟁의 ‘카드’로 쓰여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하마스는 이 무고한 사람들을 체스판의 졸(pawn)처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린 세상 누구나 부모와 형제, 가족이 있다고, 항상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살아야 한다고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하마스의 이념과 증오에 사로잡혀 자라온 그들은 달랐습니다. 무고한 아이들과 사람들을 잔인하게, 아무 감정 없이 살해했습니다. 그저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무기로 활용하려고 말입니다.
저는 다른 많은 납치자 가족을 대변해 이렇게 나섰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단 하나, 납치된 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들의 즉각 석방을 위해 전 세계가 목소리를 내주기를 애원합니다. 한국의 여러분께도 이렇게 간청드립니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기도와 국제사회 여론의 힘뿐입니다. 제 형과 형수, 내 조카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채 우리는 오늘도 지옥 같은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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