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클레지오가 돌아본 유년의 추억[책과 삶]
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
J M G 르 클레지오 지음 | 송기정 옮김
책세상 | 188쪽 | 1만6800원
회고록은 아니라고 하지만 르 클레지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책의 중심이다. 물론 완전히 기억에만 의존하기는 어려울 테다. 그래서 이 책의 장르는 소설과 수필의 중간쯤인 ‘레시’(recit)다.
‘아이와 전쟁’은 작가가 태어나 대여섯 살이 될 때까지 겪었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을 서술한다. “전쟁 중에 태어났다는 것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그 전쟁의 가깝고도 먼 증인이 되는 것이다…새나 나무 같은 증인…그들은 그곳에 있었고, 그것을 몸소 겪었다”는 대목은 어쩔 수 없이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의 편인가와 상관없이 그 땅에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의 야만을 견뎌야 하는 존재들은 지금도 있다.
전쟁에서는 흔히 이념, 정치, 잔혹함 등이 주로 이야기되지만, 이 책에선 숨겨진 일상을 좀 더 말한다.
평시라면 한창 밖에서 뛰어놀 나이였지만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서만 허용되던 외출, 목욕을 하다 폭격이 떨어진 일화 등이다. 불안정함과 긴장 속에서도 아이가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느낀 따뜻함도 담겨 있다.
지나간 시절과 사라진 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브르타뉴의 노래’에서 배가된다. 프랑스에 속해 있지만 지역만의 역사와 문화가 존재했고 한때는 독립의 열망도 있었던 브르타뉴는 작가가 유년 시절 휴가를 보냈던 곳이다. 고향은 아니지만, 향수를 품기에 모자람이 없었던 곳이다.
브르타뉴 지역만의 고유한 문화와 그곳에서 작가가 느낀 감상이 정갈하게 묘사돼 있다. “퐁라베 지방의 선율이 아름다운 브르타뉴어”를 주로 썼던 드 두르 부인이라든가, 생트마린에서 퐁라베로 가는 길 위에서 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기억 묘사는 단순히 회상이라기보단 이제는 잊힌 삶에 대한 존경과 경의의 시선에 가깝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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