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지상전·점령 다 '딜레마'…"하마스 공백에 대안도 없어"
이스라엘, 가자지구 재점령 꺼리지만 최소 수개월 주둔해야
비용부담 엄청나고 요르단·이집트 등 주변 아랍국과 관계 악화 위험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스라엘이 당초 목표한 '하마스 궤멸'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잇따라 제기됐다.
인질과 민간인의 인명피해 등 여러 위험부담을 안고 시가전을 전개해야 하는 데다,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 지상전을 마무리한 뒤에도 가자지구 재점령과 하마스 이후 대안 부재 등 여러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지상 공격을 감행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이나, 지상전 시작부터 그 이후까지 전 과정에서 수많은 쟁점과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7일 기습공격을 감행한 하마스를 섬멸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공습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지상군 투입은 시간문제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인근에 병력과 장비를 집결시킨 데 이어 며칠 안에 가자지구 중심도시 가자시티에서 대대적 군사작전을 벌일 것이라며 해당 지역의 민간인들에게 대피하라고 경고하는 등 지상군 투입을 기정사실로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인구가 밀집돼있고 빽빽하게 건물이 들어선 가자지구에서의 지상전은 양측 모두에 막대한 인명피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군 입장에서는 지리를 잘 알고 게릴라전에 능한 하마스를 상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불리한 싸움이 된다.
하마스는 가자지구 안에 미로 같은 터널을 파놓고 활동하고 있으며 그 안에 각종 함정을 설치해놓았다. 또 민간인 지역에 무기를 숨겨두고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이용하기도 한다.
AP는 이번 공격을 1년 이상 준비하고 전면전 등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왔다는 하마스를 상대로 이스라엘군이 시가전을 벌일 경우 자칫 하마스의 손에 놀아나게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스라엘 국가안보회의(NSC) 의장을 지낸 지오라 에일랜드는 이스라엘 병사들이 집마다 수색하고 부비트랩을 제거해가며 하마스 전사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며 지상 작전이 "끔찍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AP에 말했다.
에일랜드는 이런 상황 때문에 이스라엘군이 몇개월은 가자지구에 머물러야 하며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사상자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국가안보보좌관 출신으로 최근 정부 관리들과 만난 야코프 아미드로르 예비역 소장도 이러한 이유로 이번 가자지구 공격을 어떻게 시작할지 전술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NYT에 말했다.
지상전 이후 가자지구 점령은 더 큰 문제다.
이스라엘의 목표인 '하마스 축출'을 일회적이고 단기적인 군사작전으로 달성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 얼마나 오래 주둔할지, 혹은 이전처럼 재점령해야 할지도 쟁점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아미드로르는 "하마스를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내각 구성원은 없다"며 "만약 우리가 가자지구 전체를 점령해야 한다면 속도가 느리더라도, 심지어 6개월이 걸리더라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재점령은 그러나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는 카드다.
이스라엘은 2005년 '중동평화 로드맵'에 따라 가자지구에서 군과 유대인 정착민을 철수시켰다. 재점령은 이에 대한 역행적 조치라는 점에서 이집트·요르단 등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인근 아랍국가들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또한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은 물론 가자지구 주민 230만명을 관리·통치하고 기본적인 행정·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재정 부담도 엄청나다.
점령 기간 교전이 계속될 가능성도 크다. 충돌이 길어지면 지금은 이스라엘에 동정적인 국제사회 여론도 달라질 수 있다.
NSC 부의장을 지낸 이타마르 야르는 지상전은 하마스를 몰아내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재점령할 의사가 거의 없다면서 "(가자지구 주민 통치 책임은) 우리에게도 그들에게도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하마스를 축출하더라도 그 이후 더 급진적인 세력이 들어설 위험이 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은 '더 나쁜 대안'을 좇기보다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권력을 유지하게 하는 마뜩잖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AP는 분석했다.
텔아비브 대학의 팔레스타인 문제 전문가 마이클 밀슈타인은 하마스가 '익숙한 악마' 같은 존재로 구관이 명관일 수 있다며 "이스라엘은 하마스 정권의 대안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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