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으로 간 이순신…‘100원 공방’ 승자는?

김혜주 2023. 10. 1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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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세종대왕,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충무공 이순신. 이들의 공통점을 눈치채셨을까요?

후세의 존경을 받는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 외에도,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우리나라 지폐·동전에 자리 잡은 인물들이라는 점입니다.

역사적 인물을 화폐에 새겨넣을 때는 정부가 지정한 '표준영정'을 활용하는데요. 위인들의 동상이나 영정을 제작할 때마다 제작자에 따라 인물의 모습에 차이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이 표준영정을 활용해 만들어진 화폐 도안을 두고 법정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 '100원' 속 이순신 영정 둘러싼 저작권 분쟁…"유족이 상속" vs "한국은행에 귀속"

주인공은 100원 동전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00원 동전 도안에 그려진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그 주인공인데요.

100원 동전 속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그린 사람은 故 장우성 화백입니다.

장 화백의 이순신 장군 영정은 1973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됐는데, 1975년 한국은행이 이를 100원 동전 도안에 활용하기로 하면서 '화폐 도안 영정'을 새로 제작했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화폐 도안 영정은 얼굴 쪽 상반신만을 담아 굴곡이 있는 형태로 제작됐고, 이 영정을 활용한 100원 동전은 1983년부터 사용됐습니다.

현재까지 40년가량 해당 영정을 활용한 100원 동전이 사용된 건데, 장 화백의 유족 측이 이 40년 동안의 저작권료를 달라며 한국은행에 소송을 냈습니다.

KBS 뉴스9 '100원 속 이순신 영정의 위기'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88753

장 화백의 유족 측은 '해당 영정의 저작권은 제작자인 장 화백에게 있다'며 '한국은행이 이 영정을 활용해 동전을 제작한 만큼 저작권 이용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한국은행은 "화폐 도안 영정을 제작하기로 하면서 장 화백에게 대가로 150만 원을 지급해 저작권을 승계했다"며 저작권이 한국은행에 있다고며 맞섰습니다.

■ 법원 "'100원' 속 이순신 영정 저작권, 한국은행에 있어"

지난 9일 KBS는 2년이 넘게 펼쳐진 법정 공방의 양측 논리와 함께 결과가 곧 나온다는 소식을 보도했는데요, 오늘(13일) 드디어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과는 한국은행의 승리입니다.

서울 중앙지법은 오늘(13일) 장 화백의 유족이 한국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장 화백이 이순신 장군 영정을 제작하고 한국은행에 대금을 받은 사실이 있다"면서 "저작권법에 따르면 영정 저작권은 한국은행에 귀속됐다고 보는 게 상당하다"고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또 "화폐용 영정은 기존 표준 영정의 상반신만을 개작했고, 앞면부 굴곡이 들어가는 등 창작 요소가 가미됐다"면서 화폐용 영정은 표준 영정과 구별되는 별도의 창작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 판단에 대해 한국은행은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한국은행은 KBS와의 통화에서 "한은이 당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서 제작물 계약이 적법하게 체결된 사실 인정받았다"며 판결에 의의를 부여했죠.

또 "판결 내용을 참고해 앞으로 국민들이 화폐를 신뢰하고,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 저작권 논란에 무단 이용 논란까지…화폐 도안 둘러싼 논란들

사실 화폐 도안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한국은행이 수비하는 입장이던 이번과 달리, 공세를 편 적도 있죠.

지난 6월에 벌어진 '십원빵' 사건 얘깁니다.

‘십원 빵 디자인 바뀐다’…한은 “화폐 도용 용납X”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05131

'십원빵'은 10원 동전이 처음 만들어진 1966년도 당시의 형태를 본떠 만들어졌습니다.


십원빵 앞면의 다보탑과 '십 원', '한국은행'이라는 글자와, 뒷면의 숫자 10과 한국은행 영문 표기까지 1966년도 당시 10원 동전과 똑같습니다.

돈 모양 빵이 전국적으로 가맹점까지 확대하며 팔리는 것을 한국은행은 그저 '화젯거리'로 지켜보지 않았습니다.

'십원빵'이 화폐 도안 무단 이용 사례에 해당한다며, 한국은행이 십원빵 판매 업체들에 모양을 바꾸라는 공문을 보냈던 겁니다.

'화폐 도안 이용 기준'에는 교육·연구·보도·재판 목적을 제외하고는 화폐의 외관을 갖춘 모조품을 이용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업체들은 십원빵 모양을 일부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10엔'을 본따 만든 '십엔빵'이 판매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일본 재무성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낸 것과 한국은행의 조치가 비교가 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 법 개정안 발의까지…화제의 중심에 선 화폐 도안

이처럼 도안 무단 사용 논란이 불거지자 국회에서는 화폐 도안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한국은행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습니다.

하지만 화폐 위·변조뿐 아니라 실물화폐와도 확연히 구분되는 화폐 도안의 이용까지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작권·소유권과 창작의 자유 사이에서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지를 두고 논쟁의 불씨는 남아 있는 거죠.

한국은행이 화폐 도안으로 한 해 두 차례나 화제의 중심이 된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한은 입장에선 부담스러웠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의미는 있습니다.

대중이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십원짜리, 백원짜리 주화의 디자인에도 애정을 가지고 큰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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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주 기자 (khj@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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