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급종 볍씨로 재배했는데, 엉뚱한 품종이 섞였다니요?”

김광동 2023. 10. 1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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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종 볍씨 ‘현품’ 육묘해 이앙…수확해보니 엉뚱한 품종
거제 신원재씨 “향후 5년 공공비축미 수매 제한 억울” 호소
신원재씨가 자신의 논에서 수확을 앞둔 벼를 가리키고 있다. 신씨는 지난해 정부 보급종 볍씨로 벼를 재배해 공공비축미 수매에 응했으나 타 품종이 혼입된 것으로 판명받아 향후 5년간 공공비축미 수매에 응할 수 없게 됐다.

“정부에서 공급한 볍씨로 정성껏 농사를 지어 공공비축미 수매에 응했는데, 전혀 엉뚱한 품종이 대거 섞였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경남 거제시 연초면에서 벼농사를 짓는 신원재씨(65)는 당장 올해 수확한 벼부터 5년 동안 정부의 공공비축미 수매에 참여할 수 없게 된 것과 관련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신씨는 지난해 초 정부에서 공급하는 보급종 볍씨 ‘현품’ 20㎏들이 2포대를 구입, 자가 육묘를 거쳐 자신의 논에 이앙하고, 10월 수확한 산물벼를 정부의 2022년산 공공비축미 수매에 응했다. 신씨가 정부 수매에 출하한 산물벼는 40㎏들이 40포대다. 거제지역엔 농협에서 운영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과 건조저장시설(DSC)이 없어 농가들은 수확한 벼를 민간 시설에 출하하기 보다는 정부수매를 선호한다. 정부수매 가격이 40㎏ 한 포대당 8000~9,000원가량 더 높아서다. 

문제는 신씨가 공공비축미 수매에 나설 때 품종검정제도에 따른 표본 추출 농가로 선정돼 출하한 벼의 시료 검사에 들어가면서 발생했다. 정부는 쌀 수급 안정과 고품질 쌀 생산·유통을 확산하기 위해 2018년부터 공공비축미 품종 검정제를 시행 중인데, 다수확 품종은 매입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 제도에 의해 공공비축미 수매에 응한 농가가 당초 계약서에 기재한 품종과 다른 품종을 출하할 경우 향후 5년간 출하 제재를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 수매를 담당하는 거제시는 신씨가 출하한 벼 가운데, 600g을 수매 현장에서 시료로 채취해 한국농업기술진흥원에 유전자(DNA) 검사를 맡겼다. 시료는 신씨 입회하에 거제시 공무원이 채취했다고 한다. 하지만 올 7월 신씨에게 통보된 검정 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시료의 62.5%만 ‘현품’이고 나머지 37.5%는 ‘해품벼’로 판명된 것.  

거제시 관계자는 “공공비축미 시료의 DNA 검사를 통해 타품종 혼입 비율이 20%를 넘으면 페널티가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신씨의 시료에서 ‘현품’이 아닌 다른 품종(해품벼) 혼입률이 37.5%에 달해 제재 대상이 됐다는 얘기다. DNA 검사를 펼친 최명섭 한국농업기술진흥원 유전자분석 총괄은 “보급종 볍씨 시료의 DNA 검사 결과를 의뢰 기관에 그대로 알렸고, 검사 신뢰도는 99.999%에 이른다”고 밝혔다. 

그러자 신씨는 “정부에서 보급한 ‘현품’으로 재배했는데, 타 종자가 섞였다면 정부 보급종 자체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는 내용으로 이의 신청서를 거제시에 제출했다. 이에 거제시는 신씨에게 추가 검사를 제의했지만 신씨가 받아들이지 않자 품종검정 위반 농가로 최종 결정하고 ‘2023년부터 향후 5년간 공공비축미 참여에 제한됐다’는 사실을 문서로 통보한  상태다. 

윤재미 거제시 주무관은 “이의를 제기한 신씨에게 구제받을 기회를 주려고 시료 재검사를 제의했는데 신씨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신씨가 DNA 재검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해 재검사를 위해 남겨둔 시료가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시료 DNA 검사비는 1차의 경우 행정기관이 부담하지만 2차는 이의를 제기한 쪽에서 내야 하는데, 신씨는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벼 DNA 검사비는 29만원 정도로 알려졌다. 

신씨는 “전체 논 1500평에 극히 일부에만 찰벼를 재배하고 나머지는 모두 정부에서 보급한 볍씨 ‘현품’을 이앙했는데, 엉뚱하게 ‘해품벼’가, 그것도 3분의 1 이상 나온 것은 분명 보급종 볍씨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자가소비용으로 재배한 찰벼 품종이 어느 정도 섞여 있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만져보지도 않은 해품벼가 섞였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볍씨를 공급한 국립종자원 경남지원은 정부 보급종 볍씨에 타 품종이 혼입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거제 전역에 보급종 ‘현품’ 볍씨가 1t이나 나갔지만 신씨 외에는 타 품종이 혼입됐다고 민원을 제기한 농가가 없다는 점에 미뤄볼 때 신씨가 육묘·수확·탈곡·운송하는 과정에서 타 품종이 혼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밝히고 있다. 특히 볍씨를 생산할 때는 지정된 채종포에 직원들이 수시로 방문 관리를 엄격히 하고 있고, 중만생종인 ‘현품’과 조생종인 ‘해품벼’는 출수 시기부터 달라 두 품종은 절대 섞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강승규 국립종자원 경남지원장은 “볍씨를 채종한 후 타 품종 혼입 여부를 가리기 위해 DNA 검사까지 거쳐 합격한 것만 보급종 볍씨로 공급한다”면서 “만일 사태를 대비해 보급종 볍씨 샘플을 1년간 보관하는데, 1년이 지난 현재 문제의 볍씨는 종자원에도 남아있지 않고 신씨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해 이상 유무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에 신씨는 “평생 농사만 지어온 농부 입장에서 벼 품종 혼입으로 5년씩이나 공공비축미 출하를 제한받게 된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며 “행정기관이나 종자원이나 모두 책임이 없다는 식이어서 분통이 터진다”며 가슴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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