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건강검진 받는다…‘건강친화기업 인증’ 받으면 노사가 ‘스마일’
16개 ‘킬러 문항’으로 문진…서류-현장-인증 심의로 3단계 검진
삼성전자·기아도 인증…건강 증진·생산성 향상·이미지 제고 ‘일석삼조’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비만이 심각해 고혈압과 당뇨가 우려된다는 경고가 적혀 있었다. 식습관을 개선하고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라는 주문도 뒤따랐다.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시간도 지갑 사정도 여유가 별로 없다. 헬스나 필라테스를 해볼까 싶었는데, 가격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 등록하려는 마음을 접었다. 사실 작년에도 비슷한 결과지를 받아들었지만, 아직 별다른 몸의 신호는 없다. '괜찮겠지'라고 위안해 보지만 계속 나빠지는 건강에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상은 가상의 상황이지만, 2023년 'K직장인'들의 흔한 모습이자 마음가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받은 건강검진 결과를 개선하기 위해 회사가 물심 양면으로 돕는다면 어떨까. 요가나 명상 등 근무시간 내 참여 가능한 운동 프로그램이 지원되고, 영양사가 짠 다양한 건강식 식단이 사내식당에서 제공되고, 직장 안팎에서 겪는 고민을 상담해 주는 전문인력이 상주한다면 어떨까. 이와 같은 회사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다면 내년 건강검진 결과는 올해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회사생활도 더 활기찬 모습으로 바뀌지 않을까.
근로자가 건강해야 기업도 '지속 가능' 성장
내가 다니는 회사가 내 건강을 결정하는 시대다. 대한민국의 인구 절반 이상(55.4%)은 경제활동인구로 일하고 있고, 그 노동시간은 2022년 기준 연평균 1901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52시간)보다 18.6일이나 많다(OECD 회원국 중 4위).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는 만큼 내가 일하는 회사의 제도나 문화가 얼마나 '건강 친화적'으로 짜여 있는지 여부가 내 건강에 직결되는 핵심 변수가 된다. 그리고 이는 회사의 성과와도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자 핵심 인프라가 바로 근로자이고, 이들이 꾸준히 건강해야 기업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대한민국 굴지의 회사들에서 발견되는 '핫'한 트렌드가 바로 자신들의 회사에 대한 '건강검진'을 실시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직장 문화와 환경 등이 건강 친화적으로 조성돼 있는지 스스로 판단해 보기 위해 이른바 '기업 건강검진'을 받는 것인데, 이때 기업들이 가장 애용하는 방식이 바로 정부가 운영하는 '건강친화기업 인증제도'다.
건강친화기업 인증제는 근로자의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모범을 보이는 기업에 정부가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주도하는 이 인증제도는 2021년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해 처음으로 본사업을 실시했고, 총 14곳이 건강친화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직장 건강 관리로 '결근' 줄고 '생산성' 증가
지난해 선정된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기업들이 임직원들의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더 좋은 회사 문화와 제도를 구축하는 것을 이젠 더 이상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에 선정된 14곳은 삼성전자 DS부문, 삼성생명보험, 삼성화재해상보험, 기아, 한화생명보험, 국민은행, HD현대일렉트릭, 현대그린푸드, 동일고무벨트, 부곡스텐레스, 모노랩스, 에스포항병원, 한국천문연구원, 군포도시공사 등인데,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을 지닌 회사가 많다.
세계적으로 이미 직장 내 건강 관리는 정부는 물론 기업 차원에서도 주요한 의제가 되고 있다. 건강 친화적 기업의 완성이 근로자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기업 성장에도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장기적으로는 장시간 노동 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막는 역할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직장 내 건강 관리의 필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실제 미국, 영국, 일본, 스위스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기업의 경영적 관점과 인식 변화를 기반으로 하는 '직장 내 건강 증진'을 주요한 건강 정책으로 이미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주도해 직장 건강 증진 프로그램(Workplace Health Promotion) 등을 운영 중이다. 이와 같은 직장인 대상 포괄적 건강 관리 서비스 제공 후 미국 직장인 2만93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년간 결근율이 24% 하락했다. 그렇게 1달러 투자로 3달러 회수라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스위스에서도 직장 내 건강 친화적인 문화와 제도 등을 조성해 근로자의 건강 증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기업에 인증을 수여하는 제도(Friendly Work Space)를 운영 중이다. 3년간 시험 프로젝트를 통해 8개 회사, 3000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연간 결근일은 2.6일 감소하고 근로자 25%의 스트레스가 감소했다. 경제적으로는 연간 1인당 8000스위스프랑(약 1180만원)을 절약하는 생산성 손실 감소 효과를 낳았다.
이런 세계적 추세에 발맞춰 한국에서도 '건강친화기업 인증제도'가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주도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 중이다. 연 1회 진행되는 건강친화기업 인증제도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과 공공기관 등 각종 법인 및 단체가 신청할 수 있다. 정부가 책임지고 인증하는 만큼 요건은 엄격하다. 인증을 받고자 하는 기업은 국민건강증진법,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 건강 친화 관련 법규의 요구 사항을 준수해야 하며 사회적 물의로 인한 사건·사고가 없어야 한다. 정부로부터 한 번 인증을 받으면 3년간 유효하다.
건강친화기업 되려면 16개 질문 통과해야
건강친화기업 인증제도는 '건강친화경영(40점)' '건강친화문화(20점)' '건강친화활동(20점)' '직원 만족도(20점)' 등 4개 부문(가산점 항목 별도)에 대한 심사를 통해 이뤄진다. 사람에 대한 건강검진이 식습관부터 운동 여부, 피 검사와 내시경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통해 건강 상태를 확인하듯 정부가 진행하는 인증 심사 역시 경영자의 리더십과 의지(건강친화경영)부터 근로자 인터뷰 등을 통한 직장 문화 체크(건강친화문화), 건강증진 프로그램에 대한 계획 수립과 시행 및 참여(건강친화활동), 제3의 조사전문기관을 통한 직원 만족도 조사까지 입체적으로 이뤄진다.
인증은 기업 유형별로 서로 다른 통과 기준을 적용받는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직원 만족도를 포함한 4개 부문에서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중견기업은 75점, 중소기업은 7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심사부문별 최소 기준 점수도 있다. 건강검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의 이상 유무를 확인해 건강함을 체크하듯 기업도 어느 특정 부분만이 아닌 회사 전체가 건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건강친화경영에서 30점, 건강친화문화와 건강친화활동에서는 각각 12점을 넘어야만 통과된다.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각각 25점과 10점을 넘겨야 한다.
인증 심사는 크게 3단계로 이뤄진다. 개인의 건강검진이 '문진-검사-상담'이라는 절차로 이뤄지듯 기업의 건강검진은 '1단계 서류심사-2단계 현장심사(직원 만족도 조사 포함)-3단계 결과 환류'라는 프로세스를 거친다. 인증 심사는 기업별로 3인 내외의 전문가가 선발돼 인증심사단을 꾸려 진행한다. 심사자는 심사 참여에 앞서 윤리서약서를 작성하고, 심사 수행 기간 중 청렴 의무를 철저히 준수할 것을 요구받는다.
기업들이 건강친화기업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총 16개 항목으로 구성된 '인증신청 최소 기준'이라는 질문들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1단계 서류심사 통과 여부를 결정짓는 '킬러 문항'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건강친화기업이 되려면 16개 기준을 모두 넘어야 한다는 '기준점'을 국내 기업들에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준은 전사(全社)적으로 적용된다. 기업 내 모든 사업장이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16개 인증 신청 최소 기준에는 근로자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기업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다양한 항목이 포함돼 있다. 우선 근로자 전체에게 해당되는 필수 기준들이 제시된다. 관계법령에 맞게 보건관리자를 두고 있는지, 휴게시설은 제대로 설치돼 있는지, 건강진단을 정해진 주기에 따라 실시하고 있는지 여부를 묻는다. 아울러 근로시간과 연차유급휴가, 가족 돌봄 휴직 및 휴가 제도가 제대로 실시되는지도 확인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고 괴롭힘 발생 시 관계법령에 따라 처리되도록 보장하는 제도가 있는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해 분기별 정기회의를 개최하는지 여부 등도 중요한 질문이다. 여기에 중대산업재해로 사업주 등이 처벌받은 적이 있는지, 기업이나 기업 대표의 위법·비윤리적 행위로 인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지 여부 등도 따진다.
경영진 인터뷰와 근로자 만족도 조사까지
인증 신청 최소 기준에 대한 점검 이후 서류심사를 거쳐 심사 부문별 최소 기준을 통과한 기업에 한해 현장심사가 이뤄진다. 기업별 서류심사를 진행한 심사자들은 해당 기업을 찾아 현장 실사에 나선다. 직장 내 건강친화제도 운영에 대한 경영진의 의지와 근로자의 의식을 파악하고, 현장 검증이 필요한 사항을 확인해 서류심사의 적정성을 점검하는 것이다.
심사단은 경영진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이를 통해 건강친화경영 전반에 관한 인식을 파악하고 무엇을 중점적으로 강조하고 있는지,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등도 점검한다. 아울러 현장 점검을 통해 기업 내 건강친화시설과 환경 조성도 살펴본다. 근무환경은 어떤지, 건강관리실이나 금연구역 등은 제대로 설치돼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여기에 심사단이 무작위로 선정한 직원 인터뷰도 실시한다. 직무별·직급별·연령별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해 해당 기업의 건강친화제도 운영 전반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다.
현장심사와 함께 직원들의 만족도 조사도 실시된다. 참여 기업의 건강친화문화와 제도, 활동 전반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를 조사하는 것인데, 제3의 조사전문기관을 통해 온라인으로 조사가 진행된다. 앞서 서류심사와 현장심사를 통해 건강친화기업에 대한 경영진의 인식과 의지, 실제 운영 실적 등을 점검했다면, 직원 조사를 통해서는 실제 그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직원들의 만족도를 입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서류심사와 현장심사, 직원 만족도 조사가 끝난 후에는 최종적으로 인증 심의가 이뤄진다. 모든 심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그 종합 결과에 대한 적정성을 인증위원회가 심의하는 것이다. 인증 심의가 완료되면, 인증 신청 기업 전체에 전자메일을 통해 인증 심사 결과통보서를 송부하는데, 여기에는 최종 결과와 함께 심사위원 총평은 물론 향후 개선 제안사항 등이 포함된다. 건강검진 후 상담에서 "술은 줄이고 운동 횟수를 늘리세요" "주기적으로 병원 검진을 받으세요" 등의 솔루션이 이뤄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기업 간 서열화를 지양하기 위해 인증 적격 여부만 통보하고 세부 점수 등은 공개하지 않는다.
※해당 기사는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후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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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가 건강해야 근로자도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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