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송배전망 20조 투자 '발등에 불'…"빚더미 한전 감당 못해"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2023. 10. 1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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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때 태양광 늘리다 뒷전으로 밀린 전력망
주요 발전설비 동·서해안 집중
전력 수요 수도권에 43% 몰려
수도권·비수도권 망 연결 시급
신한울 2호기 새원전 가동해도
송배전망 강화없인 무용지물
송전탑 건설 주민 민원 많아
정부가 속도감있게 조율해야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투자 확대로 대규모 전력 수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재 동·서해안에 편중된 발전원에서 전기를 전국에 보내려면 앞으로 10년간 20조원이 넘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 방침을 밝혔지만 송배전망을 강화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특히 200조원이 넘는 부채에 시달리는 한국전력공사가 전력망 구축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한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전은 2032년까지 지역 간 전력 융통 선로 보강 투자비로 총 20조6359억원을 설정했다.

이 중 영동권, 호남권, 중부권 등에서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전력 융통 선로 보강 사업의 투자비는 9조7383억원, 영호남권에서 중부지역으로 보내기 위한 사업의 투자비는 10조8976억원에 달한다.

지역 간 전력 융통 선로 보강은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주요 작업 중 하나로 꼽힌다. 주요 발전설비가 동·서해안 등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고,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편중돼 대량의 전력을 보낼 수 있는 경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전력 수요는 2021~2022년 겨울철 최대 부하 기준 36.7GW(기가와트)에 달해 전국의 42.9%를 차지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잇는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재인 정부 시절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무분별하게 확대한 점도 송배전망 부실화를 부추겼다. 전국 각지에서 생산한 전기를 필요한 곳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은 고민하지 않은 채 당장 발전용량을 확대하는 데 정책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봄·가을철이나 설·추석 등 에너지 수요가 적은 기간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에 대비해 원자력발전 출력을 줄여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신한울 2호기 등 새로운 발전원이 올해 본격 가동될 것으로 보여 송전망 부족 현상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신한울 2호기가 본격적으로 전력 공급을 시작하면 동해안 일부 석탄화력발전소는 원전에 급전 순위가 밀려 가동률을 현재 60% 수준에서 30%대로 낮춰야 한다는 분석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력 정책은 발전소만 지으면 끝나는 게 아니다"면서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긴밀하게 망을 구성해야 소비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정부에서 전력망 보강을 소홀히 한 부작용이 앞으로 더 크게 돌아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늘어나는 전력 생산량에 맞춰 송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정부도 제10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2022~2036년)을 통해 민간의 송전망 확충사업 참여를 핵심 정책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발전업계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정부 계획을 믿고 들어온 발전소들도 투자비는 물론 송전망 부족으로 인한 발전 제약에 대한 피해 보상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송변전 설비 준공 작업이 건설 반대 민원 등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전에 따르면 제9차 송배전 설비계획 기준 송변전 설비 688건 중 13%에 달하는 87건에서 사업이 지연됐다. 지연 사유로는 시공 여건 변화가 32건으로 가장 많았고 인허가 문제(21건), 고객·개발사업자 책임(20건), 민원(14건) 등이 꼽혔다.

전문가들은 200조원 넘는 부채에 시달리는 한전이 재정난 속에서도 전력망 구축 작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는 간헐성 문제와 더불어 지리적으로 수요지까지의 괴리가 커 대규모로 송배전망을 건설할 필요성이 높다"며 "이는 동해안에 집중된 원전과 석탄 등 화력발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수요공급 미스매칭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전력망 보강 없이 추가 발전설비를 짓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양 의원은 "송전망 건설은 전통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민원에 자주 부딪혔던 이슈"라며 "건설의 속도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민심을 조율하는 작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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