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 따라온 아이 차마 못보내…‘자녀 30명’ 이이순 할머니 [따만사]
올해 75세인 이 할머니는 배로 낳은 자식이 5명, 가슴으로 기른 자식이 수십 명이다. 매년 명절이 되면 도회지로 떠난 이들이 할머니 집을 찾는다. 지난 추석에도 한 남매가 찾아와 할머니가 차려준 음식을 먹고 갔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살고있는 대한적십자 강원지사 봉사원 이이순 씨 이야기다. 이 씨는 1983년부터 약 40년간 지역 사회의 부모 없는 아이, 미혼모 자녀, 무연고 노인을 보살펴 왔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돼 주고, 자식이 없는 노인에게는 딸이 돼 줬다.
배고파 졸졸 따라오는 아이들 씻기고 먹여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 씨는 대한석탄공사 직원이던 남편을 따라 도계에 터를 잡았다. 한국의 대표적 광산 지역인 도계는 과거 어느 도시 못지 않은 번영을 누렸으나 한편에서는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아이들이 늘었다.
전국 각지에서 광산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모여들던 시절, 이곳에서 아이를 낳고 살림을 꾸린 이들이 나중엔 아이만 두고 떠나 버리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새로운 돈벌이를 찾으러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다른 도시로 간 후 연락이 뜸해지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눈에 걸렸던 이 씨는 하나둘 데려다가 집에서 밥을 먹여 보냈다. 길거리에서 머리와 옷이 온통 지저분한 모습으로 방황하는 아이를 씻기고 공부를 가르쳤다.
“‘밥 줄게 우리 집 갈래?’ 하면 졸졸졸 따라와요. 그 다음에는 자기 형이나 동생을 데려와요. 그러면 여기저기서 또 와요. 그래서 씻겨서 먹이면 당시 중학생이던 우리 딸(현재 53세)이 아이들 공부를 가르쳤어요.”
이 씨는 지금도 대한석탄공사가 수십 년 전 광부들의 사택으로 지은 낡은 연립 건물에 산다. 하나둘 늘어나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진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 오래된 광부 사택을 얻어 지금까지 살고 있다.
“까짓것, 숟가락 5개만 더 놓자”
젊은 시절부터 적십자 봉사원으로 활동하던 이 씨는 어느날 인근 마을에서 5남매(4녀1남)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5남매의 아버지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혼자 다섯 아이들을 키우던 어머니마저 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아이들이 졸지에 고아가 돼버렸다.
이 씨는 원주의 보육원으로 보내질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우선 집으로 데려와 먹이고 재웠다.
이중 큰아이들을 보육시설로 보내야 할 시간이 됐을 때 4살 막내(남)가 이 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아이는 “여기서 같이 살면 안 되냐”고 울며 애원했다.
세탁 시설도 변변치 않던 시절 이 씨는 하나둘 모여든 지역의 무연고 미혼모 자식들을 손수 씻기고 먹이며 길렀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거지 XX”라는 놀림을 받고 돌아오면 아이손을 잡고 놀린 친구를 찾아가 꾸짖는 억척스러움을 보이기도 했다.
“그 많은 아이들 학교 준비물을 전날 미리 챙겨주려면 보통 일이 아니에요. 남편이랑 밤새 1인당 연필을 두 자루씩 깎고 색연필이니 공책이니 다 챙겨줘야 했어요.”
이 씨가 아이들을 거두는 조건은 크게 2가지였다. ‘학교 빼먹지 말고 가기, 가출 하지 않기’였다. 여기에 한가지 더하자면 ‘용돈 벌겠다며 알바하러 가지않기’였다. 알바하겠다고 나섰다가 훗날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남기게 될까 그게 걱정이었다.
“장애 판정 없이 키워보려 버텨”
소문이 나면서 점점 식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경찰서, 관공서, 학교 등에서 무연고 아이들이 발견되면 우선 이 씨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 씨가 자식처럼 길러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보낸 아이들이 줄잡아 30명이다. 지금은 도회지로 나가 가정을 꾸리고 엄마 아빠가 된 이들도 많다.
이 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던 그 꼬마 아이는 지금 육군 중사다. 이 아이는 당시 학교에서 많이 뒤처진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장애 등급을 신청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이 씨는 “어떻게 해서든 장애 판정 없이 길러보겠다”며 끝끝내 버텼다. 아이는 이 씨의 보살핌을 받으며 뒤늦게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고 건강하게 잘 자라 군인이 됐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이 씨가 보살펴 온 독거노인, 장애인, 부랑자들도 많다. 한번은 이 씨가 기차역에서 부랑자를 데려다가 여관을 찾아갔으나 여관에서 받아 주지 않았다. 이 씨는 “사정사정해 여관에 들여보내고 그 조건으로 다음날 여관 청소를 싹 해줬다”고 떠올렸다.
사망 후 연고지가 없어 병원에서 ‘걸인’이라고 써놓은 노인을 이 씨가 사비 들여 수의를 입히고 화장해 장례를 치른 일도 있었다. 택시기사가 집 앞에 내려두고 간 장애인에게는 자립 기반을 마련해주고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수시로 반찬을 해서 찾아가고 있다.
기자가 추석 연휴 다음날인 지난 4일 인터뷰 차 이 씨를 만나 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다른 테이블 손님이 밥값을 대신 계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유를 묻자 그 손님은 “장애가 있는 동생이 어린시절 할머니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했다. 우연한 만남이었다. 이 씨 조차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만학도 사회복지사 도전…‘3대 봉사 명문가’
이 씨는 2003년 무렵 지역 아동센터를 세워달라는 시 당국의 권유를 받았다. 다문화, 한부모, 장애인 가정 등의 아이를 보살피는 시설이다.
문제는 이 씨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50대 후반이던 이 씨는 만학도 사회복지사에 도전했고, 이를 위해 서울 서대문구 명지대까지 매일 새벽밥을 먹으며 첫 기차와 마지막 열차를 타고 등하교했다.
나이가 들어 현재는 그의 둘째 딸 김현미 씨(54)가 대를 이어 아동센터를 운영해 오고 있다. 김 씨는 중학생 때부터 엄마가 밥을 먹이려 불러온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님’ 역할을 했다.
2010년 대한적십자회 삼척지구 제7대 회장을 역임한 이 씨는 대통령 표창, LG의인상 등을 받았다. 이 씨는 물론 딸 김현미 씨와 손녀 2명까지 3대가 적십자 봉사원이다. 2015년 제 68회 세계적십자의날을 맞아 대한적십자사는 ‘3대 봉사 명문가’ 명패를 수여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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