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못 받아 죽고, 묻힐 묘지도 없다···가자지구 보건시스템 ‘마비’

최서은 기자 2023. 10. 13. 14:4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부상을 입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병원에서 울고 있다.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공습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이 수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자지구의 보건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국제사회의 경고 목소리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전면 봉쇄’ 가자지구 붕괴 시작…“시신 놓을 곳도 없어”

13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지난 7일 하마스를 향한 반격에 나선 이후 12일까지 총 4000t 가량의 폭발물을 담은 폭탄 약 6000발을 가자지구에 투하했다고 밝혔다.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인구 밀집 지역인 가자지구가 봉쇄 조치를 당한 상황에서 이곳 주민들은 외부로 대피하지도 못하고 무차별 폭격을 당하면서 피해가 극에 달하고 있다.

식량, 전력, 구호품 등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가자지구 보건부는 12일 “보건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이 시작된 이후 가자지구의 병원들은 시신으로 넘쳐나 영안실마저 부족한 상황이다. 환자 수는 병원의 수용 능력을 훨씬 뛰어넘은 지 오래다. 병원 복도는 침상을 배정받지 못한 채 치료를 기다리는 부상자들로 가득 찼고, 거리에도 환자들이 널려있다.

공습을 당한 현장은 재와 먼지로 뒤덮여 시체와 부상자들이 잔해와 구분되지 않을 지경이라고 NYT는 전했다. 가자지구는 이제 시신을 묻을 공간조차 부족하며, 시신 가방도 부족해 여러 구의 시신을 함께 담는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공습을 피해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와 대피소 등으로 피하고 있지만, 이곳도 안전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폭탄은 병원, 학교, 모스크를 가리지 않고 가자지구 전역에 투하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부상을 입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기구 “가자지구 ‘한계점’ 도달”…전쟁법 준수, 민간인 보호 촉구

가자지구 민간인들이 처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국제사회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제사회는 하마스의 공격을 규탄하면서도 이스라엘의 가자 주민들에 대한 봉쇄 조치와 무차별 공습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특히 가자지구에 대한 포위 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스라엘이 개시한 가자지구 전면 봉쇄 전술이 국제인도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현재 가자지구의 상황이 끔찍하다며, 전면 봉쇄 이후 필수품이 위험할 정도로 부족하다고 경고했다. 유엔은 가자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2억9400만 ​달러(약 3966억원)의 긴급 모금을 호소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가자지구의 의료 시스템이 한계점에 이르렀다”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WHO에 따르면 지난 7일 공습 이후 의료진 11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당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이스라엘의 포위 공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가자지구에 물자가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구호 활동가들을 보호할 것을 촉구했다. 국경없는의사회도 가자지구 병원의 상황이 “재앙적”이라며 “전기가 없으면 병원 전체가 영안실로 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분쟁이 계속됨에 따라 민간인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스라엘에 전쟁법 준수와 과잉 대응 자제를 촉구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백란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민간인 지역에서 백락탄 사용은 평생의 고통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분쟁으로 인해 현재까지 발생한 가자지구 난민 수는 40만명 이상이다. 그러나 가자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사실상 어디에도 없는 상태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등 외부로 떠날 수 있는 통로는 모두 막혔다.

이스라엘군 “하마스 끝장낼 것…인질 풀려날 때까지 봉쇄 안풀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부상자들을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이 같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 대한 포위 공격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국민 인질들이 모두 풀려날 때까지 식량과 전력 등이 가자지구로 들어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스라엘 카츠 에너지부 장관은 12일 엑스(옛 트위터)에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이라고 쓴 뒤 “이스라엘 인질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전력, 물, 연료 등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인도주의는 인도주의자들을 위한 것”이라며 “누구도 우리에게 도덕을 설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오래 지속됐지만, 이스라엘은 이번만큼은 과거와 달리 민간인들과 군인들을 희생해서라도 하마스를 완전히 물리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분석했다. 이스라엘 관계자들은 전쟁이 장기간으로 이어지더라도 느리지만 확실하게 끝장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마스가 옆에 존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른 작전과 달리 우리는 하마스 조직의 통치와 자주권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리처드 헥트 이스라엘군 중령 역시 하마스 대원 사살 소식을 전하며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