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땐 “국민이 판단” 여당 되면 “법 만들자”
법안 시행 후 헌재 심판대에 오를 가능성
“현재 지구상에서 가짜뉴스를 때려잡겠다고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국가기관을 동원하는 곳은 대한민국뿐이다.”
박대출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8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이다.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에 엄정 대처하겠다고 나선 것을 비판한 것이다. 같은 당 박성중 의원도 “가짜뉴스인지 아닌지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라며 거들었다. 박대출 의원은 현재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다.
정권이 교체되고 여야가 바뀌었다. 현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가짜뉴스 척결을 외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0월 3일 가짜뉴스를 두고 “사회적 재앙”이라며 국회에서 논의 중인 관련 법률이 조속히 마련되도록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당 미디어정책조정특별위원장)은 지난 9월 27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는 국민의힘 당론이다.
가짜뉴스 정의는?
윤두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허위조작정보를 ‘거짓 또는 왜곡을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오인하도록 조작된 정보’로 정의한다. 이런 정보를 포털 등 정보통신망에 유통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또 포털 등은 허위조작정보 삭제 등의 요청을 받으면 바로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한다.
이와 유사한 내용의 가짜뉴스 근절 법안이 그동안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다. 국민의힘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내놓은 법안도 있다. 특히 20대 국회(2016년 5월~2020년 5월)에서는 수십 건이 발의됐다. 모두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국민의힘은 자유한국당 시절인 2018년 7월에도 당론으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냈다. 김성태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당 소속 의원 109명이 함께 법안에 이름을 올렸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고의로 거짓 또는 왜곡된 사실을 언론보도로 오인하게 하는 내용’을 가짜뉴스로 규정했다. 포털 등 서비스 제공자는 가짜뉴스의 유통 여부를 지속 모니터링하도록 의무화했다. 가짜뉴스를 유통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모니터링을 하지 않으면 5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하도록 벌칙도 신설했다.
같은 당 강효상 의원은 앞서 그해 5월 ‘가짜뉴스대책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내놓았다. 국무총리 소속으로 가짜뉴스대책위를 두고 관련 대책을 수립하는 등 범정부 차원에서 가짜뉴스 유통 방지에 대응토록 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 법안을 근거로 한국당이 이낙연 총리를 비판한 것은 모순된 태도라고 역공을 펼치기도 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 5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가짜뉴스 정의를 넣었다. ‘상업적 또는 정치적으로 정보를 매개로 타자를 속이려는 기만적 의도성을 가진 행위로 수용자가 허구임을 오인하도록 언론보도의 양식을 띤 정보 또는 사실검증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능이 배제된 가운데 검증된 사실로 포장하는 행위’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들 법안에 담긴 가짜뉴스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위축 또는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로 연결된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이나 ‘상업적 또는 정치적으로 타자를 속이려는 기만적 의도성’ 등은 맥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판단 기준도 불명확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자의적 적용이 가능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규제 대상이 아닌 표현까지 제한될 수 있고, 나아가 권력에 불리한 정보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자에게 모니터링 의무를 부여하는 것도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박광온 민주당 의원이 2018년 4월 대표 발의한 ‘가짜정보 유통 방지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다른 법안들보다 가짜뉴스의 정의가 구체적이다. 언론사가 정정보도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한 정보, 언론중재위원회 및 법원의 판결 등을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결정·판단된 정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허위사실 공표와 지역·성별 비하 및 모욕으로 삭제를 요청한 정보 등이다. 가짜정보를 생산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하도록 했다. 포털 등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가짜정보의 차단·삭제 등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매출액의 10% 이상에 해당하는 액수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게 했다.
개념을 비교적 좁혔다고 해서 우려가 해소되지는 않았다. 임재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수석전문위원은 그해 9월 검토보고서에서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다를 수 있고 언론사의 인정, 언론중재위의 결정, 중앙선관위의 요청 정보를 통해 가짜정보 여부를 판단하는 건 논란의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가령 언론사의 정정보도 등을 통해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한 정보 가운데는 과장된 표현, 일부 내용의 허위, 인용 자료의 오류 등이 포함된다. 이를 모두 가짜정보로 규정하는 건 ‘과잉규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민주당이 2021년 추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논란을 빚었다. 민주당은 해당 법안을 ‘가짜뉴스 피해 구제법’이라고 일컬었다. 언론이 고의나 중대과실로 허위·조작 보도를 하면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국민의힘 측은 “정권을 향한 언론의 건전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라는 취지로 비판한 바 있다.
국가가 가짜뉴스 판단해선 안 돼
개념이 모호하면 법안 시행 이후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대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헌재는 2010년 전기통신법 제47조 제1항을 두고 위헌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처벌하는 내용이다. 이른바 ‘허위사실 유포죄’라 불렸다. 헌재는 공익이라는 개념은 개인과 시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객관적으로 확정된 개념이 아니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공익 개념의 모호성, 추상성, 포괄성으로 인해 규제되지 않아야 할 표현까지 다 함께 규제하게 돼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허위사실이라고 해서 무조건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배제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허위사실이라는 것은 언제나 명백한 관념은 아니다”라며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내는 건 매우 어렵고,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 역시 어렵다. 현재는 거짓으로 인식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 판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에 따라 허위사실의 표현임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여러 난제가 뒤따른다”고 말했다.
또 가짜뉴스의 범위를 규정하더라도, 정보의 허위성과 악의성을 누가 판별할 것인지도 풀어야 할 쟁점이다. 김성순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장)는 “가짜뉴스에 대한 정의를 법에 명시함으로써 손해배상 소송 등 민사적 해결이나 신문윤리위원회 등 자율규제 기구가 판단할 때 기준점으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가짜뉴스라고 해서 국가기관이 개입해 행정 제재를 가하거나 형사처벌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 가짜뉴스 유통 등으로 인한 피해 방지를 위해 ‘미디어 교육’을 시행하는 방안을 담은 법안도 발의된 적이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0년 6월 펴낸 ‘제20대 국회의 허위조작정보 관련 입법 현황 및 쟁점’ 보고서는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법적인 규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며 “그러므로 팩트체크를 활성화해 대응하고 학교 및 사회에서의 미디어 교육을 통해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리터러시 능력을 갖추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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