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논란' 박민 KBS 사장 후보 제청… 野 이사들 "이사장 물러나라"
투표 중단 사태 빚었던 KBS 사장 선임 절차…여권 이사들 '낙하산 논란' 박민 임명제청
야권 이사들 "군사작전하듯… '방송장악' 일환으로 진행" KBS본부 "박민 자진사퇴하라"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KBS 여권 이사들이 '낙하산 후보' 의혹과 절차적 논란 속에 박민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KBS 사장 후보로 임명제청하면서 KBS 이사회와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KBS 이사회는 13일 이사회 과반인 여권 이사 6명(권순범·이동욱·이석래·이은수·서기석) 찬성으로 박민 후보 임명제청을 의결했다. 지난 4일 서기석 이사장이 후보 3명에 대한 1차 투표 후 결선투표를 중단시키고, 결선투표 대상 2명 중 최재훈 후보(KBS부산방송총국 기자) 사퇴로 단일 후보가 된 박민 후보를 놓고 표결이 추진된 결과다. 재공모를 요구해온 야권 이사 5명(김찬태·류일형·이상요·조숙현·정재권)은 표결에 불참했다. 향후 박민 후보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면, 김의철 전 사장 잔여임기인 내년 12월9일까지 직을 수행하게 된다.
박민 후보는 1991년 기자로 입사한 문화일보에서 편집국장, 논설위원 등을 지낸 뒤 최근 퇴직했다. 2019~2022년 제8대 법조언론인클럽 회장, 지난해 제69대 관훈클럽 총무 등을 맡았고 올해 5월부터는 서울대 출신 언론인 모임인 관악언론인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박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과 친분이 있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서울대 정치학과 동문(후배)이며, 공모 시작 전부터 차기 사장으로 거론됐다는 점에서 낙하산 후보로 지목돼 왔다.
지난 이사회 면접에서 박 후보는 “(윤 대통령과) 사회부장을 하면서 기자와 취재원 관계이지 특별한 관계가 아니다”라며 “대선 당시 선거운동을 도와달라는 요청도 정식으로 거부했다”고 말하며 낙하산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투표 중단' 뒤 후보 2인 중 1명 사퇴…여권 이사들이 최종후보 제청
야권 이사들은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민 KBS 사장 제청은 무효”라며 “부당한 절차로 낙하산 사장 제청을 주도한 서기석 이사장은 이사장직에서 즉시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와 여권 이사들이 사장 후보 제청을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였다고 했다. “남영진 이사장과 윤석년 이사를 해임한 뒤 곧바로 적법하지 않은 온갖 사유들을 끌어모아 김의철 사장을 해임했다. 동시에 시행령 졸속 개정으로 수신료 분리 징수를 밀어붙이고, 2TV 재승인 불허와 민영화 방침을 흘려 KBS 내부를 '충격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며 “사장 후보자 공모 마감 뒤 휴일을 제외하고 단 사흘 만에 서류 심사를 통한 면접 후보자 3명 압축과 최종 면접을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는 것이다.
여야 이사들이 3배수 후보 면접 및 임명제청을 하기로 합의했던 4일, 서 이사장이 돌연 결선투표 중단 및 연기를 선언했던 것을 두고는 “낙하산으로 지목된 후보가 여권 이사 내부의 이탈표로 과반 득표가 불확실해지자 표결을 무산시키는 무리수를 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이사 투표권의 명백한 침해이자 '10월4일 투표를 통해 사장 후보자를 제청한다'는 사장 선임 규칙의 위반”이라고 했다.
군면제·민간기업 자문료 소명자료 미제출… '낙하산' 정황 비판도
박민 후보 검증 관련해선 허리 디스크로 군 면제를 받고, 2021년 문화일보 편집국장 임기를 마친 직후 무급 휴직 3개월간 민간기업 비상임 자문역을 맡으며 1500만 원을 받은 사실 등에 대한 소명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점이 지적됐다. 야권 이사들은 “여권 이사들은 도덕성 검증 책무를 외면하고 표결 강행을 통해 박 제청자에게 '면죄부'를 줬다”며 “검증 소홀 문제는 앞으로 진행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분명히 쟁점이 될 것이며 관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여권 이사들은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권 이사들은 박민 후보 임명제청 과정을 “비상식적이고 위법적인 무리수의 연속이었다”고 규정하며 “방송문외한에다 경영능력조차 전혀 확인받지 못한 박민씨가 KBS 사장으로 제청된 것은 세간에 널리 알려진대로 윤 대통령과의 친분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정재권 이사는 “김의철 전 사장 해임 논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언론 보도를 통해 방송 경험이 전혀 없는 신문사 재직 중인 박민 후보가 사실상 후임 사장으로 임명될 거라는 보도가 이례적으로 나왔다”며 “상식과 원칙을 넘어서는 연속된 과정을 통해 박 후보가 사장 후보로 제청됐기에 그 과정 전체가 윤석열 정부의 '방송 장악' 일환으로 진행된 분명한 증거라 판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4일 3명 후보 1차 투표 후 결선투표가 중단되기까지 여권 이사들간 '밀실 논의'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류일형 이사는 “여권 이사 6표가 결집되지 않으니 갑자기 이사장이 휴회를 선언하고 자기들끼리 회의실로 옮겨서 문을 닫고, (본인들은 밀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밀실에서 한 시간여 동안 여러 차례 들락날락하며 예정된 속개 시간을 넘기고도 나오지 않고, 그 과정에 대해 설명도 없고 몇 번 문 두드리고 항의를 하니까 나왔다가 또 조율이 안 돼서 들어가는 것들이 반복”됐다며 “이석래 이사가 계속 (박민 후보) 반대를 했다가 돌아섰다. KBS노동조합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민 후보 반대를 굉장히 심하게 했는데 하루아침에 태도가 돌변했다. 이런 걸 종합해 볼 때 세 살 먹은 어린애라도 '낙하산이 분명하구나'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KBS본부 “박민, KBS 사장 자격 없음 인정하고 사퇴하라”
KBS 교섭대표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사장 선임 절차의 원칙을 깨고 졸속 선임을 강행한 이들에 대해 대한 법적 책임을 분명히 물을 것”이라며 “부적격 후보 박민에게도 경고한다. KBS 사장으로서 자격 없음을 인정하고 자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KBS본부는 “KBS 이사회는 박민이라는 윤석열 정권 낙하산 후보의 임명이 불투명해지자 자신들이 세운 원칙마저 무시해가며 사장 임명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최종 후보 2인 중 한 명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퇴해버렸고, 결국 박민은 단독 후보가 됐다. 뒤이어 여권 추천 김종민 이사(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가 사퇴하자, 급하게 여야 6대5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2020년 5·18 막말 폄훼 논란으로 이미 공영방송 이사에 도전했다 낙마했던 극우인사 이동욱(전 월간조선 기자)을 재활용해 이사로 선임했다”며 “이번 사장 선임절차는 윤석열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야욕에 이사회가 적극 가담해 벌인 더러운 정치적 야합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는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을 대법원 판례 마저 무시하는 무도한 방식으로 해임한 이후 대통령이 원하는 이른바 '친윤 낙하산 사장'을 공영방송에 내려 꽂기 위해 KBS 이사회는 마치 군사작전 하듯 무리하게 선임 절차를 밀어붙일 때부터 예견된 일”이라며 “윤석열 정권이 낙점한 박민은 이미 경영계획서와 면접 과정을 통해. 본인이 얼마나 자격이 없는 후보인지 스스로 증명했다. 공영방송이 직면한 수신료 분리고지라는 미증유의 위기도, 여권의 2TV 분리 언급에 대해서도 대응할 의지나 비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직 확인 된 건 윤석열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 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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