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 체력 필요” vs “땀 흘려야”… 스포츠 기준 놓고 갑론을박
e스포츠가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국제종합대회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e스포츠 같은 마인드스포츠도 스포츠로 인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마인드스포츠를 둘러싼 각종 논란을 살펴봤다.》
40대 스포츠 팬 J 씨의 이야기다. 종합국제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e스포츠가 정식종목 지위를 얻은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보면서 이와 비슷하게 생각한 이들이 적지 않다. 바둑이 처음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 된 2010년 광저우 대회 때도 ‘바둑이 정말 스포츠가 맞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특히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한국 남자 선수는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돼 군 복무를 사실상 면제받기 때문에 e스포츠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병역 혜택을 주는 게 옳은 일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리그오브레전드’(롤) 금메달을 따면서 예술체육요원 자격을 얻은 ‘쵸비’ 정지훈(22)이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인터뷰하면서 논란이 더욱 불타올랐다.
● 몸을 얼마나 써야 스포츠일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 한국 대표로 참가한 15명은 모두 남자였지만 e스포츠는 사실 성별에 관계없이 참가할 수 있는 종목이다. 성별에 따라 세부종목을 나누지 않는 아시안게임 종목은 e스포츠와 승마뿐이다. 공교롭게도 승마 역시 ‘말이 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따라다니는 종목이다. 일본 승마 대표 호케쓰 히로시(82)는 71세였던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호케쓰가 역대 최고령 올림픽 출전 기록 보유자는 아니다. 오스카르 스반(1847∼1927)이 1920년 안트베르펜 대회 때 73세에 스웨덴 사격 대표로 출전한 게 기록이다. 사격도 ‘몸을 많이 쓰는 종목’이라고 하기는 쉽지 않다.
운동선수 사이에서도 ‘몸을 그렇게 안 쓰는데 그 종목이 스포츠냐’라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축구 선수 상당수는 ‘야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1988년 서울 올림픽 유도 남자 60kg급 금메달리스트인 김재엽 동서울대 교수(60)는 “격투기를 했던 사람에게 축구는 일종의 레크리에이션”이라고 말한다. 물론 야구 선수들도 “야구는 경기장에서가 아니라 경기 전에 땀 흘리는 종목”이라면서 ‘우리도 몸을 쓴다’고 주장하기 바쁘다. 반면 마인드스포츠는 경기 전에도, 경기 중에도 땀 흘릴 일이 거의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 마인드스포츠도 스포츠일까
물론 신체 활동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더 우위다. 김홍식 한국체대 교수(스포츠청소년지도학)는 “활동량이 적은 편인 양궁, 사격도 시위를 당기고 격발을 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근력 훈련을 필요로 한다. 신체 활동이 수반되지 않는 마인드스포츠를 스포츠로 인정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용배 단국대 교수(스포츠경영학)는 “신체 활동이 있어야만 스포츠로 인정한다는 과거의 정의(定義)를 고집하기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정의란 없다”며 “마인드스포츠도 정해진 규칙에 따라 승부를 벌이는 구조가 다른 스포츠와 똑같기 때문에 스포츠로 인정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해외에서도 ‘그때그때 달라요’다. 2015년 잉글랜드브리지협회와 잉글랜드체육회는 ‘브리지는 스포츠인가 아니면 그저 카드 게임인가’를 놓고 법정 싸움을 벌였다. 브리지협회에서 ‘체육회가 가맹 단체에 나눠주는 체육진흥복표(스포츠토토) 수익금을 우리에게도 줘야 한다’고 주장한 게 발단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 법원은 “브리지는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WADA에서 브리지 선수에게 징계를 내릴 수 있는 건 WBF 역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공인 단체이기 때문이다. 세계체스연맹(WCF)도 IOC 공인을 받았다. 이론적으로는 브리지와 체스 모두 올림픽 정식종목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다. 두 단체는 마작, 바둑, 샹치, 체커(드래프트), 카드 게임, e스포츠 등 6개 종목 국제기구와 함께 국제마인드스포츠협회(IMSA)를 만들어 운영 중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도 올림픽에 꼭 몸을 쓰는 종목만 있었던 건 아니다. 1912년 스톡홀름 대회 때부터 1948년 런던 대회 때까지는 올림픽에 건축, 음악, 문학, 조각, 회화를 종목으로 거느린 ‘예술’ 경기가 있었다. 스포츠를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심사한 뒤 금, 은, 동메달을 주던 이 경기가 올림픽에서 빠진 건 몸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프로 선수’가 참가한다는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 대회 이전까지는 아마추어 선수만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 e스포츠는 올림픽 종목이 될 수 있을까
IOC는 대신 사이클, 야구, 양궁, 요트, 태권도 등 기존 스포츠 형식은 유지하면서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접목한 ‘버추얼 스포츠(virtual sports)’ 보급에 힘쓰고 있다. 태권도를 예로 들면 선수가 몸에 움직임을 인식하는 센서를 붙인 채 가상 공간에서 상대 선수와 겨루기를 벌이는 식이다. IOC는 이미 ‘올림픽 e스포츠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버추얼 스포츠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문제는 버추얼 스포츠가 팬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올림픽 e스포츠 시리즈 온라인 시청자 수는 ‘최다’ 접속 순간을 기준으로 2만2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열린 ‘롤 월드챔피언십’(롤드컵)은 ‘평균’ 시청자가 82만6000명을 넘었다. 롤이 가장 인기가 높고 인구도 많은 아시아권 시청자는 시간대가 맞지 않아 ‘본방 사수’에 애를 먹었는데도 그랬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올림픽도 e스포츠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청년들이 온라인 배틀 게임 ‘도타’ 선수로 함께 뛰는 ‘팀 스피릿’ 이야기를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서로를 ‘진정한 친구’라고 부르는 이들은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우리는 모든 전쟁과 폭력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면서 “e스포츠야말로 탁월함(excellence), 우정(friendship) 그리고 존중(respect)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보도했다.
2021년 연임에 성공한 바흐 위원장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라고 쓰던 올림픽 표어에 ‘다 함께’를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그해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IOC 총회에서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127년 만에 올림픽 표어가 바뀌었다. e스포츠는 ‘다 함께’에도 잘 맞는다는 의견도 들렸다. 이유찬 전남과학대 e스포츠융합학과장은 “장애인들에게 e스포츠는 장벽이 없는 스포츠”라며 “비장애인과 달리기로 경쟁할 수는 없어도, 게임 안에서는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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