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의 묵언] 정권 심판은 이제 시작이다
불통·독선·오만의 정권이 제대로 심판을 받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예상대로’ 여당의 참패였다. 화난 민심은 무서웠다. 정치권은 이미 승패를 감지했겠지만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결과가 참담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누군가는 알면서도 모른 체했을 것이다). 크게 놀랐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민심을 판독조차 하지 않았(못했)다. 민심을 내세워 민심을 팽개쳤다. 인사부터 민심과는 동떨어졌다. 이름에 때가 덕지덕지 묻은 인물들을 국회 청문회장에 들이밀었다. 질타와 항변이 뒤엉켜 청문회장은 난장판이었다. 처음이라서, 집권 초기라서 실수려니 했지만 갈수록 가관이다. 한번 낙점하면 청문회장에서 만신창이가 돼도 임명장을 주고 등을 두드렸다. 그러다보니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도중에 도망치는 상상도 못할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통령이 나서서 야당과 싸우라 독전하고 이에 장관이 의원들에게 호통을 쳤다.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망동이다. 이념을 넘어서 함께 가자고 호소해도 모자랄 판에 이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일갈했다. 속 보이는 민심 갈라치기였다. 모든 잘못은 무조건 전 정권 탓으로 돌렸다. 그렇게 해서 문재인 정부의 실정까지 덮어주고 말았다. 정국운영 기술도 한참 모자랐다. 이런 정권은 일찍이 없었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의 기이한 행보에 국민들이 마음을 졸였다. 이제는 정권에 기대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 상식 밖의 국정운영이 없기만 바랄 뿐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필자는 초보 정치인들이 정치판을 흔들고 있음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찬찬히 뜯어보니 자신이 왜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정치인의 덕목인 시대정신과 균형감각은 단시간에 습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초보 정치인은 위험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이 나쁜 정치를 해도 그것들을 바로잡는 일은 역시 정치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정치를 무조건 증오해서는 안 된다. 정치가 더럽다고, 정치인이 썩었다고 정치판에서 눈을 떼면 더 나쁜 정치인들이 활개를 친다. 좋은 지도자를 원한다면 부드러운 후원자, 매서운 감시자가 돼야 한다. 준비된 정치인은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나지 않는다. 정치인은 수없이 민심의 검증을 받고 수없이 자기 검열을 하며 몸집을 불리고 맷집을 키워간다. 민심의 한복판에 서본 사람만이 민심이 무섭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요즘 민심을 제대로 판독할 수 있는 정치인은 누구인가.”(경향신문 2021년 8월7일자)
국민들은 전 정권을 심판했고,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됐다. 초보라서 조심할 줄 알았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정책은 급조됐고 설익은 구상들이 산발(散髮)을 하고 불쑥불쑥 나타났다. 공정과 상식을 외쳤지만 국정운영은 공정과 상식을 벗어났다. 검찰 출신들을 요직에 앉혔다. 검찰은 사후를 책임지는 조직이다. 그래서 미래를 설계하는 사전(事前)의 영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매우 불길했다. 끝내 정치가 실종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정치에 물들지 않아서 일면 참신할 것이라는, 그래서 혹시 정치개혁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여권 인사들도 알 것이다. 대통령과 그 밑에서 아부하는 무리가 보수진영의 토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체감할 것이다. 정치인은 민심이 떠나가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 아마도 대통령이 태극기부대와 행진하는 꿈을 꾸고 놀라 깨어날 것이다. 대통령의 민낯이, 정권의 밑천이 다 드러났다. 이제 창밖으로 권력의 내리막길이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떠나가는 중도층을 붙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실종된 정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속히 검증된 정치인을 모셔와 지혜를 빌려야 할 것이다. 좋은 정치인을 얻기 어려우면 노회한 정치인이라도 곁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민심을 제대로 판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그래서 나라가 걱정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권력에 시한이 있고, 우리에게 선거라는 무기가 들려 있다는 것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심판은 시작에 불과하다. 민심은 이리저리 출렁거려도 마지막에 현명하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일렁인다. 민심은 빠르지 않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벼락이 내리친다. 민심의 바다가 심상치 않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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