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우경임]의약분업 트라우마에 갇힌 의대 입학 정원 305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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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심장 수술을 기다린 지 1년이 지났다. 수술 날짜는 아직도 기약이 없다. 해외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해 주겠다는 브로커를 떠올렸다.'
10년이 지나면 심장 수술을 받으러 비행기를 진짜 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의료계가 의약분업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립으로 치닫는다면, 의대 증원뿐 아니라 국민 생명을 위협할 정도가 된 필수 의료, 지역 의료 대란을 풀어갈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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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게 된 건 동아일보가 10일 대한소아심장학회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기사를 읽으면서다. 이 보고서는 2035년 소아·청소년 심장 환자를 수술하는 의사가 단 17명이 남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10년이 지나면 심장 수술을 받으러 비행기를 진짜 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필수 의료 ‘의사 대란’을 두고 의료계는 의사 총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의사 배분이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의사 수가 늘더라도 피부과·안과·성형외과로 쏠릴 뿐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외과는 외면당할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몸이 아플 때 부작용이 있더라도 약을 써서 치료하듯이, 지금의 필수 의료 대란 역시 부작용이 있더라도 의사 증원이란 약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한의사 포함)가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에 못 미친다는 통계를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의사가 부족하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병원에 가도 의사를 만나지 못하는 환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반년을 기다려 3분 진료를 받는다. 뇌출혈 환자가 수술할 의사를 찾지 못해 구급차에 실려 거리를 떠돈다. 수술실에 들어갔더니 의사 대신 간호보조인력(PA)이 수술을 보조하고 있다. 과연 의사 총량 증가 없이 적절한 배분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의대 입학 정원은 3058명으로 17년째 그대로다. 필수 의료 대란이 닥치기까지 단 한 명도 늘리지 못했다. 취재원을 만날 때마다 그 이유를 물어봤다. “의약분업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2000년 병원과 약국의 기능을 분리하는 의약분업 시행을 앞두고 이에 반발하는 의사들이 세 차례 파업을 했다. 전국적인 의료 대란이 벌어졌다. 의사, 약사 직역 갈등에 쩔쩔매던 정부에 국민들까지 등을 돌렸다. 우여곡절 끝에 의약분업이 시행됐지만, 2001년 건강보험 재정이 진료비와 조제료 인상으로 4조 원의 적자를 냈다. 비판 여론에 감사원은 감사에 돌입했고, 대통령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했던 보건복지부는 차관부터 과장까지 줄줄이 징계를 받게 된다. 당시 사태가 트라우마로 남아 의약계와 대립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 정부가 소극적이라는 설명이다.
정책 파트너인 의료계도 같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의약분업 당시 세 차례 이뤄진 수가 인상이 건강보험 적자가 커지면서 없던 일이 됐다.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쌓였다. 정부는 실망한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밀실에서 의대 입학 정원 동결을 약속했다. 2002년부터 단계적으로 의대 정원을 감축해 2006년 3058명이 된 배경이다.
다음 주 정부는 의대 증원 방침과 규모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다음이 더 중요하다. 정부와 의료계가 의약분업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립으로 치닫는다면, 의대 증원뿐 아니라 국민 생명을 위협할 정도가 된 필수 의료, 지역 의료 대란을 풀어갈 길이 없다. 상상 속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이번만큼은 부디 대화를 통해 해법을 만들어 가야 한다.
우경임 정책사회부 차장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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