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피프티 "39kg·공황장애에도 소속사 배려 無…얼마나 더 아파야 하냐" [전문]

이우주 2023. 10. 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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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이우주 기자] 그룹 피프티피프티가 건강 악화 속 소속사의 케어는 전혀 없었다며 다시 한 번 소속사 어트랙트를 저격했다.

13일 피프티피프티는 "저희는 얼마나 더 아파야 제대로 된 관리를 받을 수 있냐"며 추가 입장문을 게재했다. 피프티피프티 멤버들은 쓰러져도 아파도 멤버들의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피나는 노력을 알기에 누구 하나 포기할 수 없었고 견디고 또 견뎌내야 했다. 저희의 아픔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저희도 보호받고 싶었다"며 "아픔을 견디지 못해 맨발로 새벽에 구급차를 혼자 불러서 실려가도, 혼자 쓰러져 있어도 보호자는 곁에 없었다. 그저 멤버들끼리 의지하고 서로 업고 응급실을 오가며 버텨왔다"고 호소했다.

멤버들은 모든 곡들이 피와 땀의 결정체라며 "'Lovin Me', 'Tell Me' Higher' Log-in'은 공황장애로 여러 차례 발작한 끝에 길바닥에 실신하여 산소호흡기로 깨어난 멤버가 끝내 참여하여 완성한 곡들이다. 'Cupid'는 만성 염증을 겪는 멤버가 수술도 미루며, 새벽까지 진통제를 복용하고 참아내면서까지 참여하여 완성한 곡"이라 주장했다. 이어 멤버들 한 명 한 명 자신이 겪었던 증상들과 의사 소견서 등을 함께 첨부했다.

새나는 다이어트로 인한 강박과 탈모, 생리불순 등을 겪고 39kg까지 살이 빠졌다고 밝혔다. 시오는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을 진단 받았고 소속사의 극단적 다이어트 강요로 신장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고 밝혔다.

담낭 수술을 받았던 아란은 잡혀있던 스케줄을 무산시킬 수 없어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을 미뤘다며 "진실한 위로와 배려는 없었다. 별별 소문이 다 돌고 있는 와중에도 수술 후 후유증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합쳐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한달 사이 체중이 7kg 이상 됐다. 단 한 순간도 도움 받지 못한 채, 저는 루머의 희생양이 됐다"고 호소했다.

wjlee@sportschosun.com

▶다음은 피프티피프티 입장문 전문

저희는 얼마나 더 아파야 제대로 된 관리를 받을 수 있나요?

쓰러져도 아파도 멤버들의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피나는 노력을 알기에 누구 하나 포기할 수 없었고 견디고 또 견뎌내야 했습니다! 저희의 아픔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도 보호받고 싶었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저희의 불미스러운 사태를 바라보셔야 하는 모든 분들께 송구하고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차마 들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마음 속에는 팬 분들께 언젠가는 반드시 보답하고,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용기를 내어 저희의 아픔을 드러내려 합니다. 저희는 얼마나 더 아프고 고통스러웠어야 소속사의 제대로 된 관리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여러 형태의 부상은 여느 아이돌들에게도 공기와 같이 존재함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무대는 아픔 속에 서도 멤버들의 음악을 하고자 하는 간절함과 열정이 식지 않았기에 가능합니다. 이것이 아티스트로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꿈을 이루는 힘겨운 과정이라는 것을 저희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 그런 과정 속에 있는 모든 아티스트들을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 과정 속에서 느꼈던 고통들을 별것도 아닌 당연한 것들이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아픔을 견디지 못해 맨발로 새벽에 구급차를 혼자 불러서 실려가도, 혼자 쓰러져 있어도 보호자는 곁에 없었습니다. 그저 멤버들끼리 의지하고 서로 업고 응급실을 오가며 버텨왔습니다.

A. 모든 곡들은 멤버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 이기도 합니다.

'Lovin Me', 'Tell Me' Higher' Log-in'은 공황장애로 여러 차례 발작한 끝에 길바닥에 실신하여 산소호흡기로 깨어난 멤버가 끝내 참여하여 완성한 곡들입니다.

'Cupid'는 만성 염증을 겪는 멤버가 수술도 미루며, 새벽까지 진통제를 복용하고 참아내면서까지 참여하여 완성한 곡입니다.

B. 멤버들은 이제서야 말하고 있습니다.

새나-저는 다이어트로 인한 심한 강박과 내부 환경 스트레스로 탈모 현상도 왔으며 약 복용 없이는 생리를 하지 않습니다. 현재도 그러합니다. 호르몬이 완전히 바뀌었고 신체 변화를 적응하는데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었습니다. 거식과 폭식의 증상이 동반되며 급기야 39kg까지 감소하는 증세도 있었습니다.

시오- 저는 데뷔 전 2022년 7월경부터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몸의 떨림과 두통을 시작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블랙아웃이 잦아져 정신과를 찾았고 중증도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 차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심지어는 외출하는 것조차 저에게는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큰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었습니다. 언제 또 증세가 나올지 공포스러웠고 활동 중 빈번하게 발생했던 돌발 상황에도 회사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혼자서 약으로 버티고, 약 이 없으면 실신하는 것 밖에 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회사 임원과 미팅 중에 밀려오는 압박감과 긴장을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다 저도 모르게 손을 지속적으로 긁어 손가락 사이가 찢어진 적이 있습니다. 소독과 연고로 해결되지 않아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치료 도중 눈 앞이 하얘지더니 산소 포화도가 급격히 내려가 병원에서 실신을 했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저에게 산소 호흡기를 달고 119를 부르셨습니다. 당시 부모님과는 떨어져 있었기에 상 주 매니저가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지만 매니저는 119 대원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 들었음에도 택시 타고 숙소에 가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같은 증상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반복되었지만 회사는 아무런 조치도, 위로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겐 고통스럽고 힘든 기억인데 누군가에게는 조롱거리가 된다는 게 너무나도 괴로운 상처가 됩니다.

데뷔 초에는 초절식과 단식 등 극단적인 다이어트로 인한 신장 관련 건강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대학병원을 다니며 적절한 식단 관리를 해야 했고 의사선생님께서는 신장 투석을 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건강한 식사를 해야 한다 권하셨지만 회사에서는 여전히 다이어트를 강요했습니다. 회사는 건강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말을 했지만 몇 그램이라도 오르면 살 빼라 하며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아란-저는 18살에 담낭을 떼어냈습니다. 떼어 낸 담낭 사진은 십대의 것이라 보기 힘든 수준의 병든 모 습, 저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데뷔 전 10월부터 아팠습니다. 처음엔 위장염인 줄만 알았지만, 처방약이 듣지 않았고, 컴백이 결정 되고 난 1월이 되어서야 병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 증이나 수술에 대한 설명은 그 후부터 매니저님을 통 해 소속사에 보고했었습니다. 믿기지가 않아서 초진을 받은 병원과 대학병원 검진을 병행했습니다. 활동을 위해 건강해질 수만 있기를, 수술을 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올해 1월에 급성으로 시작된 담낭은 만성 담낭염으로 자리 잡아갔고, 두 개였던 1cm이상의 용종들은 수술 당시에는 더 개수가 늘어나 있었습니다. 암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고도 들었고, 급작스레 언제 수술을 들어가야 할지도 몰라서 불안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특별한 치료약이 없기에 수술을 바로 권유하셨지만, 잡혀 있던 컴백 스케줄을 무산시킬 수는 없었기에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얼마를 더 버티면 수술 받을 휴가를 주실 건지 알 수 없었고, 하루도 고통 없이 지난 날이 없었습니다. 입으로 들어간 것들을 매일 밤 입으로 다 내어 놓으며, 수개월을 진통제로 버티고, 밤을 고통 속에서 지새웠고, 아침이면 활동을 나갔고, 허기가 져도 20일 이상 배설이 불가했고, 소화 불량으로 인해 먹어도 안 먹어도 가스가 복부에 가득 차오르고 몸이 부어 고통스러웠습니다. 수개월 병자인 멤버에게 병 중에 체중감량의 예외조차 허락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주 7일 속옷바람에 체중을 재어 보고를 했었습니다. 0.1 Kg의 예외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체중 검량의 중압감으로 급기야 몇 일씩 금식을 밥 먹듯 했습니다. 모두가 힘들기에 누구에게 도 솔직하게 못 견디겠다 입을 때지 못했습니다. 그 저 언제 수술을 할 수 있는지, 언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만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지친 마음과 병든 몸은 이미 한계치였습니다.

예정된 수술 일정은 4월 초에서 더 미뤄졌고, 수술 직 전까지 멤버들과 소속사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려 최 선을 다 했습니다. 회복기간의 공백을 위해 녹음과 촬영도 무리해서 해 두었습니다. 차후 정상적인 연습 이 불가능할 상황이라 충분한 회복기를 사전 요청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수술을 받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에도 언제 복귀할지 지속적으로 소속사에서 안부 명목으로 채근을 받았기에 스트레스가 극심 했고, 6월 초에는 사전 고지도 없던 광고 촬영일을 재차 권유 받았기에 너무도 두렵고 겁이 났습니다. 소송 직후에는 소속사 분들이 대화를 하자면서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분께서 여러 차례 불쑥 집 앞으로 찾아 와 문을 크게 치고 몇 번이고 벨을 누르시고, 집 앞에 몇 시간이고 상주하셔서, 저는 겁에 질려 주저 앉았습니다. 그 이후로 마음이 굳게 닫혀 가족들에게 조차 도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는 것이 힘든 시기였습니다.

진실한 위로와 배려는 없었습니다. 별별 소문이 다 돌고 있는 와중에도 수술 후 후유증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합쳐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한달 사이 체중이 7kg 이상 감량되었고, 극심한 체력 저하로 오래 서 있기도 불가능했기에, 뭐든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단 한 순간도 도움 받지 못한 채, 저는 루머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가족들이 겪은 고통 또한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는 소속사에서 조금의 배터리라도 남아 있으면 움직이는 기계와 같았습니다. 더 이상 제 음악을 담아내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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