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진교훈 득표율, 작년 지선 때 진보+중도 비율과 같아

2023. 10. 1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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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톺아보기]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드러난 민심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운데)가 13일 오전 국회에서 국정감사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은 박대출 정책위의장. [연합뉴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민주당 진교훈 후보(56.52%)가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39.37%)를 17.15%포인트나 앞섰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총력전을 펼친 가운데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격차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파장 또한 작지 않다는 평가다. 정치권도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과 그에 따른 다양한 정치적 함의를 파악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10·11 보궐선거가 여의도 정가에 던진 메시지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야권의 정권심판론이 한층 힘을 받게 됐다. 지난 4월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내년 총선 때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권심판·견제론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지원론보다 높은 흐름을 보여왔는데 이 수치가 실제 선거 결과로 처음 확인된 것이다.

둘째, 여권의 ‘수도권 위기론’이 재점화됐다. 이번 보궐선거는 총선의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수도권의 민심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그런데 서울에서 송파구 다음으로 유권자가 많은 강서구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하면서 위기론이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특히 이번 선거의 득표율 차이가 2020년 총선 때 강서구 3개 지역구의 평균 득표율 차이(18.2%포인트)와 거의 흡사하다는 점에서 여권의 위기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 121석 중 16석을 얻는 데 그쳤던 3년 전 총선 때 민심으로 회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년 총선 때 수도권에서 최소 48석(40%)을 얻어야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데 이번 선거 결과는 이 같은 목표 달성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셋째,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 이반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김 후보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51.3%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런데 1년 4개월 만에 치러진 이번 선거에선 3만6000표 이상 적게 얻었다. 특히 중도층 민심 이탈이 눈에 띈다. 이번 보궐선거 투표율은 48.7%로 2000년 이후 대도시 기초단체장을 뽑는 재보선 평균 투표율(38.5%)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진보·보수 고정 지지층뿐 아니라 중도층이 대거 투표에 참여했다는 추론이 가능한 수치다.

주목할 부분은 지난해 지방선거 직후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유권자 이념 지형은 진보 22.4%, 중도 35.3%, 보수 37.5%였는데 진보와 중도를 합한 비율(57.7%)이 지난 11일 진 후보 득표율과 거의 같아졌다는 점이다. 여권 내부에서 “중도층 민심에 대한 특단의 대책 없이 내년 총선을 치를 경우 민주당이 압승한 2020년 총선 구도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넷째, 무리한 공천과 잘못된 판단에 따른 전략은 필패로 귀결된다는 총선의 법칙 또한 재확인됐다.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때 민주당은 ‘당 소속 공직자의 귀책사유로 열리는 선거엔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당규까지 바꾸면서 무리하게 후보를 낸 결과 큰 격차로 패했다. 그런데 이번엔 국민의힘이 똑같은 무리수를 던지며 화를 자초한 셈이 됐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김 후보가 지난 5월 유죄 판결을 받아 이번 보궐선거가 열리게 된 만큼 처음엔 무공천 입장을 밝혔지만 이후 용산 대통령실 의중이 강하게 반영되면서 결국 공천하게 됐다는 게 여의도의 정설로 통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 지도부는 단 한 명의 구청장을 뽑는 미니 선거에 매머드급 선대위를 구성하고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는 전략적 실수까지 범하면서 패배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이제 정치권의 시선은 ‘여야 정당이 앞으로 어떻게 탈바꿈할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당장 국민의힘에서는 지도부 책임론과 쇄신 요구가 분출할 전망이다. 현재 국민의힘 앞에는 세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는 게 중론이다. 첫째는 김기현 대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며 총선을 치르는 방안, 둘째는 비대위로 전환해 혁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방안, 셋째는 당의 간판을 바꾸며 새롭게 일신하는 방안 등이다.

이와 관련, 당 안팎에서는 둘째 방안의 모델로 2012년 총선 때 박근혜 비대위가 거론되고 있다. 당시 위기 상황에서 등장한 박근혜 비대위는 현역 의원 25% 컷오프 등 개혁 공천을 단행한 데 이어 경제민주화 등 진보 어젠다까지 과감히 수용한 결과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셋째 방안의 모델로는 1996년 총선 당시 ‘김영삼(YS) 모델’이 반추된다. YS는 총선을 두 달 앞두고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꾼 뒤 이회창 전 총리를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진보 진영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운 끝에 수도권에서 승리하는 등 예상 밖 성과를 거뒀다.

문제는 첫째 안의 경우 현재 국민의 눈높이로 볼 때 미봉책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여권 내에서도 “현 체제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내년 총선이 힘들어질 것”이란 우려가 적잖은 게 현실이다. 이에 더해 국민적 지지를 받는 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위촉하고 유권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개혁 공천과 민생 어젠다 발굴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보궐선거 압승으로 이재명 대표 리더십이 한층 탄력을 받게 됐지만 변수 또한 만만찮은 상황이다.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민주당 앞에도 세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첫째는 이 대표 중심으로 총선을 치르는 방안, 둘째는 친명·비명이 합의하는 비대위를 구성하는 방안, 셋째는 민주당 분당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최대 관건은 ‘공천’이다. 이 대표가 공천권을 쥐면서 공천 갈등이 확산될 경우 총선 승리는 요원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나타났듯 ‘공천 실패=총선 패배’ 법칙은 늘 유효하기 때문이다.

둘째 방안의 모델로는 2016년 총선 때 ‘문재인 모델’이 거론된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대표에서 물러난 뒤 비대위에 전권을 넘긴 문재인 대표처럼 이 대표가 합의 비대위 구성에 앞장설 경우 지지층은 물론 중도층의 호응까지 끌어낼 공산이 크다. 반면 ‘친명 감별사’ 논란 속에 내분이 격화될 경우 분당이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게 최상의 선거 전략”이란 말이 있다. 내년 총선은 좋든 싫든 ‘윤석열 대 이재명’의 3차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1차전(대선)과 2차전(지방선거)은 윤 대통령이 승리했다. 3차전 승리는 과연 누구의 몫이 될 것인가. 대한민국 총선에선 ‘절박한 자가 승리한다’는 게 불변의 법칙으로 통한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뼈를 깎는 혁신에 나서는 쪽이 향후 정국 주도권을 쥐고 총선 승리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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