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발사체부터 AI가 만드는 자막까지…테크 스타트업에 쏠린 눈 [긱스]
지난 11일 열린 블루포인트의 데모데이는 800여 명의 관람객이 몰렸습니다. 올해는 12개 스타트업이 무대에 올라 사업모델을 뽐냈습니다. 한경 긱스(Geeks)도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우주, 양자컴퓨터, 기후, AI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들을 소개합니다.
'아톰 vs 비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AC)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지난 11일 개최한 10번째 데모데이를 관통하는 주제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폭넓게 정의되는 딥테크 가운데서도 어떤 시도가 일상과 산업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다. 물리적 혁신을 물질의 기본 입자인 원자 '아톰'으로, 디지털 혁신은 정보 처리의 최소 단위인 '비트'로 표현했다.
이날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오른 이용관 블루포인트 대표는 "딥테크 분야는 연구개발 초기에 조용한 시기를 보내다가 기술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어느 순간 산업을 뒤흔드는 '티핑 포인트'에 도달해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다"며 "창업 초기부터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만들어 소비자에게 선보이고, 그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시장-제품 적합성(PMF)을 찾아가는 IT 서비스 스타트업과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이어 "물리 기반 혁신 위에서 비트 기반 혁신이 일어났고, 비트 기반 서비스가 한계에 도달하면 새로운 물리 혁신이 등장해왔다"면서 "이처럼 상보적 발전을 거듭해온 비트와 아톰은 우주항공, 양자컴퓨팅, AI, 전기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만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데모데이 현장엔 투자자, 학계, 대기업 관계자 등 800여 명이 몰렸다. 무대는 '아톰 vs 비트'의 구도에 따라 분류됐다. 우주(우나스텔라, 아이디씨티)를 비롯해 △양자(큐토프, 큐노바) △기후(포엘, 그리너리) △웰니스(트윈위즈, 써밋츠) △AI(유니컨, 소리를보는통로) △전기차(솔리텍, 스칼라데이터) 등 블루포인트가 3년 이내에 투자한 스타트업들이 피칭에 나섰다.
유인 우주 발사체 vs 소프트웨어 인공위성
우주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 민간 유인 우주 발사체 스타트업 우나스텔라가 무대에 올랐다. 이 회사는 고도 100㎞까지 유인 우주 비행을 할 수 있는 발사체를 개발해 준궤도 우주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전기모터펌프 사이클 엔진 시스템 기반의 자체 엔진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회사다.
최근 자체 개발 중인 연소기의 지상 연소 성능 시험을 성공했다. 이 연소기는 지상 추력 50kN(5톤급)으로 누리호와 동일한 추진제 조합인 케로신(Jet A-1)과 액체 산소를 연료로 채택했다. 또 지난해 12월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소형 로켓 엔진용 전기펌프'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해 전기모터 펌프 엔진 관련 특허 2건의 통상실시권을 부여받았다.
이 분야 '비트' 스타트업은 아이디씨티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회사는 실내 측위 문제를 해결하는 소프트웨어 인공위성을 만들었다. 기존 GPS 시스템은 지하나 터널 같은 음영 지역에서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회사가 내놓은 uGPS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설명이다. 류지훈 아이디씨티 대표는 "무선신호 발생을 소프트웨어로 조절하는 SDR 기술과 동기화된 신호를 40ns 이하의 오차로 제어하는 정밀 시각동기화 기술 등을 활용해 고속 주행 차량이나 실내외를 가릴 것 없이 연속 측위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이미 서울 지역에서 개념 검증(PoC) 과정을 거쳤다. 남산 1호터널에서 시속 50km로 주행하는 차량의 GPS가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고, 실내에 있는 잠실 환승센터의 버스 도착시간 정보 오차를 600초에서 14초로 개선하는 성과를 거뒀다. 류 대표는 "부산 대심도터널 건설 현장에 75억원 규모 제품 공급을 수주하는 실제 성과를 얻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미래 먹거리 된 양자
양자 분야 아톰 스타트업은 큐토프가 눈길을 끌었다. 원자력연구원 출신 정도영 대표가 창업한 이 회사는 레이저 기술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동위원소 분리 솔루션을 개발한다. 동위원소는 화학적으로 동일하지만 질량이 미세히 다른 원소로, 반도체 미세 공정이나 양자컴퓨터의 핵심 부품 제조에 활용된다. 동위원소를 산업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고순도로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비효율적이고 에너지가 많이 들어 비용이 비싼 게 단점이다.
회사는 레이저를 활용한 선택적 동위원소 분리 기술인 ALSIS를 개발하고 있다. 분리계수를 높이고 들어가는 에너지와 비용은 낮췄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회사는 동위원소 산소-18을 뽑아내 방사선의약품 회사 듀켐바이오와 공급 계약을 맺었다. 또 향후 탄소-12와 탄소-13, 중수소, 이터븀 등의 동위원소 소재를 개발해 국내외 대기업에 공급한다는 목표다.
이에 맞선 비트 스타트업은 큐노바다. 이 회사는 양자컴퓨팅을 활용한 신소재·신약 발굴 플랫폼을 개발한다. 양자 컴퓨팅 응용 분야의 핵심 기술인 양자 모사와 양자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활용하고 있다. 환경 문제에 관한 신소재 산업과 난치병 의약품 개발에 근본적인 혁신을 이뤄낼 것이라는 설명이다.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인 이준구 대표를 주축으로 꾸려진 이 회사는 전체 임직원 17명 중 8명이 박사학위자다. 이들의 논문 인용 수를 모두 합치면 2만7000회에 달한다. 회사는 최근 LG유플러스와 함께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6G 저궤도 위성 네트워크를 최적화하는 연구에 성공하기도 했다.
기후 위기 해결할 스타트업
포엘은 지구온난화 극복을 위한 제로에너지 냉각 솔루션을 선보인 스타트업이다. 이종헌 포엘 대표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축 중인 네옴시티 더라인 같은 어마어마한 건축물에서는 어마어마한 냉방 전력이 소모될 것"이라며 "이런 거대한 시장이 우리의 미래 먹거리"라고 설명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연구팀을 중심으로 꾸려진 이 회사가 내놓은 복사냉각 필름은 별도 시스템이나 전력이 필요없다. 회사 측에 따르면 이를 외피에 코팅하는 것으로 최소 10도 이상 온도를 낮춰준다. 또 복사열 방출량이 온도에 비례해, 외부 온도가 높아질수록 냉각 효율이 극대화된다는 게 장점이다. 지구를 시원하게 만들겠다는 게 회사의 비전이다.
그런가 하면 그리너리는 탄소 감축 투자 솔루션을 개발했다. 탄소중립에 필요한 탄소크레딧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들의 투자 수요는 많지만, 국내 감축 사업은 개별 사업자 단위로 파편화돼 있고 정보를 찾기 어려워 대부분 해외 감축 투자에 의존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황유식 그리너리 대표는 "감축 사업자들의 인식이 부족하고, 영세 사업자가 많아 이들을 모아 하나의 큰 프로젝트로 만들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큰 프로젝트로 만든다 하더라도 여기에 투자를 유도할 주체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회사가 내놓은 솔루션은 탄소크레딧을 직접 발굴하는 플랫폼이다. 감축량 인증, 탄소크레딧 발행 등 전 과정을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체 운영 중인 탄소크레딧 인증센터를 통해 기후전문가가 감축 방법론을 개발하고 감축량을 모니터링해준다. 황 대표는 "탄소크레딧 발행 시장은 현재 약 70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데, 2050년까지 100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회사는 내년 130만톤, 2025년 320만톤의 탄소크레딧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삶의 질을 올리는 웰니스 스타트업
웰니스 분야 아톰 스타트업으로 무대에 오른 트윈위즈의 김창수 대표는 기능성 액상 향균·향바이러스 첨가제를 만들고 있다. 팬데믹 이후 향균·향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기존 고체형 첨가제가 분말 형태가 많아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했다.
회사가 내놓은 액상형 첨가제는 제품의 색상이나 외관, 특성의 변화가 없이 향균 향바이러스 기능을 부여할 수 있는 무색의 투명 소재다. 또 1wt% 이하 소량 첨가만으로 적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추가 공정이나 설비가 필요하지도 않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사람의 손이 닿는 모든 영역이 진출 가능한 시장"이라며 "세계 최대 필름 생산업체인 도레이첨단소재를 고객사로 확보했고,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조폐공사 등과도 PoC를 진행 중에 있다"고 귀띔했다.
이 분야 비트 스타트업으로는 인도네시아향 미용 의료 플랫폼 마이비너스가 피칭에 나섰다. 성형수술 시장 정보 비대칭이 심하고 불법 시술이 난무하는 인도네시아 시장을 타깃으로 삼았다. 앱 안에서 병원, 의사, 가격, 후기 등을 검색하고 비교할 수 있고 가상 성형을 통해 수술 후 모습을 체험해볼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를 넘어 동남아 지역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크로스보더 플랫폼이 되겠다는 목표다.
지난해 4월 앱 출시 이후 누적 15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연 결제액은 120만달러를 넘어섰고, 앱을 통해 이뤄진 상담 건수는 1만 건을 돌파했다. 황유진 마이비너스 대표는 "현지 인플루언서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인도네시아 현지 한국 병원과 '한국형 클리닉'도 설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무선 커넥터와 자막 서비스
AI 스타트업 유니컨은 유선의 커넥터나 케이블을 대체하는 반도체 커넥티비티를 만드는 회사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기존 커넥터만으로는 신호품질에 한계가 있었고, 쉽게 파손되고 신뢰성도 떨어졌다. 회사는 도체의 연결 없이 반도체와 전자기파만으로 데이터를 전달할 수 있는 커넥티비티를 만들고 있다. 6Gbps(초당 60억개 비트 전송) 속도에서도 우수한 신호 품질을 보인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회사는 손톱 보다 작은 크기의 커넥터 칩을 전자제품 조립·검사 공정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공정에서는 기기 하나 하나에 케이블을 직접 연결하며 검사해야 했다. 김영동 유니컨 대표는 "칩 개수를 기존의 25%만 사용해도 돼 비용 절감 효과가 있고 자동차나 스마트폰 같은 주류 제품군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리를보는통로(소보로)는 AI 자막 서비스를 내놨다. AI가 실시간으로 음성을 인식해 자막을 제공한다. 강연이나 회의에 활용이 가능하다. 청각장애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윤지현 소보로 대표는 "미국이나 영국은 이미 자막이 의무화돼 있다"며 "자막을 보편화해서 접근성과 전달력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생성된 자막을 편집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AI의 도움뿐 아니라 검수 과정에서 필요시 속기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 인력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회사의 자막 서비스 누적 이용 시간은 8만 시간, 서비스를 도입한 고객사는 800곳에 달한다. 청각장애 학생들이 있는 지역별 교육청과 대학교에서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서도 활발한 도입이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기차 시대 이끌 스타트업은
전기차 시대를 책임질 스타트업은 전고체 2차전지를 만드는 솔리텍이 꼽혔다. 이 회사의 유기 결정 고체전해질은 전해질 주입 공정 시 액체 상태를 유지하지만 전지 구동 시에는 고체 상태로 변한다. 이런 공정을 통해 고체전해질의 전극과의 밀접 접촉을 구현할 수 있다. 불안정하고 불이 붙기 쉬운 액체 전해질의 한계를 해결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이호춘 솔리텍 대표는 "연구실 단계에서 검증을 마쳤고, 양산 전지에서 재검증을 거치고 있다"며 "2025년 모바일 기기 적용, 2028년 자동차 적용을 목표로 하고, 2030년엔 전고체 배터리 분야 대표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회사는 전기차 충전 플랫폼 '모두의충전'을 운영하는 스칼라데이터다. 이 회사는 전기차 충전기 정보 안내 서비스를 비롯해 결제 방식을 통합한 '모두페이', 찾아가는 충전 서비스 '대리충전', 원격 차량 관리 서비스 '마이카' 등을 제공한다. 윤예찬 스칼라데이터 대표는 "내년 매출은 14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내후년께 프리IPO 단계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앞서 지난해 말 GS에너지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GS에너지는 이 회사의 2대주주 자리에 올라 있다. 두 회사는 전략적투자 관계를 통해 전기차 충전 플랫폼 사업과 수요반응사업(EV DR) 등에서 협업한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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