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R&D 예산안' 국민 공감 얻지 못하는 이유

윤현성 기자 2023. 10. 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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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 지난 11일 진행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이날 국감에선 정부의 내년도 R&D 예산 삭감안이 뜨거운 감자였다. 이날 R&D 예산 삭감 당위성을 따지는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는 과정에서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눈물까지 보였다. 정부의 R&D 예산 삭감으로 신진 연구자 인건비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서다.

이 장관은 "후배 과학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다. 제가 감히 어떻게 문제가 생기게 하겠냐"고 답하다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눈물이 나는 것 같다. 미래세대가 제대로 살아갈 경쟁력 있는 나라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입각 전 연구자로 한평생을 일해왔다. 3차원 반도체 소자 분야에선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다. 그런 만큼 국내 연구계 현실과 과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감장에서 그의 눈물이 진심에서 우러나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과학계와 후배 연구자들에 대한 애정을 몰라보는 것에 대한 속상함이 컸을 것이다.

내년도 R&D 예산 조정안을 둘러싼 갈등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말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나눠먹기식 R&D 예산 혁파'를 지시한 후 과기정통부가 내놓은 예산 재조정안을 두고 과학기술계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이번 주 진행된 과기정통부 대상 국정감사에서도 가장 뜨거운 현안 쟁점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재정전략회의 이전 짰던 과기정통부의 예산안 초안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일제히 성토했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과기정통부가 국민에게 더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기정통부는 예산 재조정 작업을 거쳐 내년도 R&D 예산을 올해보다 약 10.9%나 줄였다. 1991년 이후 IMF 위기, 코로나 등을 거치면서도 한번도 깎이지 않았던 R&D 예산이 32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든 것이다. 과학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중장기적인 국가 핵심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과기정통부의 곤혹스러운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직접 지시가 있었던 만큼, 명확한 정해 실행 결과를 내놔야 한다.

국가 R&D 예산이 매년 늘어나는 과정에서 '눈 먼 예산 배정' 논란이 반복돼왔던 것도 사실이다. 기존 주먹구구식 예산 분배 대신 보다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쓰는 '비효율의 효율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연구계 내부에서도 존재했다. 과기정통부가 내세운 명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번 정부의 예산 재조정 취지와 내역이 과학계와 국민들에게 제대로 공감을 얻었는지는 의문이다.

과기정통부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국가전략기술을 비롯한 미래 핵심기술, 미래 세대를 위한 신진연구자 지원, 원활한 기술 개발을 위한 국제협력 등을 위한 예산은 유지하거나 더 늘렸다고 했다. 특히 R&D 예산을 삭감하면서 가장 중요한 미래 세대 지원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과기정통부는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이번 주만 해도 정부 출연연구기관과 4대 과학기술원에 속한 신진연구자 2만여명에 대한 지원을 줄이지 않겠다는 보도자료를 연이어 배포했다. 과학계와 릴레이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논란은 그치지 않았던 이유는 명확하다. 정해진 예산에서 비효율적인 예산 배분이 문제라면 이를 효율화하면 될 일을 굳이 전체 예산규모를 줄어야 했는지 공감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전체 예산 삭감액을 먼저 정해놓고 끼워맞추기 식으로 재편성하다 보니 졸속 논란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게 과학계의 시각이다.

정부가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불식시키기 위해선 어떤 정책적 판단과 근거로 R&D 예산을 재설계한 것인지 보다 진솔하게 현장과 소통하고, 필요하다면 초기 잠정예산안과 이후 개정안의 세부적인 변동 내역까지 공개할 필요가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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