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신임 사장 후보에 박민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노조 “이사회가 부적격 인사 무리하게 임명 제청”
KBS 이사회가 석연치 않은 재투표 과정 끝에 박민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60)을 제26대 KBS 사장으로 임명 제청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지 이틀 만에 사장 임명 절차를 강행하며 방송장악 시도를 이어간 것이다. 민심의 쇄신 요구에도 불구하고 ‘불통’ 국정 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KBS 노동조합은 “부적격 인사가 제대로 된 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임명 제청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KBS 이사회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임시이사회를 열고 표결을 거쳐 박 전 논설위원을 최종 후보자로 결정했다. 이사회가 KBS 사장 임명을 제청하는 공문을 인사혁신처로 송부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이날 이사회에서 야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사 다섯명(김찬태·류일형·이상요·정재권·조숙현)은 지난 4일 투표에서 후보가 최종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모 절차가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여권 이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권으로 분류되는 서기석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여섯 명이 사장 후보 임명 제청을 강행하면서 야권 이사들은 이에 반발해 전원 이사회에서 퇴장했다.
앞서 KBS 이사회는 사장 후보 공개모집에 응한 12명을 대상으로 서류 심사를 실시했으며, 박 후보자와 최재훈 KBS 부산방송총국 기자, 이영풍 전 KBS 신사업기획부장 3명으로 후보를 압축한 바 있다. 이어 지난 4일 이사회에서 이들 세 사람 가운데 최종 후보를 정하기 위한 표결을 진행했지만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았다.
원칙대로라면 박 후보자와 최재훈 기자를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 이사장이 결선 투표를 이틀 뒤 진행하겠다고 밝히자 야권 이사들은 바로 투표를 해야 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야권 이사들은 당시 결선 투표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공모 절차가 무효화됐다며 재공모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여권 측인 김종민 전 이사가 사퇴하면서 여권과 야권 이사의 수가 5대5 동수가 됐으나 지난 11일 대통령이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를 보궐이사로 임명하면서 다시 여권 우위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 전 기자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막말을 했던 인물로, 2020년 KBS 보궐이사에 추천됐다가 낙마했던 인물이다. 박 후보와 함께 결선 투표 대상에 올랐던 최 기자는 후보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 후보자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1991년 문화일보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장과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거쳤다. 최근 문화일보에서 사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후보자는 이사회 직후 낸 입장문에서 “KBS가 국민의 신뢰를 상실해 TV 수신료 분리 징수, 2TV 재허가 등 여러 위기에 직면한 만큼 빠른 시일 안에 철저히 혁신해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며 “사장에 공식 취임하면 혁신 방안을 국민에 소상히 밝히겠다”고 했다.
야권 이사들과 KBS 노동조합은 절차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번 임명 제청이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야권 이사들은 이사회 직후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후보자 임명 제청이 무효임을 주장하면서 서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방송 문외한인 데다 경영 능력도 확인받지 못한 박민씨가 사장으로 임명 제청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며 “오는 18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서 이사장의 해임안을 안건으로 논의하자고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이날 성명에서 “KBS 이사회가 박민이라는 윤석열 정권 낙하산 후보의 임명이 불투명해지자 자신들이 세운 원칙마저 무시해가며 사장 임명을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이어 “이번 사장 선임절차는 윤석열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야욕에 이사회가 적극 가담해 벌인 더러운 정치적 야합이나 다름없다”며 “이는 이미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을 대법원 판례마저 무시하는 무도한 방식으로 해임한 이후, 대통령이 원하는 ‘친윤 낙하산 사장’을 내려 꽂기 위해 군사작전하듯 밀어붙일 때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어 “졸속 선임을 강행한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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