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킁킁, 비싼 냄새”“완전 시골 사람 같거든”···논란의 ‘강남구 홍보영상’ 어떻게 나왔나

강은 기자 2023. 10. 1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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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차별을 조장하는 듯한 내용으로 논란이 된 강남구 홍보영상. 유튜브 화면 갈무리

“촌스럽게 건물들 좀 그만 쳐다봐. 완전 시골에서 온 사람들 같아 보이거든?”

“맞아, 맨날 와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란 말이야.”

서울 강남구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린 홍보 영상에 지역을 비하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듯한 내용이 담겨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비판이 쏟아지자 구청은 서둘러 해당 영상을 비공개 전환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문제의 영상이 삽시간에 공유되면서 논란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강남구청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강남구’에는 지난 12일 ‘메타버스에서 만나는 강남! 삐야기, 삐따기와 함께해요’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은 강남구 주요 관광명소를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로 구현한 ‘강남빌리지’를 홍보하는 내용이다. 유튜브 채널 ‘삐야기’가 강남구의 외주를 받아 제작한 영상이었다.

문제의 장면은 웹드라마 ‘일진중학교’ 속 캐릭터들이 ‘강남빌리지’를 방문해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캐릭터 중 예리가 “이야, 진짜 건물들이 반짝반짝하고 사람들도 많잖아. 킁킁 뭔가 비싼 냄새가 나는 것 같아”라고 말하자, 다른 캐릭터인 하라는 “너무 킁킁대면서 다니지 말자. 같이 다니기 창피하잖아”라고 말한다. “야 너네 촌스럽게 건물들 좀 그만 쳐다봐. 완전 시골에서 온 사람들 같아 보이거든?” “우리 시골에서 온 사람들 맞잖아. 이렇게 높은 건물들은 처음 봤단 말이야” “맨날 와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란 말이야. 마치 나처럼” 등의 대사도 담겼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지역 차별’이 전제된 영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들은 “시골 사람이 무슨 뗀석기 들고 다니는 줄 아느냐” “시대에 뒤떨어지는 콘텐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비하나 조롱으로 느껴진다” 등의 지적이 나왔다. “이게 설마 강남구 공식 홍보 영상이었을 줄이야” “구청장이 대체 누구냐” 등의 반응도 있었다.

지역 차별을 조장하는 듯한 내용으로 논란이 된 강남구 홍보영상. 유튜브 화면 갈무리

논란이 되자 강남구는 해당 영상을 비공개 전환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외주 업체를 통해 제작한 영상인데,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시하기 전에 내부적으로 제대로 검토가 이뤄지지 못한 것 같다”면서 “시민들마다 생각이 다르고 계층도 다양한데 사려 깊게 살피지 못한 점이 유감”이라고 밝혔다.

강남구가 게재한 영상을 두고 이른바 ‘강남부심(강남+자부심)’을 표방하는 과시문화의 단면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쓴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는 “부를 찬양하는 정도가 이전보다 훨씬 심해진 가운데 ‘성공한 사람들과 부자만 강남을 대변한다’는 전제도 강화되고 있다”면서 “강남이 그런 이미지로만 소비되지 않도록 하는 게 공공기관의 역할일 텐데, 오히려 (구청이) 먼저 나서서 이런 영상을 올린 것은 지역 내 사각지대에 있는 시민들은 보지 않겠다는 의미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국의 능력주의> 저자인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외주업체가 이런 영상을 만들 수는 있어도 공공기관에서 게이트키핑이 전혀 안 될 정도로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졌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SNS 등 온라인에서는 ‘강남’을 핵심 키워드로 하는 ‘대놓고 스노비즘(속물주의)’이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들어서는 한 주상복합 아파트 광고에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게재돼 논란이 일었다. 광고를 접한 시민들 사이에서는 “상류층의 우월의식을 자극하고 서민들에게는 박탈감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해당 아파트 시행사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신중하지 못했다”고 사과하며 광고 문구를 삭제했다.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평등하지 않은 세상 꿈꾸는 당신에게”···대놓고 내세운 아파트 광고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6041504001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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