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집약된 거북선, 신분 안 따진 용인술…나의 경영 교과서

황정일 2023. 10. 14. 00: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경영’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재계에서도 소문난 ‘독서광’이다.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두 권, 한 번에 세 종류의 책을 읽는 ‘123 원칙’을 30년 넘게 지키고 있다. 그의 집무실에도 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삶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선 기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생 250주년이던 1795년, 정조(재위 1776~1800) 임금은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그의 저술과 관련 기록을 모아 14권의 책으로 낸다. ‘난중일기’ ‘장계’ 등 이순신 장군이 남긴 기록을 비롯해 장군을 예찬하는 시·비명, 모든 문헌에 실려 있던 장군의 기록을 수집·집대성한 『이충무공전서』다. 장군의 공훈(功勳)은 이 책 덕에 비로소 역사에 길이 전해지게 된다. 지금도 온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이 책은 그러나 최근까지도 제대로 된 한글 번역본이 없었다. 1960년 노산 이은상 선생이 번역본을 내놨지만 미진한 점이 많다며 스스로 폐간했다.

이후 드문드문 전서 일부를 번역한 책이 나오기도 했지만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고, 작가의 해석이 담겨 있거나 번역 오류가 적지 않았다. 보다 못한 한 기업인이 나섰다.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1위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온전히 되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사재를 들여 전문가를 섭외, 전서를 번역했다. 이렇게 나온 책이 최근 출판된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이민웅·정진술 등 역주, 태학사)다. 이 책을 기획한 이는 한국콜마 창업주인 윤동한(76) 회장이다.

태학사에서 출판한 『신정역주 이충무공전서』. 한문판 원본 포함 총 4권이다. [사진 태학사]
윤 회장은 한자로 쓰인 전서를 단순히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역사학·한문학자 등 전문가를 통해 수년 간 당시의 상황을 연구하고 고증해 원본이 지닌 오류까지 바로잡았다. 비로소 ‘온전한 형태’의 『이충무공전서』가 되살아난 것이다. 윤 회장은 “대한민국은 이순신 장군이 차가운 바다에 목숨을 바치면서 지켜낸 나라”라며 “한글판 전서를 통해 그런 그의 정신이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 회장을 6일 오후 서울여해재단이 위치한 서울 서초동 석오빌딩 집무실에서 만났다. 서울여해재단은 장군의 정신을 선양(宣揚)하고 교육하기 위해 윤 회장이 2015년 설립한 곳으로, 여해(汝諧)는 장군의 자(字·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이름 외에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서울여해재단 설립, 장군의 정신 선양

Q : 나라가 진작 했어야 할 일 아닌가.
A : “주요 역사 인물이니, 그렇게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 그래서 결과가 어떤가. 전서가 세상에 나온 지 228년 만에야 제대로 된 한글책이 나왔다. 정부를 비난하자는 게 아니고, 정부는 수많은 일을 하니 정부가 챙기지 못하는 일은 민간이 하면 된다. 이런 생각에서 3년 전 (전서 번역을) 시작한 일이다.”

Q : 장군 관련 사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A : “우선 서울여해재단이 있고, 2년 전엔 이순신학과(대구가톨릭대 대학원) 개설 지원을 했다. 본격적으로 석·박사가 배출되면 제대로 된 학회를 만들어 장군에 대한 이론을 정립해 나갈 계획이다.”

Q : 왜 이순신인가.
A : “장군은 영웅을 넘어 성웅으로 불린다. 인간적인 면으로나 업적 면으로나 우리 모두가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장군은 특히 뛰어난 경영인이고 위대한 인격자였다.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로 제시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인물이다. 경영자로서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정도다. 한국콜마도 장군에게서 배운 지혜 덕에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됐다.”
윤 회장은 40대 나이에 대웅제약 부사장을 역임한 뒤 1990년 단 3명의 직원과 함께 화장품 제조회사인 한국콜마를 창업했다. 당시 국내 화장품 제조 업계는 선진국 화장품 업체를 보조하는 주문자납품방식(OEM)에 의존했다. 하지만 윤 회장은 제품 개발부터 디자인, 생산까지 직접 하는 제조자개발생산방식(ODM)을 통해 지금의 한국콜마를 이뤄냈다.

이후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다. 한국콜마는 현재 K뷰티 대표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아모레퍼시픽과 동국제약 등 900개가 넘는 국내외 화장품·제약사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한국콜마의 생산능력은 연간 15억 개에 달하고, 올해 전 관계사의 매출은 3조원을 바라본다. 지난해에는 미국 콜마가 갖고 있던 글로벌 콜마 상표권을 인수해 전 세계 콜마의 주인이 됐다. 윤 회장은 “이순신의 리더십을 알지 못했다면 지금의 한국콜마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Q : 장군의 리더십은 한국콜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A : “장군은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환경을 개척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대표적인 것이 전장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담아낸 거북선이다. 33년 전 한국콜마가 국내 최초로 ODM 사업을 시작하고, 오늘날 전 세계 ODM 시장을 선도하게 된 것도 바로 이 같은 장군의 정신 덕분이다. 장군이 일찍이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도 한국콜마에 그대로 녹아 있다. 한국콜마는 창업 초부터 직원의 30% 이상을 연구원으로 구성했고, 매년 매출의 7% 이상을 신소재·신기술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장군은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했는데, 한국콜마 또한 직원 개개인이 갖고 있는 장점에 주목하고 있다. ‘고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유능하다, 무능하다는 문제가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함께 성장해 나가는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연구개발을 강조해 온 한국콜마는 다양한 특허를 등록·출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들어서도 9월까지 특허 등록 및 출원이 총 256건에 이른다. 특허 및 실용신안 등록이 60건, 출원은 120건이다. 디자인권 등록은 33건, 출원은 43건에 달한다. 월 평균 28건의 지식재산권을 출원·등록한 셈이다.

Q : ‘목화씨’ 문익점 선생에 대한 책 『기업가 문익점』도 썼다.
A : “문익점 선생은 도전과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장군과는 또 다른 최고의 기업인 중 한 명이다. 목화씨를 가져와 한반도에 목면을 보급한 인물로만 알려져 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재배기술 축적, 종자 개량, 목면 제조기술 도입 등 그의 행적을 보면 현대식 기업가와 다르지 않다. 선생 덕에 백성들은 혹한의 추위를 견딜 수 있게 됐다. 이는 한반도에 변혁을 일으킨 위대한 사건이다.”

Q : 결국 모두 역사다.
A : “역사에 대한 올바른 연구가 이뤄져야 하고, 그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 2010년 장학재단인 석오문화재단을 만들어 산하에 역사연구원을 운영하는 것도 그래서다. 역사연구원은 국사를 수능 과목으로 채택하는 데 기여했다. 2016년엔 해외 유출 문화재인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를 25억원에 매입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2020년엔 일본의 역사학자 요시다 유타카 교수의 장서 8934권을 인수해 모교 영남대에 기증했다. 이 장서는 한국이나 동아시아 현대사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다. 정확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 확립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Q :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A : “사실 어린 시절 꿈은 역사 선생님이었는데, 가정 형편상 경영학과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 꿈이 남아 있어서인지 역사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 무엇보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거울이자 ‘최고의 스승’이니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지식의 창구는 경험이고, 역사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을 시대를 초월해서 알려준다. 특히 역사책에는 과거의 어떤 상황에서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내린 의사결정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기업인으로서 오래 가는 좋은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 역사 공부는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무궁화 역사문화관’ 세워 국화 연구도

윤 회장은 최근에는 무궁화를 연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여주시에 ‘콜마 무궁화 역사문화관’을 개관했다. 무궁화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그는 “무궁화의 역사는 고조선부터 시작됐는데 그때는 무궁화가 아니라 ‘훈화초’로 불렸다”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기록에 무궁화의 흔적이 다양하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Q : 무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사연은.
A : “6·25 직후 다닌 학교 화단 한 가운데 있던 무궁화가 그렇게 좋았다. 그때부터 언젠가는 무궁화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꿈과 함께 무궁화 그림이나 도자기 등을 꾸준히 모았다. 무궁화는 가치 있는 우리 꽃인데 지금 아이들은 무궁화를 본 적도 없고 무궁화가 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문화관은 무궁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만든 곳인데, 지난 1년간 이미 3000명 넘게 다녀갔다. 무궁화 국화 제정 법제화를 위한 서명지에도 2000명이 이상이 서명했다.”

Q : 국화인데 법제화가 안 돼 있나.
A : “그렇다. 관습적으로만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국화로 법제화하면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나라가 무궁화 관련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교육할 테니까. 실제 많은 나라가 국화를 법제화해 널리널리 전파하고 있다. 내년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법제화에 나설 계획이다.”
윤 회장은 재계 원로로서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우리 기업인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은 백의종군 후 조정의 아무런 지원 없이 칠천량 해전에서 무너져 내린 조선 수군을 일으켜 명량에서 대승을 이끌었다”며 “재빨리 필수 군수물자를 자력으로 해결할 방안을 강구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은 장군의 이 같은 ‘자력갱생 리더십’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외부 환경을 탓하거나 국가의 지원만을 기다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핵심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