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불감증의 여당…민심보다 권력 눈치

김효성.박태인.전민구 2023. 10. 14.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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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완패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서는 13일에도 구체적 액션이 나오지 않았다. 보수 진영 안팎에서 쇄신론이 분출하고 있지만 당 지도부는 누구도 자신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 선거 참패에도 여전한 민심 불감증에 반성마저 실종된 여당의 모습에 “권력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만 매달리는 보수 정당의 폐습이 또다시 기어나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전 9시부터 국회 본관 집무실에서 당 지도부와 일대일 면담을 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병민·김가람·장예찬·강대식 최고위원이 차례로 김 대표와 얘기를 나눴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면담 후 “수도권 민심과 유권자들이 국민의힘을 바라보는 시각을 그대로 말씀드렸다”며 “수도권 유권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당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장 최고위원은 “지도부가 먼저 국민과 당원께 반성하고 쇄신 의지가 있다는 걸 강도 높게 보여드리는 게 위기를 수습하는 길이라고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2시간40분의 면담을 마친 뒤 사무실을 나선 김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이번 선거로 나타난 민심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논의했다”며 “당 체질을 어떻게 개선해야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도 앞으로의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15일로 예정된 의원총회 전후로 혁신위원회와 인재영입위원회·총선기획단 등을 띄우는 쇄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이 같은 쇄신안에 대해 “국민이 보기엔 ‘턱도 없는 방안’일 것”이란 말이 벌써부터 나온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아무 권한도 없는 ‘혁신위 쇄신안’을 거론하는 건 현재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지 모른다는 의미”라며 “명망가를 위원장에 앉혀도 국민에겐 크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지도부 거취에 대해서는 이날도 아무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김 대표는 자신의 사퇴는 물론 김태우 후보 공천을 주도한 이철규 사무총장과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등 임명직 당직자 교체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비공개 면담에서도 최고위원 자진 사퇴 등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권 인사는 “지도부에서 비대위 구성이나 김 대표에게 책임이 있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김 대표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대위 가면 혼란 부를 것” vs “김기현 간판으론 총선 어려워”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전남 목포시 공생원에서 열린 공생복지재단 설립 9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손뼉을 치고 있다. 윤 대통령 왼쪽은 에토 세이시로 일본 자민당 의원. 김현동 기자
국민의힘 지도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비대위 체제로 급격히 전환될 경우 당내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란 게 중론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이번 일로 김 대표가 직을 던지고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면 향후 총선 공천 과정에서 오히려 대통령실 입김이 더 세지지 않겠느냐. 그렇게 되면 속절없이 진다”며 “오히려 김 대표에게 힘을 모아 당도 쇄신하고 용산에 할 말도 하게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아무리 좋은 쇄신안을 내건들 국민 눈에 보이겠느냐”는 반론 또한 커지고 있다. 윤희숙 전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보궐선거 패배 책임이 있는 김 대표가 쇄신의 주체가 돼서는 안 된다”며 “쇄신안을 김 대표가 내놓으면 국민은 ‘이제부터 갑자기 새사람이 된다는 걸 어떻게 믿느냐’고 반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당협위원장은 “보궐선거 패배로 ‘김기현 간판’으로 총선을 치르긴 어렵다는 게 명백히 드러났다”며 “시간을 끌수록 국민의 실망감은 커지고 총선 승리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여권 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운영 기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윤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가 30%대인 상황에서 내년 총선까지 지지율이 극적으로 반등하지 못할 경우 민주당의 ‘정권심판론’이 이번 보궐선거처럼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내년 총선은 집권 3년차 선거로 사실상 중간평가 성격을 띠는 만큼 대통령 지지율이 결정적 요소”라며 “국정 기조를 지금처럼 강경 일변도로 끌고 가면 대통령 지지율이 자칫 20%대로 떨어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수도권 등 스윙보터 지역에선 필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 후 정식 기자회견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며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 형식이 아닌 정식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 정책에 대해 솔직하게 의견과 계획을 밝히면서 국민께 ‘안심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이날 보궐선거 패배와 관련해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윤 대통령이 참모진에게 당부한 메시지를 전하며 “김대기 비서실장이 국민의힘 지도부에도 윤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선거 패배와 관련해 윤 대통령 입장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 12일 “정부는 어떠한 선거 결과든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이 ‘변화’를 주문함에 따라 대통령실의 국정 기조 변화와 인적 쇄신이 뒤따를지도 주목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추석 연휴 이후 민생 중심의 정책 드라이브를 건 상황”이라며 “조만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효성·박태인·전민구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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