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훈 주싱가포르대사 “韓, 탄소배출권 등 특화금융시장 만들어야”

싱가포르=김남균 기자 2023. 10. 13. 17: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훈 주싱가포르한국대사 인터뷰
“싱가포르, 탄소중립·자선펀드 시장창조”
“한국도 반도체·조선·해운 등 장점 살려야”
“금융허브, 교육·주거 등 생활 인프라 중요”
최훈 주싱가포르대한한국대사가 13일 주싱가포르한국대사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김남균 기자
[서울경제]

“글로벌 자본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시장을 바라보며 싱가포르에 찾아옵니다. 서울과 부산도 금융 허브가 되기 위해선 특정 분야에서 다른 시장보다 매력적인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최훈 주싱가포르한국대사는 13일 주싱가포르한국대사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한국의 주요 도시들이 글로벌 금융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 “싱가포르가 1970년대 아시아 달러마켓 중심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인프라와 제도를 체계적으로 개선한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다양한 금융 분야에서 우리만의 특장점을 발굴하는 전략 측면과 시장 관계자들이 한국에 머무를 수 있게 하는 인프라 측면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대사는 탄소배출권 거래가 한국의 특장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각에서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로 국내 산업 경쟁력이 위협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국내 산업의 ‘바잉파워(구매력)’가 높다는 것”이라며 “탄소배출권에 대한 높은 수요를 시장 창출로 연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사는 “국내 기업들이 반도체와 조선, 해운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만큼 이들 산업과 관련된 특화금융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만 해도 탄소중립과 자선펀드(Philanthropy Fund·자선사업 지원 펀드) 시장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말 등록 펀드 기준 싱가포르 내 운용자산(AUM)은 약 5조 4000억 싱가포르 달러(약 5315조 원)이다. 이는 한국에 등록된 펀드 AUM(약 1500조 원)의 3배가 넘는다. 최 대사는 “싱가포르통화청(MAS)이 운용자산군을 확대하겠다며 탄소중립 시장을 제시했는데 이는 관련 서비스를 선도적으로 제공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교육과 언어, 법률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 대사는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 관점에서 살기 편해야 한다”며 “싱가포르에는 초중등교육기관 기준 100개가 넘는 국제학교가 존재하기 때문에 해외 인력들이 안심하고 싱가포르로 올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외국 직원 입장에서는 가족 단위의 주거 환경과 언어(영어), 법률 서비스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 대사는 한·싱가포르 간 경제 협력부문에 대해 전기자동차와 인프라를 꼽았다. 그는 “대사관에서 각 부문별 양국 간 협의회 개최를 정기적으로 조율하고 있으며 특히 기업의 경우 건설과 해운, 상사, 에너지 등 분과별 협의회까지 따로 만들었다”며 “2025년 수교 50주년을 앞두고 양국 간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사는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후 영국 버밍엄대 대학원에서 국제금융학 석사, 중국 대외경제무역대학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35회로 공직을 시작해 기획재정부 자금시장과장과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2021년 5월 주싱가포르 대사에 임명됐다.


다음은 최 대사와의 일문일답.

-2021년 주싱가포르 대사 부임 후 2년간 싱가포르 자본시장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운용 자산(AUM)의 규모와 투자 카테고리가 확대되고 있다. 단적인 증거가 바로 패밀리오피스(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사적 투자 전문 회사)다. 싱가포르 내 패밀리오피스는 2020년 400여개에서 지난해 말 1100여개로 늘었다. AUM이 급격히 늘어나는 건 싱가포르가 고유한 시장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싱가포르가 확장해 나가려는 시장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싱가포르통화청(MAS)는 ‘2025년 금융 서비스 전환 로드맵’에서 운용자산군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탄소중립 시장이 그 하나이다. 이는 단순히 자국 탄소금융 시장만을 강화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린본드 발행을 비롯한 관련 서비스를 선도적으로 제공하여 아세안 지역 기업과 정부들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돕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싱가포르가 탄소중립 시장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자선펀드(Philanthropy Fund, 자선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운용하는 펀드) 시장 역내 선점도 노리고 있다. 자선펀드는 우리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글로벌 선진금융 시장에서는 다양한 자산군 운용에 있어 자선사업을 선택지로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헤지펀드 대부로 불리는 레이 달리오도 자신의 직업을 투자자 겸 독지가(Philanthropist)라고 종종 소개한다. 싱가포르는 사회환원을 위한 기금 운용 수요에 적극 대응해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강화, 홍콩보안법 시행 등으로 홍콩이 아시아 제 1의 금융허브 자리를 싱가포르에 내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과 싱가포르 두 도시는 각기 고유한 특장점이 있으며 홍콩이 지위를 넘겨줬다는 평가는 성급한 측면이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여전히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홍콩이 중국 본토 접근성, 주식 시장 등에 강점을 갖는다면 싱가포르는 아세안 지역 접근성, 외환 시장 등에 강점을 갖는다. 동아시아내 인접국가지만 두 도시 모두 금융 허브 지위를 갖고 있는 셈이다. 금융 기능을 평가할 때 단순히 넓은 의미로서의 금융이 아닌 특화된 부분을 들여다 봐야한다.

-최근 국내 자본이 싱가포르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국내 자본은 떠오르고 있는 아세안 시장 공략을 위해 싱가포르에 거점 내지 헤드쿼터를 만들고 있다.

크게 네 가지 이유를 꼽는다. 우선 싱가포르의 정책 기조가 비니지스 프랜들리하다는 점이다. 교통의 요지이면서 인도, 호주까지도 투자 네트워크가 뻗어있다. 투자 활동에 적합한 글로벌 스탠다드를 갖춘 인재도 풍부하다. 여기에 우리 정부 역시 싱가포르 진출과 관련해 여러 지원책을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대사 부임 후 KB국민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주택금융공사 등이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우거나 지점을 냈다. 예를 들어 주택금융공사는 커버드 본드(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하는 유동화 채권)를 유로화로 발행해 싱가포르 채권시장에 상장시키고 있다. 싱가포르 채권시장 성숙도가 높고 관련 플레이어도 여기에 몰려있으니 주택금융공사 역시 싱가포르 현지에서 시장에 참여하는 게 효과적이다.

-국내 벤처캐피탈(VC)들의 싱가포르 지사 설립도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 등록 펀드 기준 싱가포르 내 운용자산(AUM)은 약 5조 4000억 싱가포르 달러(약 5315조 원)다. 우리나라는 9월 말 현재 약 1500조 원으로 싱가포르의 3분의 1 수준이다. 인프라와 다양한 자산운용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투자은행(IB) 시장 참여자들이 싱가포르로 몰려드는 것이다.

VC를 포함한 우리 자본은 진출규모가 작기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한국자본은 아직 연못 속에 뛰어든 개구리에 불과한 실정이다. 다만,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동남아 지역에서 굉장히 좋기 때문에 코리아라는 브랜드와 결합하여 우리 영향력을 키워나갈 여지가 있다고 본다.

-금융위는 서울(여의도), 부산(문현지구)를 금융중심지로 지정하고 있는데 두 도시가 글로벌 금융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을 싱가포르에서 찾는다면 무엇인가.

△2021년 싱가포르로 부임하면서 가진 각오는 '우리 금융시장 발전에 적용할 수 있는 선진 매커니즘을 찾자'는 것이었다. 글로벌 자본은 싱가포르 시장이 아닌 아세안 시장을 바라보며 싱가포르로 찾아온다. 싱가포르가 좋은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과 부산이 이 같은 금융 허브라는 플랫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울, 부산 등이 그리는 금융허브 비젼의 구체적인 모습을 확고히 해야 한다. 막연히 싱가포르, 홍콩과 같은 경쟁도시의 모습이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 다른 시장보다 매력적인 시장기회를 줄 수 있다’는 밑그림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시장 참여자들이 한국에 머물 수 있게 하는 인프라 측면과 다양한 금융 분야에서 우리만의 특장점을 발굴하는 시장전략 측면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인프라 측면이란 무엇을 의미하나.

△제이피모건 경영진이 회사의 유망한 트레이더에게 아시아 시장으로 이동을 지시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직원이 당장 무엇을 고민할 것 같은가. 직원 입장에서는 가족 단위의 주거 환경과 자녀 교육은 물론 언어 사용, 법률 서비스 수준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밖에 없다. 한 마디로 글로벌 스탠다드 관점에서 '살기 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에는 초중등교육 기준 100개가 넘는 국제학교가 존재한다. 문화적인 수용성도 높다. 외국 인력들이 안심하고 싱가포르로 이동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생활 인프라 뿐 아니라 조세, 외환, 전문인력, 규제체계 등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시장전략 측면이란 무엇을 의미하나.

△싱가포르가 탄소중립, 자선펀드 시장을 육성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도 어떤 콘텐츠에 특화한 시장을 만들 것이냐다. 중요한 건 다른 시장이 이미 선점하고 있는 시장을 뺏어온다는 개념이 아니다. 싱가포르가 '70년대 아시아 달러마켓 중심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인프라, 제도를 체계적으로 개선해 목표를 이룬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탄탄한 제조업망이 있으니 현재 금융 시장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 강화로 국내 산업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이를 거꾸로 뒤집어 생각하면 국내 산업의 '바잉파워(구매력)'가 높다는 것이다. 탄소배출권에 대한 높은 수요를 시장 창출로 연결해나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 외에도 반도체, 조선, 해운 등 경쟁력 있는 국내 산업에 수반되는 전문 금융 시장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

-한·싱가포르 외교 관계 현황도 궁금한다.

△싱가포르는 한국과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안이 없는 유사입장국(like minded country)이다. 2021년 10월 아시아 지역에서 코로나19 트래블버블(여행안전권역 협약) 협약을 맺은 최초 국가도 싱가포르였다. 당시 주한싱가포르대사관, 주싱가포르한국대사관, 양국의 외교부와 국토부 등의 협력 끝에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양국간 항공편이 오갈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쌓은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디지털 통상협정인 '한-싱가포르 디지털동반자협정(DPA)'도 체결될 수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한-아세안 연대 구상(KASI)에서 싱가포르의 역할은 무엇인가.

△KASI는 기존의 신남방정책보다 아세안 지역 국가들과의 상호 협력을 한층 끌어올린 지역전략이다. 아세안 선도국가인 싱가포르는 아세안 지역에서 한국의 협력 수준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핵심 협력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최근 환경부는 싱가포르 환경청과 우리의 정지궤도 위성(천리안위성 2B호)이 수집한 데이터들을 싱가포르 정부, 연구기관에 제공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두 나라가 가진능력을 합쳐 아세안 지역의 대기 오염, 기후 변화 등 문제에 대해 공동대응하는 셈이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과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와의 첫 정상회담이 있었다. 앞으로의 양국 간 협력 계획이 궁금하다.

△전기차, 인프라 부문에서 기존에 많은 협력이 이뤄졌는데 앞으로 더욱 고도화 될 것이다.

당장 다음달 현대차에서 전기차 전용 스마트팩토리인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를 오픈한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싱가포르제조연합회(SMF) 등 민간 영역에서도 전기차 관련 공동 포럼(12일)을 주최한다. 국내 대형 전기차 회사가 진출하는 만큼 이를 계기로 다양한 채널에서 수시로 소통하고 있다.

또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마리나 베이 샌즈를 쌍용건설이 시공했을 정도로 인프라 분야에서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지하철(MRT), 간척 공사(투아스 항만) 등에 한국계 시공 업체들이 두루 참여하고 있다.

대사관에서는 기업, 금융 등 각 부문별 협의회를 정기적으로 조율하고 있으며 특히 기업의 경우 건설, 해운, 상사, 에너지 등 분과별 협의회까지 따로 만들었다. 주싱가포르 대사로서 각 협의회에 한 달에 한 번씩 참석해 현안을 챙기고 있다. 2025년 수교50주년을 앞두고 양국간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여러 현장의 의견을 듣고 있다.

싱가포르=김남균 기자 south@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