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華 제국이 쇠퇴할 때 요리는 번성했다
개인인 ‘화인’이 전 세계로 전파시켜
정부가 퍼뜨린 프랑스 요리와 달라
韓선 1880년대 한양에 요리점 생겨
짜장면 등 각국서 국민 음식 되기도
중국요리의 세계사/이와마 가즈히로/최연희·정이찬 옮김/따비/4만8000원
1842년, 중국은 영국과 아편전쟁을 벌인 뒤 체결한 난징조약을 맺으면서 근대 국민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상하이에 차례로 조계를 개설하면서 이곳 조계를 중심으로 중국 각 지방의 요리점이 속속 등장했다. 중국요리는 고대부터 남과 북의 두 계통이 존재했고, 당송 시대에는 각 지방에서 서로 다른 요리가 경쟁적으로 발전하다가 명말 청초에 만주(북방), 강남, 쓰촨, 광둥(및 푸젠) 요리라는 4대 요리로 정착됐다.
일본 게이오기주쿠대 문학부 교수인 저자 이와마 가즈히로는 책에서 오늘날 중국요리가 형성되고 퍼져나간 과정과 중국요리가 각국의 국민 요리가 된 과정을 면밀히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각 국가와 사람들이 중국요리에 담고자 했던 생각과 역사를 읽어내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면, 1919년 1월 기독청년회 학생부 간사 박희도를 중심으로 경성시내 전문학교 학생대표 8명이 만세운동에 참가를 결의한 곳은 경성의 중국요리점 ‘대관원’이었고, 그해 4월 13도 대표 23명이 모여서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선포문과 국민대회 취지서 등을 낭독한 곳 역시 경성의 ‘봉춘관’이었다.
한국에서 성장을 이어오던 중국요리업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외국인특별토지법’을 비롯한 규제를 받으며 타격을 받은 뒤 상당수 화인이 타이완이나 일본, 미국 등지로 떠났다. 이 틈을 비집고 중국요리점 경영자가 대거 한국인으로 교체됐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중국요리들은 한국화가 급격히 진전됐다. 짜장면이 검어지고, 짬뽕은 더욱 매워졌으며, 탕수육 역시 기름기가 줄었다. 짜장면을 재해석한 ‘짜파게티’나 ‘짜짜로니’ 같은 인스턴트 식품도 널리 퍼져갔다.
중국요리는 어떻게 이렇게나 큰 세계적 영향력을 지닐 수 있었을까. 저자는 중국요리가 다른 나라 요리보다 현지 식재료에 대응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중국계 이민자가 많고 역사가 길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요리는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현지화 과정을 거치면서 각국의 국민음식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잡채의 경우 중국요리의 영향 아래 일본의 식문화까지 더해지면서 새롭게 재탄생한 한국의 대표 요리가 됐다.
책은 격변하는 근현대사 속에서 중국인들과 중국요리가 각국의 정치, 경제, 문화와 얽힌 궤적을 방대하게 추적하는 한편, 음식에 관한 거짓된 전승인 ‘음식의 페이크로어(culinary fakelore)’를 경계한다. 즉, 중국요리에 얽힌 기원과 설을 세밀하게 검증하려 시도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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