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근절'은 총선 언론대책…모두가 뉴스타파 될 수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9월 한 달간 ‘가짜뉴스’가 들어간 기사를 검색했다. 1567건이 나왔다. 지난해 1년치(4029건)의 40%에 육박하는 수치다. 연관어 분석을 해보니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그다음으로 높은 게 ‘뉴스타파’, 그리고 ‘선거 결과’다. 이동관 위원장이 “대선 결과가 뒤바뀔 뻔했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뉴스타파의 김만배 음성파일 보도가 방통위 주도의 ‘가짜뉴스’ 대책에 명분과 동력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동관 위원장이 지난달 4일 국회에 출석해 뉴스타파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한 이후, 방통위는 빠르게 ‘가짜뉴스 근절 추진방안’을 실행에 옮겼다. 지난달 18일 ‘가짜뉴스 근절 위한 패스트트랙’을 가동한다고 밝혔고, 27일엔 ‘가짜뉴스 대응 민관협의체’를 출범했다. 방통위가 할 수 없는 ‘내용규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로 넘겼다. 방심위는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만들고, 인터넷 언론사까지 심의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지난 11일 실제로 인터넷 매체인 뉴스타파를 첫 통신심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그러나 한 달 사이에 “급조”되어 빠르게 실행까지 옮겨진 이 같은 ‘가짜뉴스’ 정책들은 법률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13일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전국언론노동조합 공동 주최로 열린 긴급토론회에서도 방통위와 방심위의 “과잉조치와 권한남용” 등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비판적 견해가 주를 이뤘다.
“언론보도 가짜뉴스라 칭하는 건 권력자 불순한 의도”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정부가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짜뉴스’란 용어가 문제인 건 그 개념이 모호하고 자의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인 효과를 갖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언론보도를 가짜뉴스라 칭하는 건 언론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려는 권력자의 불순한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나 학계 등에선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허위조작정보’ 등으로 명확히 개념을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합의가 일반적으로 자리 잡았다. 방통위 역시 이동관 위원장 취임 전까지만 해도 공식 자료에선 ‘가짜뉴스’ 대신 ‘허위조작정보’란 표현을 주로 써왔고, ‘가짜뉴스’ 규제 대상으로 언론 보도를 직접 가리키진 않았다.
김 교수는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려는 정권에서 가짜뉴스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짚으며, 결국 “방통위·방심위가 추진하는 가짜뉴스 근절 대책은 권력이 불편해하는 언론보도를 행정청이 나서서 통제하겠다는 발상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도 “현재 정부가 규제하겠다는 가짜뉴스가 언론의 어떤 의도적인 왜곡만을 지칭하는 것인지, 허위조작정보가 아닌 모든 허위정보까지 규제하겠다는 것인지 그조차도 모호하면서 이미 어떤 규제를 어떤 방식으로 하겠다는 대책을 내놓고, 이후에 가짜뉴스의 정의나 판단 기준은 입법하겠다고 한다”며 “먼저 규제 조치를 내놓고 규제 대상을 이후에 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오 대표는 “지금 인공지능 이슈라든가,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 빅테크 플랫폼의 책임성 문제라든가 새로운 기술 발전에 따른 이슈들을 논의해야 할 시점에 다시 정부 검열에 반대해야 하는 이런 과거 퇴행적인 상황으로 간다는 게 사회적인 낭비”라고 말했다.
‘정치적’인 가짜뉴스 논란이 플랫폼 개혁 가로막는다
그러면서 “거대 플랫폼들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플랫폼을 정치적으로 압박해서 ‘가짜뉴스 삭제해’ 이런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DSA) 사례 등에 비춰봐도 “플랫폼이 불법·허위조작정보들을 처리하는 투명성이나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치가 필요한데, 오히려 지금과 같은 가짜뉴스 논란은 플랫폼을 정치권에 의해 핍박받는 존재로 만들어 플랫폼에 대한 개혁을 가로막는 문제까지 야기한다”는 것이다.
방통위가 “자율규제 기반”이라고 거듭 강조한 ‘패스트트랙’의 실체가 그 일단을 보여준다. 방통위는 지난달 27일 방심위 및 국내외 포털·플랫폼 사업자들과 민관협의체 회의를 개최하고 패스트트랙의 작동 절차를 이렇게 설명했다. “방심위는 접수한 사례 중 신속심의 여부를 판단하고, 필요한 경우 사업자에게 서면 등으로 자율규제 협조를 요청한다. 요청받은 사업자는 그 내용을 검토한 후, 해당 콘텐츠에 대해 ‘방심위에서 가짜뉴스 신속심의 중입니다’라는 표시를 하거나 삭제·차단 등의 조치를 취한다.”
그 이틀 전엔 네이버 뉴스 서비스의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 위반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사실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법에 따라 최대 과징금 부과(관련 매출액의 1/100), 형사고발 등 단호하게 조치하겠다고도 밝혔다. 같은 날 네이버는 “언론중재위원회 등 관계기관 심의상태나 결과에 대한 안내 위치를 최상단에 강조해 노출”하는 방식으로 뉴스 서비스를 개편했고, SNU팩트체크센터와 제휴한 언론사들의 팩트체크 콘텐츠를 뉴스홈에서 제외하는 리뉴얼도 단행했으며, 앞서 8월 말부턴 SNU팩트체크센터와 관련한 모든 재정지원을 중단했다.
“포털, 바람보다 빠르게 눕고 낮은 자세로 기어가”
이를 가리켜 김보라미 변호사(법률사무소 디케)는 “지금 포털사는 바람보다 빠르게 눕고 바람보다 더 낮은 자세로 기어가고 있다”며 “과연 이게 포털사의 자율규제인가? 전혀 그렇지 않고 협박성의 어떤 체계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총선 6개월 전에 언론사에 대한 대책으로써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패스트트랙을 가동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명확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지난달 4일 국회에서 “가짜뉴스 등의 잘못된 최종 제재 권한은 방통위에 있다”고 한 발언도 사실이 아니라며 “국제인권법을 정면으로 침해한다”고도 했다. 2018년 유엔총회에 제출된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보고서에선 “사법부가 아니라 정부기관이 합법적 표현인지 여부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규제 모델을 채택해서는 안 되며, 더 나아가 그 판단자로서의 책임을 기업에 위임해서는 안된다”고 기준을 제시한 바 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를 말살시키며 허위조작정보를 규제하면 안 된다는 게 유엔의 지속적인 지적사항”이라고 덧붙였다.
급조된 가짜뉴스 대책, 헌법적으로나 국제적 기준에도 반해
그는 “결론적으로 현 정부가 지금 추진하고 있고 9월달에 발표한 내용만 보면 국제적 기준에 반하는 것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고, 자율규제도 아니다”라며 “인터넷 언론사가 생산하는 뉴스를 사법적인 절차 없이 행정당국이 관여해서 제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디지털 회사가 자기들이 생산한 뉴스도 아닌데 그들이 자율규제의 주체가 되어서 뉴스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모두가 다 뉴스타파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실장은 “바로 그런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단순히 뉴스타파라고 하는 인터뷰 보도에 있어서의 부정확성, 사실의 누락 이것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며 “입법을 시작으로 해서 방심위가 거의 모든 언론에 대한 전방위적인 제재와 조치를 가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를 만들려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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