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궁정가수' 사무엘 윤, 세계데뷔 25주년 "작은 역부터 참고 견뎌"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성악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이렇게 세계 데뷔 25주년을 기념할 수 있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독일 성악가들의 최고 영예인 '궁정가수(Kammersänger)' 칭호를 받은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윤태현·51)이 올해 세계 데뷔 25주년을 맞아 오는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기념무대 '프롬 다크니스 투 라이트(From Darkness to Light)'를 선보인다.
사무엘 윤은 13일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저는 다른 이들보다 늦게 음악을 시작해 음악가로서의 가능성이 희박했던 오랜 기간을 참고 견뎠고, 작은 역부터 시작해 제 영역을 확고하게 만들어갔다"며 "그게 지금의 저를 만든 자산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무엘 윤은 서울대 음대에서 성악공부를 시작해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음악원과 독일 쾰른음악원에서 학업을 마쳤다. 오페라 가수 등용문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토티 달 몬테 콩쿠르에서 1998년 우승했고, 이탈리아 트레비조에서 구노의 '파우스트' 오페라를 통해 유럽에 데뷔했다.
이듬해 독일로 건너가 쾰른극장 신인 양성 프로그램인 '오펀 스튜디오'에 합격, 계약직 1년 만에 정단원이 됐고 23년간 쾰른의 종신성악가로 활동하며 세계 오페라 극장을 누볐다. 지난해에는 독일어권 최고 영예인 궁정가수 칭호를 받았다. 지난해 3월부터 모교인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임명돼 한국으로 돌아와 후학을 양성 중이다.
화려한 이력이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서울대 재학 시절에는 함께 수학한 동기들의 70~80%가 콩쿠르 우승 등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었고, 수차례 콩쿠르에 실패한 그는 자신이 음악가의 길을 갈 수 있을 지 스스로 의심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바리톤이었어요. 그런데 바리톤에서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더라고요. 음악을 직업으로 삼아 평생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의심이 가득했어요. 그러다 잠깐 베이스바리톤으로 바꿔 중앙음악콩쿠르에 나갔는데 덜컥 입상했어요. 제 달란트를 확인했던 순간이었죠. 이후 베이스바리톤으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유학시절에는 외환위기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함께 나와 있던 유학생들이 거의 한국 들어갔어요. 환율이 치솟고, 한국에서 송금을 받을 수 없었죠. 생활이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견뎠습니다.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쓰임 받을 시간이 분명히 온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때 결혼도 했는데, 부인이 희망 없던 성악가였던 저와 왜 결혼을 해줬는 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
1998년 토티 달 몬테 콩쿠르는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오페라 배역을 선발해 9차례 게런티를 받고 '파우스트'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주는 꿈 같은 콩쿠르였어요. 그런데 결선 때 제 첫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관계자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파이널 무대 순서를 조정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콩쿠르가 끝날 때까지 아이가 태어나진 않아 파이널까지 갔고, 우승할 수 있었어요. 유리공예로 만들어진 성악가가 노래하는 모습의 상패와 큰 상금을 받았고, 9번 공연 후 관중 투표로 주어지는 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승의 최대 상금은 아들이었죠."
이 콩쿠르에서 그를 눈여겨본 쾰른극장장은 당시 사무엘 윤에게 오디션을 제안했고, 이는 사무엘 윤이 독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됐다. "쾰른에 취직한 후 영어이름이 필요한 상황이 됐고, '사무엘 윤'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꽁지머리와 수염도 25년 전 쾰른에서 분장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제 고유한 색깔이 됐죠."
사무엘 윤은 2004년부터 바그너의 음악극만을 공연하는 유럽 최대 페스티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꾸준히 참여했다. 첫 배역은 단역으로, '파르지팔'의 성배기사역이었다. 그러다 2012년 그에게 '영웅 바리톤'이라는 찬사를 받게 된 기회가 왔다.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타이틀롤인 러시아 태생 바리톤 예브게니 니키틴이 자신의 몸에 독일 나치군을 상징하는 문신을 새긴 스캔들로 공연을 나흘 앞두고 사퇴했고, 사무엘 윤은 대타로 전격 발탁, 단 한 번의 리허설 후 무대에 올랐다.
당시 총리였던 앙겔라 메르켈 부부는 "독일어 발음이 너무 좋아 다 이해했다. 갑작스러운 주인공 교체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해냈다"라며 놀라워했다. 사무엘 윤은 바이로이트의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전 세계 극장에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사무엘 윤은 이후 런던 코벤트 가든, 베를린 도이치 오퍼, 드레스덴 젬퍼 오퍼, 밀라노 스칼라 극장, 파리 바스티유 극장, 마드리드 왕립극장, 바르셀로나 리세우 국립극장, 뮌헨 국립극장, 비엔나 오페라극장, 미국 리릭 오페라 시카고 등 세계 주요 극장에서 맹활약하며 사이먼 래틀, 주빈 메타, 로린 마젤, 크리스티안 틸레만 등 거장 지휘자들과 협연했다.
사무엘 윤은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던 지난해 한국행을 택했다. 독일 종신가수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모교인 서울대에서 후학 양성에 나서기로 했다. 쾰른극장이 23년간 종신가수로 일한 사무엘 윤의 고별 무대를 준비했고, 무대 마지막 순서에서 독일 궁정가수 수여식이 이뤄졌다.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어요. 65세까지 쾰른극장에서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자리였고, 연간 10개월 이상 세계의 극장들에서 공연하는 성악가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죠. 하지만 내가 정말 65세까지 화려한 무대를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서울대로 옮긴 이유는 '쓰임을 받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한국에서 젊은 음악가들에게 길을 제시해주고 싶어요."
그는 "음악가는 무대에서 누구보다 이기적이어야 하지만, 삶에서는 겸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삶에서 쌓이고 쌓여야, 무대에서 자연스러운 자신만의 색깔이 나와요. 차분하게 자신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음악의 가장 큰 매력으로 '공유'를 꼽았다. "음악을 통해 제 감정, 제 희노애락, 인생을 관객과 공유할 수 있어요. 관중과 공유하지 않는 음악은 의미가 없죠. 해외 무대를 이어가고 국내에서도 후학을 양성하며 다양한 공연을 보여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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