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닌, 공존해 숲을 이루는 지혜[그림책]
사랑을 주면 줄수록
마시 캠벨 글·프란체스카 산나 그림|김지은 옮김
미디어창비|48쪽|1만6000원
셸 실버스타인의 그림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나무는 소년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다. 열매를 내어주고, 가지를 내어주고, 굵은 목대를 내어준다. 노인이 되어 찾아온 소년에게 마지막 남은 그루터기를 내어주며 행복함을 느낀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해석됐던 이야기를 현대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조금 다르게 읽힌다. 나무가 소년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사랑과 희생은 자연을 자원으로만 여기며 착취해온 근대적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여준다.
<사랑을 주면 줄수록>은 현대판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할 만하다. 할머니, 아버지, 딸에 걸친 삼대가 도토리와 맺는 관계는 상호공존과 번영의 관계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들판에서 바람을 느끼고 도토리를 땅에 심으며 세상의 모든 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알려준다. 아이는 ‘꾹 참고 기다리는 마음’을 배우고, 아이의 키가 자라는 속도에 맞춰 도토리나무는 자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이는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도움을 청하고 슬픔을 나누며 성장한다. 더불어 나무도 둥치를 키우고 가지를 뻗어나간다. 아빠가 된 소년은 딸에게 할머니의 지혜를 전하고, 함께 도토리를 심는다. 딸은 엄마가 되어 아이에게 할머니와 아빠로부터 받은 사랑과 지혜를 전한다. 도토리나무는 모여 숲이 되고, 마을을 울창하게 감싸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숲의 혜택을 누린다. 땅 밑에선 두더지가, 나뭇가지에선 새가 휴식을 취한다.
마시 캠벨의 사랑에 대한 따스한 통찰을 담은 글을 한층 더 풍부하게 전하는 것은 프란체스카 산나의 그림이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고 에즈라 잭 키츠상을 수상한 산나는 <내 친구 지구>에서 지구를 갈색 피부를 지닌 어린이로 그려 지구 생명의 약동과 아름다움을 친근한 그림과 풍부한 색채로 표현했다. 산나는 이번에도 다양한 피부색, 젠더를 지닌 인물들을 통해 대를 이어가며 확장되는 사랑의 이야기를 전한다. 사랑 안에는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뿐 아니라, 다양한 생명에게 풍요와 휴식의 공간을 내어주는 나무, 나무와 함께 확장되어가는 이웃들이 있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아닌 함께 나누고 커지는 사랑 이야기는 지금 꼭 필요한 사랑의 이야기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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