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행’들이 다 털렸다
지난 1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역 사거리. 집게가 달린 굴삭기가 은행나무를 움켜쥐었다. 커다란 진동 소리와 함께 나무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휴대폰처럼 진동을 울리자 나무에서는 순식간에 열매가 우두둑 떨어졌다. 싸리 빗자루를 든 동작구청 직원 4명이 잽싸게 달려들어 열매를 포대에 쓸어 담았다. 한 직원은 “예전에는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따다 보니 시간도 더디고, 다 따지도 못했다”며 “늘 악취가 난다는 민원에 시달렸다”고 했다. 동작구 ‘은행 열매 채취 기동반’은 이날 하루 은행나무 50여 그루를 털어 열매 2t을 채취했다.
서울의 각 구청이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 ‘은행(銀杏)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 “가을만 되면 진동하던 은행나무 열매의 악취가 사라졌다” “여기저기 밟히고 터져 거리를 더럽히던 은행 열매가 확 줄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작구는 지난 2020년 예산 1800만원을 들여 진동 수확기를 구입해 굴삭기에 장착했다. 진동 수확기는 1분당 약 800번을 흔들어 열매를 떨어뜨린다. 지난달 16일부터 지금까지 950그루의 열매를 털었다. 동작구 관계자는 “동작구에는 은행나무가 2300그루나 있어 진동 수확기가 없을 때는 애를 먹었다”고 했다.
서대문구는 열매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그물망을 설치했다. 떨어지는 열매가 한곳으로 모이도록 깔때기 모양의 그물망을 매달아 주 1회씩 수거한다. 지난달부터 개당 100만원씩을 들여 34개의 그물망을 달았다.
은행나무 열매는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초 익어서 떨어진다. 떨어지는 동시에 터지기도 하고, 시민이나 차량이 지나면서 밟아 터지기도 한다. 이때 열매 속 단백질 성분이 부패되면서 비릿한 특유의 악취를 풍긴다. 은행나무는 수나무와 암나무가 구분되는데,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린다.
열매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 따는 것이 관건이다. 올해는 구청들은 반 박자 빠르게 열매 채취에 나섰다. 예년에는 10월이 돼야 작업을 시작했는데 올해는 2주 빠른 지난달 중순부터 진행했다. 총지휘는 서울시가 맡았다. 각 구청에 ‘은행 열매 채취 기동반’ 설치를 권고하고, 열매 채취를 위한 별도의 예산을 지원했다. 채취 방법이나 도구 등도 지원한다.
광진구는 ‘원천 봉쇄’를 택했다. 열매가 열리는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올해만 광진구에 있는 암나무 353그루 중 88그루를 수나무로 바꿨다. 광진구는 2025년까지 은행나무를 모두 수나무로 조성할 계획이다. 강남구도 내년 상반기까지 암나무 200그루를 수나무로 교체할 예정이다. 은행나무 가로수를 전부 느티나무로 교체한 구청도 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암나무에도 아예 열매가 열리지 않게 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 4월부터 암나무와 수나무의 접목 실험에 들어갔다. 높은 가지에 접붙이는 고접(高接), 칼로 자국을 내 접붙이는 박피접(剝皮接)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해 열매가 열리는지를 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접붙인 가지들이 열매를 맺을 만큼 자라봐야 효과가 있는지를 알 수 있겠지만, 접목 실험 결과가 좋으면 서울 전역의 은행나무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은행나무는 병충해에 강하고 공기 정화 능력이 뛰어나 1980년대 서울 시내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 서울의 가로수는 총 29만6000그루인데, 이 중 3분의 1이 넘는 10만4000그루가 은행나무다. 2011년 11만5000그루에서 10여 년 만에 1만 그루 넘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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