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대피령" 이스라엘 곧 지상전…하마스 "가짜 선전" 대혼란(종합2보)
이집트 국경 개방이 희망…백악관 "노력 중"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쪽에 있는 약 110만 명의 주민들에게 24시간 내로 남쪽으로 이주하라고 통보했다. 이스라엘군의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가뜩이나 인구 밀도가 높은 가자지구 내에서 하루 안에 이동이 쉽지 않다는 점, 가자지구 지도부는 이스라엘의 요구에 따르지 말라고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내부 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성명에서 "IDF는 지도에 나와 있는 것처럼 가자시의 모든 민간인들을 그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남쪽으로 대피시키고, 와디 가자 남쪽 지역으로 이동할 것을 요구한다"고 통보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도 성명에서 "가자지구의 유엔 관리들은 이스라엘군 연락장교로부터 와디 가자 북쪽의 가자지구 주민 전체가 앞으로 24시간 내에 가자지구 남쪽으로 이주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위아래로 길쭉한 모양의 가자지구의 면적은 365㎢에 불과하다. 서울의 절반보다 약간 큰 정도다. 이집트와 국경이 맞닿은 남쪽 라파에서 레바논과 북쪽의 베이트하눈까지의 거리는 41㎞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가자지구는 북가자, 가자시, 데이르 엘-바라, 칸 유니스, 라파 등 5개 지역으로 구성돼 있다. 23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 중 가자시에 75만 명이 살고 있다. 북가자와 칸 유니스에 44만 명, 데이르 엘 바라에 32만 명, 라파에 27만5000명이 머문다.
가자지구의 중간을 가르는 와디 가자는 가자지구의 유일한 해안 습지다.
와디 가자 북쪽인 북가자와 가자시의 인구를 합하면 110만 명. 현재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도로가 파괴돼 주민들의 이동이 힘들다. 가뜩이나 인구 밀도도 높아 남쪽으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남쪽 지역에서 주민들을 수용할 여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가자지구 주민 42만 명이 피난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스라엘 측에서 가자지구에 봉쇄령을 내린 만큼 여전히 많은 주민이 내부에 머물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24시간 내 이동은 사실상 불가능"…가자지구 내부서도 혼란
유엔 측에서는 인도적 지원 없이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남쪽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유엔은 인도주의적인 결과 없이 그러한 움직임(남쪽 이동)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중동 매체 알자지라도 "가자지구 남쪽은 이 엄청난 수의 실향민을 수용할 만큼 큰 지역이 아니다"며 "이 많은 숫자로 이동하는 것을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도 자신의 X(옛 트위터)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24시간 이내에 이동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다"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적었다.
이스라엘 측에서는 대피가 힘들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조기 대피령이 인도주의적 조치의 일환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IDF 대변인 조너선 콘리쿠스 중령은 X에 게시한 영상에서 "우리의 목표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며 "민간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군은 가자지구의 목표물 타격으로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하기를 원한다"며 "대피에 대해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자지구 내의 혼란도 문제다. 가자 내무부는 "이스라엘은 본토를 공격하고 시민들을 추방하기 위해 심리전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의 요구를 따르지 말라고 말했다.
살라마 마루프 하마스 정부 언론국장은 "이스라엘이 시민들 사이에 혼란을 심고 내부 결속력을 해치려는 목적"이라며 "가짜 선전을 방송하고 전달하려는 이스라엘의 시도"라고 주장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런 갑작스러운 통보에 가자지구 주민들도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가자시티 소재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 관계자 이나스 함단은 "지금 너무 혼란스럽고 아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네발 파사크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대변인은 "현재 유일한 관심사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또 살아갈 수 있을지뿐"이라며 흐느꼈다.
◇이스라엘 "며칠 내 작전 실시할 것"…이집트 국경 열릴까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은 며칠 내로 가자지구 내에서 작전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가자시티는 군사 작전이 벌어지는 곳"이라며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은 가자시티 내 가옥의 터널에 숨어 있고, 건물 내에는 민간인들이 많이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내에서 민간인들을 대피시킨 뒤 건물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시나리오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가자지구 주민들이 대피하지 못한 채 이스라엘군을 맞닥뜨린다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은 가자지구와 이집트 사이의 라파 통행로 개방이다. 현재 가자지구 남쪽 유일한 탈출구인 라파 통행로는 닫힌 상태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들의 이동을 제한해 왔지만,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지난 7일 이스라엘에 공격을 강행한 이후 인도주의적 목적인 경우에 한해 라파 국경을 개방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라파 통행로 인근을 공습하면서 이집트는 이곳을 무기한 차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각국에서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 국경을 열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미국 백악관은 가자지구-이집트 국경을 열기 위해 이스라엘, 이집트와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침공할 가능성에 앞서 가자지구에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빠져나오게 하려고 이스라엘, 이집트와 매우 '부지런히(diligently)'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상 침입이 있든 없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작전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겠다. 우리는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나갈 방법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며 "그래서 우리는 이 매우 힘든 시간을 매시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커비 조정관은 "우리는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이 지금, 즉각 떠날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며 "인도적 지원이 가자지구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집트의 국경 개방도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정치인 무스타파 바크리는 알자지라에 "이 경고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의 꿈을 없애기 위해 가자지구 주민들을 이집트로 강제 이주시키려고 지상 침공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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