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노동개혁 안하면 0% 저성장 수렁"
고령화로 재정악화 예상
돈 풀어 경기부양은 안돼
건전재정 국제사회 화두
IMF도 韓정책 긍정 평가
"0%대 성장을 피하려면 노동시장 구조조정 같은 생산성 혁신이 꼭 필요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현지시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와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마라케시를 방문 중이다.
한국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5%대였는데 현재 2%대로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획기적인 정책 변화가 없는 이상 한국 잠재성장률이 2030년대 0%대까지 추락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잠재성장률은 노동력과 자본을 비롯해 한 나라가 가진 자원을 최대로 활용하면서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잠재성장률이 하락한다는 것은 나라 경제 기초체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요즘 한국 잠재성장률은 2% 선을 생각하고 있는데, 저출산·고령화 때문에 더 낮아질 것이란 게 일반적 견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당장 3~4% 잠재성장률 달성은 어렵겠지만, 미국 같은 큰 나라도 2% 성장하는데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0%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건 너무 소극적인 견해 같다"며 비관론을 경계했다.
이 총재는 잠재성장률 하락을 피하기 위해선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활력을 식히는 가장 큰 원인이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노동생산성 둔화라는 진단이 자리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노동시장에 투입할 수 있는 생산가능인구가 내리막길인 데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상쇄할 수 있는 노동생산성까지 정체하면서 잠재성장률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업하는 사람들은 경제가 어려운 이유로 이자비용보다 노동시장 문제를 먼저 꼽는다"며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재정을 풀어서 해결할 게 아니라 구조 개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저출산·고령화로 생긴 노동시장 공백은 여성 인력, 외국인 근로자를 통해 채우고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20년에서 30년 뒤면 한국은 고령화 문제로 재정이 나빠질 가능성이 큰데 지금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경기가 나쁘다고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풀어 성장률을 올리려고 하면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성장을 탈출하는 방법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를 시행하지 못하는 것은 사안마다 이해당사자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구조 개혁에 성공해 잠재성장률을 2%대 이상으로 끌어올릴지, 0%대로 내려갈지 선택은 국민과 정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미국발 고금리 기조가 내년 하반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재정건전성이 국제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선진국을 중심으로 각국 정부 지출이 크게 늘었는데, 지금처럼 이자율이 높으면 이자 부담이 더 커진다"며 "미국이 내년 3분기까지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세제와 재정을 건전하게 가야 한다는 논의가 각국 재정 당국자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IMF에서는 한국이 재정정책 기조를 건전재정으로 전환하고 중장기적으로 재정을 건전하게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을 굉장히 좋은 예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불안이 고조된 중동 정세에 대해 "금리나 환율, 주가가 지금은 안정이 된 상태이지만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마라케시(모로코)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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