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노트르담은 사회변혁을 외친 선언문이었다"
빅토르 위고 (1802~1885)
세계적인 명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영화나 애니메이션, 혹은 뮤지컬 등으로 접한 경우가 더 많을 듯싶다. 아니면 방대한 분량을 줄인 축약본 형태의 책을 읽은 경우도 흔할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도 그중 하나다. '노틀담의 꼽추'라는 앤서니 퀸 주연의 영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너무 유명한 데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까지 있어 사람들이 원전을 읽을 필요를 못 느끼는 듯하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2권짜리 번역본 '파리의 노트르담'을 완독할 기회를 가졌다. 읽어보니 영화나 뮤지컬로 만난 작품과는 사뭇 다른 점들이 많았다. 영화나 뮤지컬은 간결한 구성과 극적 흥미를 배가시키기 위해 흉측한 괴물처럼 생긴 콰지모도와 끼가 넘치는 집시여인 에스메랄다의 애틋한 사랑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원전을 읽어보니 '파리의 노트르담'은 시대 상황을 풍자한 사회소설에 더 가깝다. 사실관계가 다른 점도 눈에 띈다.
실제 원전에서 에스메랄다는 '집시'가 아니다. 소설 후반부에 생모를 만나는 장면도 나오지만 영화나 뮤지컬은 극적 전개를 위해 이를 삭제해 버렸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스스로 공화파 정치가이기도 했다. 나폴레옹 3세 쿠데타에 반대했다가 19년 동안 벨기에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소설 곳곳에서 위고는 사회 변혁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왕실과 성직자들의 위선과 하층민들의 무지몽매함을 동시에 비난한다. 지배계층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책임감과 반성을 요구하고, 피지배계층에게는 기존의 악습과 고정관념에서 깨어날 것을 암시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아무 죄도 없는 여인 에스메랄다를 교수형시키는 장면이다. 에스메랄다를 향한 욕정에 가득 찬 부주교는 질투 때문에 헌병대장 페뷔스를 칼로 찌르고 에스메랄다를 살인범으로 몬다. 목숨을 건진 바람둥이 페뷔스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도, 자신을 찌른 사람이 부주교라는 사실도 끝내 밝히지 않는다. 천민과의 관계가 드러나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대중도 마찬가지다. 지배층들의 부추김에 넘어가 에스메랄다가 처형되는 걸 방관하고 오히려 즐긴다.
위고는 극렬한 사형제 반대론자였다. 그는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에스메랄다를 교수대에 세우는 과정을 통해 사형제의 폐해를 그려냈다. 위고가 29세 때 쓴 '파리의 노트르담'은 당연히 금서목록에 올라 제대로 팔려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파리의 노트르담'은 유럽의 역사를 바꾸는 데 일조한 최고의 계몽소설로 추앙받게 된다.
위고 탄생 200주년을 맞은 날. 프랑스의 모든 각급 학교에서는 첫 수업시간을 위고의 작품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거장은 이렇게 남는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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