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사람의 일
전쟁통서 변화하는 인간상 그려
이렌 네미롭스키, ‘로즈씨 이야기’(‘무도회’에 수록, 이상해 옮김, 레모)
로즈씨는 부자인 데다 독신이며 자신 이외에 아무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풍족한 삶은 오로지 자신만 아는 쾌락으로 채워졌고 재산을 더 늘릴 방법을 고민하는 것 외에 근심이 없었다. 한마디로 로즈씨는 비호감형 인물이다. 소설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독자에게는 감정이입을 느끼게 하는 인물이 필요하며 독자가 인물들에게 그런 점들을 발견하지 못하게 될 때 책을 덮어버리는 일도 생긴다. 호감을 느끼는 인물은 꼭 필요하진 않지만 나와 같은 데가 있다는 감정이입을 느끼게 해주는 인물은 필요하다. 일단 이 단편 ‘로즈씨 이야기’의 중심인물인 로즈씨는 독자에게 완벽하게 비호감형이다.
로즈씨는 걸어야만 했다. “그는 그 행렬에서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꼈다.” 나란히 걷던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영웅적인 삶과 안락한 삶 중에서 전자를 택할 것이며 군에 들어가려고 오를레앙 근처의 주둔지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로즈씨는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도 대화를 나눌 줄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발이 아파 걷기 힘들 뿐이었다. 그때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한테 기대세요, 선생님.” 자신의 동행을 유심히 살피다가 로즈씨는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자신이 젊은 날에 버리고 도망쳐버린 여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들의 젊음, 호의 때문이었을까. 청년은 피난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돕고 운 좋게 얻은 식량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로즈씨는 말했다. “자네는 살아가면서 늘 도둑맞을 거야.” 청년은 웃었다. 무척 여위었고 창백했고 배도 고픈데 청년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 어때서요.”
피난길이, 삶이 더 악몽처럼 변해갔다.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로즈씨도 조금씩 달라져 갔다. 청년은 이제 더는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차를 몰고 가던 도로의 누군가 로즈씨를 알아보고 태우려고 했을 때 로즈씨는 물었다. 한 사람을 더 태울 수 있느냐고. “친척인가?” “아니, 아무 관계도 아니야. 하지만 부상을 당했어. 난 그를 두고 갈 수 없어.” 그들은 어서 루아르강의 다리를 건너가야 했다. 다리가 폭파되기 전에. 그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로즈씨는 아무 관계도 아니었던 청년의 곁에 남았다. 로즈씨는 비로소 깨달았을지 모른다. 그게 사람의 일이라고.
믿기지 않는 일들이 매일 벌어지고 있다. 지금도 그렇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의 일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작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파리에 정착했던 작가 이렌 네미롭스키는 1940년, 생활고와 전쟁의 공포 속에서 ‘로즈씨 이야기’를 포함해 르노도상 최초로 사후 수여한 ‘프랑스풍 조곡’을 집필했고 이 년 후 6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사망했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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