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정원 점검 이어 과기부 특감 받는 항우연, 발사체 기술이전이냐 유출이냐 전문가들도 이견
“기술유출·이해충돌 감사로 이직자 압박”
항우연 남는 연구자들 2조 들인 연구 평가절하, 기술 유출 염려
‘뉴스페이스’ 태동한 미국에선 연구자 기업 이직 활발
항우연 “첫 대량 이직인 만큼 첫 단추 중요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국형발사체 기술유출 우려를 이유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대한 특정감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4일 시작된 노동조합 관련 특정감사와는 별개로 이뤄지는 감사다. 이번 감사는 최근 일부 직원들이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기술이 정부 감독이나 이전료 협상 전에 기업쪽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우려한 데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항우연에 일각에선 기술유출로 프레임을 몰아가는 건 민간 기업 육성을 표방하며 뉴스페이스를 내세우는 정부의 입장에 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3일 과학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항우연에서 민간 우주 기업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기술유출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항우연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포함해 민간 우주 기업으로 이직을 준비하는 연구원은 수십 명 규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자리를 옮기는 조광래 전 항우연 원장 외에도 13명의 연구원이 한화그룹으로 이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와 합작해 개발한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소형위성발사체 나로호와 국산 첫 우주발사체인 누리호 개발을 담당한 연구원들로 4분기 중에 한화로 이동해 그동안의 개발 경험을 기반으로 발사체 개발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고도화사업의 체계종합기업에 선정된 기업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근무경험을 가진 임직원들이 미국을 포함해 세계 우주기업에 포진해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이동은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게 산업계의 시각이다.
문제는 과기정통부와 항우연에 남는 연구자들이 연구 인력의 이탈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항우연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화로 이적하는 연구 인력은 주로 나로호와 누리호를 주도한 팀장급 이상 인력들로 이들의 이적으로 그간 적체돼 있거나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 있었던 항우연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이적 계획이 있는 연구자들이 연구 성과를 담은 정보를 별도로 보관하려는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발견되면서 한화와 발사체 기술료 협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불필요한 보안 문제에 불거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민간 기술 이전도 중요하지만 국가 세금으로 개발된 기술이 한 기업에 제값을 받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기정통부도 색깔이 좀 다르긴 하지만 부정적인 기류가 포착됐다. 과기정통부에선 차세대 발사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린 가운데 인력이 빠져나가 기술 개발 역량이 약화하거나, 한화와 차세대 발사체 체계종합기업 경쟁을 벌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사업자 입찰 과정에서 항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표면적으로는 ‘기술유출’을 문제 삼고 있다. 항우연 이직자들은 이미 국가정보원에서 산업기술 유출과 관련해 감사를 받은 데 이어, 지난달 중순부터는 과기정통부의 특정감사를 받았다. 지난달 4일부터 노동조합 관련 사안으로 착수한 특정감사와 별개로 기술유출 사안만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특정감사다.
앞서 국정원이 진행한 감사에서는 별다른 지적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오히려 과기정통부는 기술유출 의심이 있다며 4건에 대해 대상자에 경고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경고 조치에 따른 별도 징계는 없었다.
항우연 측은 과기정통부 특정감사와 이해충돌 고지는 다수의 연구원이 한 번에 이직한 사례가 처음인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실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우연 관계자는 “지난달 4일 시작된 감사와는 별개로 조광래 전 원장의 한화로의 이직이 공식화된 이후 기술 보안과 관련된 감사를 과기정통부에서 실시했다”며 “항우연도 정부출연기관법에 명시된 비밀 유지의 의무를 설명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출연연구기관 종사자는 비밀 유지 의무가 복잡하게 있기 때문에 이직자에게 잘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로 안내한 것”이라며 “항우연에서 대량의 이직자가 나온 것이 처음인 만큼 과기정통부 감사는 앞으로 많아질 이직자들을 어떻게 관리할지 첫 단추를 끼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항우연에서도 민간 기업 이직자들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항우연은 ‘내부에서 법률자문을 받아 검토한 결과, 민간기업 이직과 관련해 이해충돌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이직자들을 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법적으로 항우연 연구자가 민간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서초동의 한 특허 전문 변호사는 “이해충돌과 기술유출은 공개되지 않은 영업비밀에만 한정된 것인데다 기술이전은 법인과 법인 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에 근로자 개인이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며 “이해충돌이나 기술유출로 근로자에 대한 이직의 자유를 제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한 우주 업계 관계자는 “경고 조치를 하고 아무런 징계가 없었다는 건 실제 문제는 없지만 정부 입장에서 이직이 불편하다는 메시지를 항우연에 주기 위한 것”이라며 “뉴스페이스하라더니 정부가 태클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한화로 이직을 결정한 한 항우연 연구원은 “정부에서 ‘우주 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고 뉴스페이스 시대를 견인한다고 공표했는데, 오히려 과기정통부가 이해충돌과 기술유출이라며 감사로 압박하고 방해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기술이전을 이해충돌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산업체에 대한 기술이전은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항우연 고위 관계자는 “아무리 항우연 전문가들이라해도 민간 기업으로 맨몸으로 그냥 옮긴다고 로켓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발사체 개발에 필요한 기술이나 소프웨어 같은 것도 쓸 수 있게 해야 민간기업에서 속도감 있게 경쟁력 있는 발사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독보적인 우주 강국인 미국에서는 기업이 미 항공우주국(NASA) 인사를 영입하는 경우가 많다. 스페이스X는 올해 5월 NASA의 유인 우주 비행 프로그램 최고책임자였던 캐시 루더스를 영입했다. 민간 우주정거장을 개발하고 있는 미국 액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도 NASA 출신들이 대거 포진한 기업이다.
한화 측이 발사체 기술 이전 대가로 정부에 내는 기술료 수준에 따라 문제는 커질 수도 잦아들 수도 있다. 항우연과 한화는 일시불 150억원과 경상기술료 90억원, 총 240억원 수준으로 누리호 기술이전료를 협상하고 있었다. 현재는 누리호고도화사업단장이 박종찬 단장으로 바뀌면서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기존에 협상된 금액을 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한국형발사체 개발에 모두 1조9572억원의 세금을 썼다.
이전료에 대한 과기정통부와 항우연 내 인식도 크게 엇갈린다. 일부는 발사체 기술을 가져가 봤자 기업이 새로 해야하는 게 많아서 규모가 크지 않다는 입장을, 반대되는 측에선 “2조원 세금으로 확보한 기술이 그렇다면 돈도 얼마 받지 못할 수준이라고 자인하는 것인가”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 정권에 따라 프레임을 잡아 해석하는 한국적 상황에 따라서는 발사체 기술 이전료 적정성 문제를 두고 향후 얼마든지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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