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 혼돈의 시기에 친구 찾는 건 당연한 일”
‘한국: 남과 북의 새로운 역사’ 출간
70년에 걸친 남북 역사 비교 서술
“국제 정세가 한·미·일 협력 추동해”
“이제 한국을 잘못 이해(misunderstood)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더 많이 이해돼야 할 뿐이다.”
미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인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겸 조지타운대 교수와 라몬 파체코 파르도 킹스칼리지 런던대 교수가 의기투합해 책 ‘한국: 남과 북의 새로운 역사’를 펴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역사와 미래 비전의 환상적인 혼합”이라 평가한 이 책은 1945년 해방 직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약 70년에 걸친 남과 북의 역사를 비교 서술하고 있다.
90년대 후반 워싱턴포스트(WP) 기자 출신인 돈 오버도퍼가 쓴 ‘두개의 한국(The Two Koreas)’ 이후 “한국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너무 오랫동안 없었다”는 게 두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이었다. 차 교수는 미 조야의 대표적인 외교·안보통이고 파르도 교수는 유럽의 한국학 전문가다. 서로 다른 강점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은 1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공동 저술을 통해 서로에게 배우는 것이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파르도 교수는 “지금 한국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의 90%가 블랙핑크·BTS로 대표되는 K팝을 통해 유입된다”며 “유럽에서 독자들과 만나보니 모두 K팝 얘기밖에 안하더라”고 했다.
7개 목차에 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은 일본의 식민지배 같은 한국사의 논쟁적인 주제도 비교적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많은 논쟁이 있지만 한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너무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차 교수는 이를 ‘양날의 검’으로 표현하며 “일본이 100% 자국 이익을 위해 한 일들이 많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의 발전에 도움을 준 잔여 효과(residual effect)도 있었다”고 했다. 1965년 체결돼 국내 반대가 상당했던 한일협정에 대해서도 “한국 경제 발전의 기원(genesis)가 됐다”고 했다.
‘남과 북은 어떻게 서로 다른 길(diverging path)을 가게 됐나’도 책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 중 하나다. 6·25 전쟁 이후 60~70년대만 하더라도 식민 지배 시대의 인프라가 남아있고 중국의 지원을 업은 북한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앞설 것이란 게 미 정보 당국의 관측이었다. 이 같은 전망은 보기 좋게 틀렸는데 두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이 취한 서로 다른 정책을 제1의 요인으로 꼽았다. 파르도 교수는 유럽 정상들이 잇따라 한국을 방문해 반도체 공장을 찾는 것을 언급하며 “한국이 갖는 가치가 그만큼 커졌다”라며 “19세기 말에는 열강들이 한국을 경쟁자의 손에서 뺏기 위해 한반도를 놓고 다퉜지만 지금 한국은 절대 큰 나라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차 교수는 “올해로 동맹이 70주년이 됐는데 안보 뿐만 아니라 반도체·양자·인공지능(AI) 분야에서 미국이 한국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보라”고 했다.
이날 현장에선 북·러 군사 협력 등 현안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차 교수는 “2019년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 외교에서 망신을 당한 김정은은 레거시가 필요했는데 30년 전 자국을 버린 러시아(구 소련)가 와서 접대하고 읍소하니 스스로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정은 방러 직후 북·러 접경지대에서 교통량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북·러 간 모종의 거래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반대 급부에 대한 확증 없이 러시아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차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 구상과 한·미·일 협력 강화 관련 “한국은 지난 3년간 쿼드·IPEF 같은 흐름에서 완전히 소외돼 있었는데 전쟁으로 달라진 외부 환경이 한국의 외교를 추동하고 있다”며 “세상이 혼란스러운데 뜻이 맞는 친구를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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