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은의 컴파일] 투자하기 쉬워진 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투자하기 쉬워진 사회다. 성인 남녀 누구나 휴대전화로 신분증을 촬영하기만 하면 세계 어느 나라 주식이나 마음껏 사들일 수 있다. 올해부터는 규제가 풀려 미성년자도 비대면으로 주식계좌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우리 사회는 투자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특별히 증권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각종 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7만전자'라느니 '고점에 물렸다'느니 하는 신조어를 접하게 된다. 여기에서 나아가 검색 몇 번이면 각종 유튜브 채널과 텔레그램 주식 리딩방에서 투자 관련 정보를 한가득 얻게 된다.
이처럼 투자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이지만 어째서인지 수익률은 그리 좋지 않다. 올해 초 인크루트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77%가 업무 중에도 주식을 매매할 정도로 투자에 열성이지만, 주식 투자로 이익을 봤다는 사람은 15%에 불과했다.
게다가 근로소득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굳이 투자까지 나설 정도면 어느 정도 경제적 자유 내지는 그에 준하는 수익을 원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본업이 있는 사람이 짬짬이 투자하는 정도로 그 정도의 수익을 낼 리가 없고, 결국 수익을 많이 올리겠답시고 단타·레버리지 등 위험 투자에 나서게 된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200을 역으로 2배 추종하는 'KODEX 200선물인버스2X' 상품이 매일같이 거래량 1위에 오르고 있다. 하이리스크·하이 리턴 성향이 강하다는 얘기다.
사실 한국인들의 투자 열풍에 불이 붙은 건 오래된 일은 아니다. 2020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 세계적으로 투자 열풍이 불었는데, 덕분에 국내 주식시장도 일평균 거래량이 13억주에서 25억주로 1년 만에 갑절이 됐다. 당시 주식뿐만 아니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투자도 열풍이 일면서 금융위원장이 자중을 요청하고 청년층이 반발하는 등 사회 전체가 들썩이곤 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엔데믹 국면을 맞고 거래량도 줄었지만, 당시 생겨난 사회상의 후유증은 그대로 남았다.
한탕주의다. 작년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20·30대 사이에서는 한동안 '자살하면 그만이야'라는 유행어가 사용됐는데, 주식 투자자들이 만들어 퍼뜨린 것이다. 아무리 농담이라고는 하지만 위험천만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한 방에 인생 역전, 아니면 말고' 식의 사고가 사회 곳곳에 균열을 낼까 두렵다. 오마카세가 열풍이라는 기사 댓글창에는 과소비에 빠진 젊은이를 걱정하는 기성세대와 이런 기성세대에 되레 "어차피 집도 못 사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냉소가 교차된다. 실업률 통계에조차 잡히지 않는 구직포기자 20대가 늘어나는 것도 '일해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사고방식과 무관치 않다.
오르락내리락 경제지표와 달리 인간의 역치는 한번 올라가면 다시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정상치로 내려가기 어렵다.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이미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기약 없는 곱버스에 베팅하면서 다음번 폭등을 기다리는 모습은 절대 정상적 사회의 양상이 아니다.
[김대은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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