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로테크 기기·자력갱생 로켓…이스라엘 허 찌른 하마스 7대 전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격화
이번 사태는 하마스가 주도하는 로테크(Low Tech) 전쟁 방식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하이테크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이스라엘의 방심과 교만이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현지 일간지인 타임오브이스라엘과 파이낸셜타임스 등의 분석을 종합해볼 때 하마스는 공격 초기에 일곱 가지 핵심 전술로 이스라엘에 큰 타격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 교묘한 기만전술을 통해 이스라엘의 오판을 유도했다. 하마스는 물론 가자지구의 또 다른 무장단체인 이슬람 지하드까지 상당 기간 침묵하거나 이스라엘 공격을 자제하며 위장 평화 공세를 펼쳤다. 가자지구 노동자의 이스라엘 파견 제안까지 받아들였으니 이스라엘 보안 당국이 방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을 지낸 피터 러너는 유로뉴스에서 “이스라엘 고위 정보 당국자는 불과 몇 주 전에 ‘하마스는 대규모 공격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며 “이는 이스라엘 정보 체계에서 심각한 오판이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둘째, 은밀한 보안이다. 하마스는 휴대전화 대신 로테크 수단을 사용하는 등 철저한 통신 보안으로 디지털 감시와 도·감청을 회피하며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를 유도했다. 휴민트 대신 첨단기술에 의존하는 이스라엘의 허점을 파고든 계책이다. 셋째, 드론 사용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첨단 통신·감시망을 드론으로 가장 먼저 마비시켰다. 이스라엘은 11억 달러를 들여 가자지구 주위에 감시 카메라와 동작 감지 센서, 원격 조종 기관총 등을 갖춘 395㎞ 길이의 하이테크 울타리인 ‘철의 장벽’을 2019년 완공했는데 하마스는 이를 드론으로 공격하며 이스라엘군의 눈과 귀부터 마비시켰다.
넷째, 생활 속의 값싼 로테크 기기를 군사용으로 전환해 활용했다. 하마스는 불도저와 행글라이더·땅굴 등을 통해 첨단 무인 장벽을 뚫고 이스라엘 키부츠와 음악 축제장으로 돌격했다. 다섯째는 자력갱생이다. 수천 발을 쏜 것으로 추정되는 하마스의 로켓도 이스라엘이 과거 가자지구에 설치해준 수도관으로 발사관을, 국제 인도주의 기관 등에서 제공한 질소 비료에 함유된 질산암모늄으로 화약과 추진체를 각각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굳이 이란 등에서 배우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제조법을 익힐 수 있는 것들이다. 남들이 도와준 재료로 이스라엘군의 고도화된 군사기술을 무력화한 셈이다.
여섯째, 허점을 노린 기습 시기다. 하마스가 공격에 나선 지난 7일은 유대 명절 주간인 ‘수코트’가 끝난 직후이자 유대안식일(샤바트)이었다. 이번 사태를 ‘수코트 전쟁’으로 부르는 이유다. 이로 인해 하마스의 기습을 받은 일부 키부츠에선 이스라엘군이 출동하는 데 12~20시간이나 걸리기도 했다. 일곱째는 집중 공격이다. 그동안 하마스의 로켓 공격은 이스라엘 아이언돔에 번번이 잡혔다. 하지만 방어 용량을 넘는 다량의 로켓을 한꺼번에 쏘면 아이언돔의 방어 능력에 일시적으로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하마스는 이를 최대한 활용하며 적잖은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기습 공격이 성공했다고 해서 국면이 하마스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건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인질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크다. 이로 인해 평소 양비론을 펼쳐 왔던 유엔과 유럽연합(EU)이 비판 대열에 가세한 것도 부담이다. 이스라엘도 거국 연립 전시 내각을 꾸리고 대대적인 보복을 예고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는 제 코가 석 자다. 더욱이 이스라엘은 자국민 중 러시아 출신이 150만 명에 달하는 만큼 그동안 러시아와 특수관계를 유지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엔 미국에 양해를 구한 뒤 미국 동맹국 중 유일하게 러시아 경제 제재에서 빠지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 러시아가 깊이 개입하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하마스가 비록 ‘7대 전술’로 초기 기선 제압엔 성공했지만 앞으로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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