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엄마들도 달린다, 가을운동회

2023. 10. 1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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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 전북 고창, 1976년, ⓒ김녕만
엄마들 차례다. 오전 내내 함성을 지르며 뛰고 구르던 아이들이 지친 오후, 엄마들의 달리기가 시작된다. 바쁜 농사일이 마무리되어가는 농촌에서 초등학교 가을운동회는 온 동네가 시끌벅적한 축제였다. 나들이옷으로 단정하게 갈아입고 학교를 찾아온 얌전한 어머니들도 일단 승부욕이 발동하자 체면 따위, 던져버린다. 거추장스러운 한복 치마를 허리띠로 졸라매고 고무신도 벗어 던진 채 맨발로, 혹은 버선발로 두 주먹 불끈 쥐고 달리는 어머니들. 아이들 보는 앞에서 어쨌든지 1등을 해서 공책 몇 권이라도 타야 체면이 설 텐데 마음이 급하다.

맑은 가을 하늘에 만국기 펄럭이던 학교 운동장에 우렁우렁 울려 퍼지던 씩씩한 응원가,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점수가 올라갈 때마다 함성과 탄식이 오갔다. 뙤약볕에서 한 달 내내 연습한 매스게임을 부모님 앞에서 멋지게 선보인 후 나무 그늘에서 온 식구가 둘러앉아 엄마가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으며 배부르고 행복했던 기억. ‘상’이라는 빨간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공책을 받아들고 뿌듯하게 집으로 돌아갈 때, 그런 소소한 기쁨조차 그때는 너무나 큰 기쁨이어서 높은 가을 하늘처럼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이제 그런 기쁨은 시시해진 것일까? 70년대의 운동회 모습은 사라졌다. 단체로 매스게임을 연습하고 몸을 쓰며 뛰고 구르기에는 요즘 아이들은 너무 귀하고 바쁜 몸이 되었다.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일 만한 큰 규모의 운동장도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처럼 초등학교 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시대에 사진에서 보이는 “성실한 마음 튼튼한 몸”이라는 저 소박한 문구로 돌아갈 수 있다면 초등교육의 정상화, 그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마음 같아선 바람처럼 빠르게 달리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안타까운 엄마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벌써 숨은 차는데 결승선은 아직 멀다. 그렇다. 역시 어떤 일에서든지 1등을 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엄마들이 깨달을 차례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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