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조사 기다리다 숨지는 노동자 없어야”…환노위서 여야 공감대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따지는 역학조사가 장기화하면서 노동자가 산재 승인을 기다리다 숨지는 현실을 바꾸자는 데 여야가 뜻을 모았다. 향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에서 공청회 등을 통해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지난 12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산재 국가책임제’ 도입을 위한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을 요구하며 ‘역학조사 장기화의 피해자’인 최진경씨(49) 사례를 소개했다. 산재 국가책임제는 역학조사 기간을 180일 이내로 정하고 이 기간을 넘기면 국가가 피해자에게 선보상을 하는 것이다.
최씨는 2000년 삼성전자 기흥연구소에 입사해 LCD용 핵심 소재인 감광제 개발업무를 하면서 여러 화학물질에 노출됐다. 퇴사 이듬해인 2018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2019년 3월 산재 신청을 했다. 역학조사에 소요된 4년간 최씨의 온몸엔 암세포가 퍼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역학조사를 근거로 지난 7월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최씨는 환노위에 보낸 편지에서 “무엇을 조사하느라 4년이 필요한 것인지요. 인력부족을 떠나 직무유기 같다”며 “제가 사용한 수많은 화학물질과 모든 방사선 설비에 대해 조사도 못하고 4년을 끌더니 납득할 근거도 없이 불승인됐다”고 말했다.
우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과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의 역학조사 소요일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희귀질환·희귀인자 등과 관련된 역학조사를 하고 나머지 일반적 사안은 직업환경연구원이 맡는다. 특히 올해 1~8월 처리된 역학조사 소요일수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1072일, 직업환경연구원 581.5일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작업 환경의 변화로 새로운 유해요인과 희귀질환 발생 등 역학조사가 필요한 질병은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역학조사 수행 인력 27명(직업환경연구원 15명, 산업안전보건연구원 12명)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처리 지연의 주 원인”이라고 밝혔다.
산재 신청 노동자가 역학조사 진행 중 사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사망자는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총 159명이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은 지난 7월 말 노동부에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역학조사 처리절차·업무량 분석 등을 통한 개선방안 연구)에서 폐암 말기 등 산재 처리에 시급을 요하는 경우 먼저 역학조사를 하는 패스트트랙 신설, 인력 충원, 역학조사 외부위탁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우 의원은 보고서상 대안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역학조사를 기다리다 노동자가 사망하는 비극을 막기 위해 산재 국가책임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역학조사 기간을 줄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산재 국가책임제 도입을 위한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에는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국민의힘 환노위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국정감사 마지막 발언에서 우 의원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했다. 임 의원은 “최씨 편지글을 보니 가슴이 먹먹하다”며 “삼성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백혈병이 산재로) 승인받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나. 반올림이란 단체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윤석열 정부는 일하다 다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여야가 이번 국감이 끝나고 11월에 공청회를 하든 토론회를 하든 의견을 모아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자”고 제안했다. 박정 환노위원장도 임 의원의 제안에 동의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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