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政談<상>] 김행 사퇴…운명 같은 '드라마틱한 엑시트'
민주당,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완승' 후폭풍
대통령실·국민의힘 '참패' 당혹감…"이 정도일 줄이야"
<더팩트> 정치부는 여의도 정가, 대통령실, 외교·통일부 등을 취재한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한 주간 이슈를 둘러싼 뒷이야기와 정치권 속마음을 다루는 [주간정담(政談)] 코너를 진행합니다. 주간정담은 현장에서 발품을 판 취재 기자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후기입니다. 방담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대화체로 정리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정리=신진환 기자] -내년 총선의 수도권 민심 풍향계로 여겨졌던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로 끝났다. 17%포인트의 큰 격차로 국민의힘에 압승한 민주당은 대정부·대여 압박 수위를 높이며 정국 주도권 확보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선거 참패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인사청문 도중 퇴장 논란을 불렀던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결국 당과 윤석열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12일 자진 사퇴했다. 선거 참패 수습을 위해 김기현 대표는 최고위원들과 개별 면담을 진행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또 중국 비자 발급이 빨라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냉랭한 한중관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지 주목된다.
-21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국감)가 지난 10일부터 돌입했다. 여야는 다음 달 8일까지 791개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국정 전반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계획이다. 하지만 여전히 '구태 정치'는 반복되고 있다. 국감 초반부터 일부 상임위원회에서 파행 사태가 벌어지거나, 여야가 신성한 국감장에서 고성과 막말을 주고받는 등 볼썽사나운 장면이 자주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야당 의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피감기관이 국감 질의서를 훔쳐보다 들통나는 촌극도 벌어졌다.
◆대통령실 "이럴 줄은 몰랐다"…강서 보궐 참패 당혹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국민의힘의 완패로 끝났어. 대통령실 분위기는 어때?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어. 다만 선거 다음 날인 지난 12일 비공식적으로 "어떤 선거 결과든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어. "이번 선거 결과를 엄중히 받아들이겠다"라고 한다면 의미가 명확하잖아? 그런데 이건 제 3자가 자신들과는 관련 없는 사안에 대해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이야.
-선거 전부터 대통령실이 선 긋기 하는 기류는 있었어.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있어 말하기 조심스럽다"고 하면서도 총선이 6개월이나 남은 데다, 기초단체장 1곳을 두고 수도권 민심을 파악한다는 건 과도하다는 취지로 설명했어. 하지만 17.15%포인트라는 큰 격차로 지면서 대통령실도 "이 정도로 질 줄은 몰랐다"며 상당히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야.
-윤석열 대통령은 별다른 언급이 없었지?
-맞아. 12일 한-에스토니아 정상회담과 '청년 화이트해커와의 대화', '제73주년 장진호 전투 기념행사' 등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는 데 그쳤어. 북한의 사이버 불법 활동과 가짜뉴스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사이버안보 역량',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하는 안보 일정을 선거 다음 날 잡은 거지. 대변인 브리핑도 없었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21년 4·7 재·보궐 서울·부산 시장 선거에서 참패하자 다음 날 곧바로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 더욱 낮은 자세로, 보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국정에 임하겠다"고 대변인을 통해 공식 메시지를 냈어. 서울·부산시장과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대변인이 짧게라도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혔으면 어땠을까 싶어. 특히 김태우 후보는 사실상 윤 대통령이 광복절 특별사면을 단행해 출마 기회를 준 셈이라 비윤계가 지적하는 '대통령 책임론'에 힘이 실린 상황이야.
-이번 선거 결과에서 주목할 건 중산층의 표심이야. 여권은 내년 총선에서 서울 전체 지역구 중 3분의 1 정도만 가져와도 원내 1당이 될 수 있다고 봐. 그러려면 중도층을 어느 정도 사로잡는 게 중요하지. 그런데 이번 선거에선 중산층이 밀집해 보수 우세 지역으로 꼽히는 마곡지구에서도 졌어.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은 가양1동에서 7%포인트 앞섰지만 이번에는 김 후보가 16.1%포인트 차로 밀렸어.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 기조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에 있는 보수 텃밭도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와.
-대통령실에서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시도도 있다고?
-당초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려고 했는데, 보궐선거 성적표를 받아 든 후엔 사실상 지명을 철회했어. 또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일부 대통령실 참모들도 이달 20일 전후로 교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와. 다만 내년 총선에 도전하기 위한 '출마용 교체'와는 구분해야겠지. 이번 선거 참패로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출마 의사를 접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데, 현재까지 그런 기류는 안 보여.
◆위기의 김기현, '최고위원 개별면담' 진행…사퇴 의견 나왔을까
-선거에서 패한 국민의힘 분위기는 어때?
-뒤숭숭한 분위기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17.15%포인트라는 큰 격차로 '완패'했는데, 소속 의원 전체를 총동원하는 등 총력을 다한 선거라 더욱 결과를 보고 당황한 것 같아. 지도부 책임론이 일지만 일단 지도부는 사퇴 의사가 없는 듯해. 대신 혁신위원회 구성 등 강도 높은 쇄신을 보여주려는 것 같아. 그런데 조금 더 지켜봐야 해. 일단 13일 예정된 국민의힘 긴급최고위원회가 전날 밤 갑자기 취소됐어. "전체 회의에서는 의견을 말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개별 면담으로 의견을 듣기로 했다"는 게 당 관계자의 설명이야. 13일 김병민 최고위원 등 지도부가 차례로 당 대표실을 방문했어.
-지도부 사퇴 없이 쇄신하는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하네. 그런 만큼 혁신안 내용이 중요하겠지. 일단 15일 의원총회를 열기로 했으니, 거기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참고할 것 같아. 개별 면담에서는 어떤 얘기가 나왔어?
-수도권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 체질 개선해야 한다, 쇄신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는 전언이야. 대부분 최고위원이 지도부 사퇴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조심스러워했는데, 장예찬 청년 최고위원의 의견이 눈에 띄었어. 장 최고위원은 면담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면피성 대책이 아니라 누가 봐도 지도부가 어려운 결단을 하고 먼저 책임진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고강도 쇄신 의지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고 했지. 지도부 사퇴를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을 피하면서도 "최종 결단은 김 대표가 내려야 하는 것"이라고 했어.
-지도부 사퇴로 해석할 수 있겠네. 사실 이번 선거 패배에 대해 원 내외의 반응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원외라면 주로 수도권·청년층을 말하는 거겠지. 장 최고위원은 특히 지도부에서 청년층을 대변하고 있는데 또 어떤 의견을 전했대?
-그는 "준엄한 선거 결과가 나왔음에도 결과를 위기로 못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충격을 받았고.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는 그런 쇄신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며 "수도권 출신이나 비교적 조금은 젊은 분들이 비슷한 마음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어. 지도부가 사퇴하지 않을 거라면 이런 불만을 돌파할 수 있을 만한 강도 높은 혁신안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여.
-혁신안에 이목이 쏠리는데 안철수 의원이 제안한 혁신 방안 중 하나가 눈길을 끌어. 이준석 전 대표를 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거든. 이 전 대표는 안 의원이 지원유세에서 시민을 향해 "XX하고 자빠졌네"라고 말한 걸 꼬집으며 안 의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었어. 안 의원은 이를 두고 '내부 총질', '해당 행위'라고 반발했지.
-일단 지지자들이 반응하고 있어. 이 전 대표는 그동안 수위 높은 쓴소리를 해 당 강성 지지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혔거든. 안 의원은 이 전 대표 제명을 위한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전했어. 다만 안 의원의 주장에 유권자들이 공감할지는 미지수야. 몇몇 기자는 "황당하다"는 취지로 뒷말을 남겼어.
◆'드라마틱 엑시트' 김행 자진 사퇴 뒷이야기
-김 후보자가 12일 결국 사퇴했네.
-맞아. 윤석열 정부 들어 다섯 번째 국무위원 후보자 낙마로,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지 29일 만이야. 김 후보자는 입장문에서 "인사권자인 윤석열 대통령께 누가 돼 죄송하다"며 사과했어. 그는 지난달 14일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여가부 폐지'와 관련해 "드라마틱(극적인)한 엑시트(퇴장)"라고 발언했잖아. 김 후보자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 말이 정치권에서 유행어처럼 화제였어(웃음). 어쨌든 마치 운명같이 '드라마틱한 엑시트'라는 본인의 말이 들어맞았다는 뒷말이 나오더라고.
-김 후보자 사퇴 배경에 김태우 국민의힘 강서구청장 후보 패배 영향이 크다는 말도 들리던데?
-지난 11일 치러진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개표 결과, 민주당 진교훈 당선자와 김 후보는 17%포인트 차이로 당락이 갈렸어. 중도층과 청년 민심이 돌아섰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정부·여당의 타격감도 컸지. 흔히 말하던 여당 내 수도권 위기론이 현실화된 거야. 참패 이후 수습책 논의를 위해 긴급 소집된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후보자 사퇴를 대통령실에 건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어. '주식 파킹' 의혹에다, 인사청문회 중도 이탈로 민심이 악화된 상황에서 김 후보자 임명까지 강행하면 총선 표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여. 수도권 위기론이 제기되면서 당에서도 위기감이 감지됐지. 이에 따라 김기현 대표는 최고위 논의 내용을 당 지도부 공식 의견으로 정리하고 대통령실에 그대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어.
-김 후보자 사퇴에 국회 내 분위기는 어때.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엑시트'라는 분위기지.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 때문에 김 후보자 본인이 물러날 거라고 어떻게 알았겠어. 구청장 선거 전엔 '용산'에서도 임명을 강행하려던 분위기였잖아. 민심을 확인한 윤 대통령도 별 수가 없었지 않나 싶어. 국민이 회초리를 들었는데 윤 대통령도 별 수가 있나. 말 그대로 보여주기식 '팽' 당한 거라는 평가가 나와. 10년 이상 국회에서 일한 보좌진은 "살다 살다 청문회 때 도망가는 오만한 후보자는 처음 봤는데, 용산에서 밀어주는 걸 알고 겁도 없이 행동한 거 아니겠나. 이번 기회로 정신이 번쩍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럼 여가부 장관직은 어떻게 되는 거야.
-정치권에서는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는 김승희 전 의원, 이정심 유엔여성기구 성평등센터 소장, 허명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등이 물망에 올랐어. 일각에서는 국회 청문회 리스크가 큰 만큼 내년 총선까지 장관직을 비워두자는 얘기도 나와. 정국 경색이 계속되는 가운데 윤 대통령이 후임자 물색에 더 난항을 겪을 전망이야.
◆방담 참석 기자 = 이철영 부장, 신진환 기자, 박숙현 기자, 조채원 기자, 김정수 기자, 조성은 기자, 설상미 기자, 송다영 기자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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