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 책과 미래] 인생 이야기를 잘하는 법
'왕년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틈만 나면 누구나 옛일을 회고하면서 자기 삶을 그럴듯하게 빚는 데 열중한다. 자기 이야기가 없는 삶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생각 있는 사람은 맥락을 살피면서 조리 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건네고, 눈치 없는 사람은 허세와 자기 자랑, 신세 한탄과 자기 비하가 뒤범벅된 이야기로 듣는 이들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자기 서사의 거장으로 불리는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마농지 펴냄)에 따르면, 자기 삶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건 힘든 일이다. 익숙한 것을 꿰뚫고 들어가 널리 공감할 만한 진실을 캐내는 일은 쉽지 않다. 나에겐 당연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 듣는 이들에게 전혀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는 건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자기 삶을 재료 삼아 인생 이야기를 해나갈 때, 자신만 떠올리는 사람은 실패한다. '라떼는 말이야'가 흔히 사람들 마음에 싫증과 혐오를 일으키는 이유다. 자기 이야기를 잘하려면 오히려 자신이 겪은 사건, 자신이 해냈던 일 등과 거리를 둬야 한다. 사람들이 진짜 관심 있는 건 타인의 경험 자체가 아니라 타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경험은 내 삶에서 반복할 수 없지만, 자기 성찰을 거쳐 얻어낸 삶의 태도나 관점은 되살릴 수 있어서다.
따라서 좋은 에세이를 쓰거나 멋진 회고록을 쓰는 작가들은 모두 자신이 겪은 상황과 자신이 전할 이야기를 구분한다. 사적 경험 안에서 공동체 전체를 위한 의미와 가치, 통찰과 지혜를 가려낼 줄 안다는 뜻이다. 가령 엘리자베스 비숍은 일곱 살 때 치과 대기실에 앉아 겁 많은 이모가 내지르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들었다. 그러나 '대기실에서'라는 자전적 시에서 그가 전하려 한 것은 난생처음 경험했던 고독이고, 시인 자신이 느꼈고 우리 모두도 느끼고 있는 그 고독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이다.
상황과 이야기를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생 이야기를 할 때 실제의 나와 이야기 속의 나를 구별하는 일이다.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닌 서술자, 자신이 겪은 사건에서 멀찍이 물러나서 사건 전체를 통찰하는 이야기 자아, 즉 페르소나를 지어내야 내 삶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작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진실은 사건의 나열로 얻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그 일을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인생을 사는가만큼이나 인생을 어떻게 말하느냐도 중요하다. 나를 넘어 모두의 가슴에 새길 만큼 좋은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면 인생은 위대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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