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비운의 치안총수' 故허준영…사퇴 때도 애착 보인 경찰 개혁

송상현 기자 서상혁 기자 2023. 10. 1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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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71세의 나이로 별세한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외무고시 출신 첫 치안 총수로 경찰 숙원이었던 수사권 조정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검찰과의 대립을 감수하며 경찰 입장을 대변해 전현직 경찰관들은 "추진력과 리더십이 뛰어났다"고 그를 평가한다.

그는 사퇴 입장문에서도 "(수사권 조정은) 경찰과 검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영 시스템상 견제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성역을 없애자는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의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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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력 뛰어났다"…농민 사망 사건으로 10개월 만에 사퇴
71세의 일기로 별세…"수사권조정 이슈 불 지핀 치안총수"
허준영 전 경찰청장. 2016.10.12/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송상현 서상혁 기자 = 향년 71세의 나이로 별세한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외무고시 출신 첫 치안 총수로 경찰 숙원이었던 수사권 조정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검찰과의 대립을 감수하며 경찰 입장을 대변해 전현직 경찰관들은 "추진력과 리더십이 뛰어났다"고 그를 평가한다.

다만 시위 농민 사망 사건으로 취임 10개월 만에 제복을 벗어 '비운의 치안 총수'라는 평도 받는다.

13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허 전 청장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자택 앞에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후 6시6분쯤 사망 선고를 받았다. 허 전 청장은 이날 지인들과 운동을 하고 귀가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알려졌으나 경찰 관계자는 "확인을 더 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 출신의 허 전 청장은 1980년 외무고시 합격 후 1984년 경찰에 입문했다. 이후 중앙경찰학교장과 강원경찰청장, 대통령 치안비서관, 서울경찰청장을 역임한 그는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1월 치안총수를 맡았다. 업무 추진력이 인정돼 청장으로 발탁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경찰이 대규모 농민 시위를 진압하던 중 시위 참가자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5년 11월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된 '쌀협상 국회비준 저지 전국농민대회'였다.

시민사회는 "허 청장이 책임을 지고 제복을 벗어야 한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허 전 청장은 2년 임기제 경찰청장으로서 조직 미래를 위해 임기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으나 결국 취임 10개월 만인 2005년 12월 물러났다. 그는 이후 회고록이나 언론 인터뷰에서 "사퇴할 일이 아니었다"며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임기를 채우지 못했으나 경찰 개혁을 추진한 그의 역량은 회자되고 있다. 특히 경찰 '숙원'으로 불리는 수사권 조정을 완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는 평가다.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검찰의 경찰 수사 지휘권을 폐지하는 것으로 2021년이 돼서야 시행됐다.

허 전 청장 시절은 '검찰은 상사, 경찰은 부하'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검찰과의 긴장관계를 감수하며 수사권 조정이라는 경찰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는 사퇴 입장문에서도 "(수사권 조정은) 경찰과 검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영 시스템상 견제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성역을 없애자는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의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정치적 논란에 시달렸던 허 전 청장은 퇴임 이후에도 주목 받는 행보를 했으나 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시련을 겪었다.

그는 한나라당에 몸담다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2012년 열린 19대 국회의원 선거과 그 다음해 재보궐선거 등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을 맡다가 현재는 한국청소년육성회 총재로 활동했다.

그는 2011년 11월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2017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확정 받았다.

경찰 한 관계자는 "정치적 논란과 수난을 겪었지만 경찰 재직 시절 소신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분"이라며 "그의 별세가 안타깝다"고 애도했다.

경찰 한 고위 관계자는 "수사권조정 이슈에 불을 지펴 강하게 밀고 나갔던 리더였다"며 "추진력은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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