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의 산썰(山說)] 16. 심산계곡에 녹슨 철도 레일이 남겨진 이유

최동열 2023. 10. 1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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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산림철도 잔재

-소나무 반출 위해 협궤 열차 궤도 가설
-백두대간보전회에서 제거 운동 벌이기도

▲ 백두대간보전회 회원들이 삼척 덕풍계곡에서 일제가 임목 수탈용으로 설치한 산림철도 잔재를 제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편 15회에서 ‘협곡 트레킹의 지존’이라고 소개한 삼척시 가곡면 덕풍계곡을 탐방하다 보면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계곡의 하천변 바닥 등지에 길쭉한 막대 모양의 녹슨 쇠붙이가 삐져나와 있는 흉물스러운 모습을 군데군데에서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덕풍계곡은 소개한 그대로 심산유곡이다. 강원도와 경상북도가 경계를 이루는 응봉산 심심산골에 자리 잡고 있다. 덕풍계곡을 품고 있는 삼척 남부권과 울진 지역은 아직 그 흔한 고속도로나 철도 교통망도 없기 때문에 외지에서는 지금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더구나 가곡면 소재지에서도 덕풍계곡까지 들어가는 진입로가 자동차 교행이 어려운 외통수 길인 데다, 계곡 그 자체도 길이가 편도로만 무려 9.9㎞에 달해 왕복 종주 탐방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덕풍계곡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바위산 병풍에 둘러싸인 협곡이기 때문에 비상시 옆으로 빠질 수 있는 샛길도 없다. 계곡 내 이동도 벼랑을 타고 개설된 잔도를 이용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울진 덕구온천에서 응봉산 정상(998.5m)을 밟은 뒤 이곳 덕풍계곡으로 하산하는 탐방객들이 종종 조난사고를 당하는 것도 응봉산과 덕풍계곡이 비경을 품고 있지만, 그만큼 험한 별유천지이기 때문이다.

▲ 삼척 덕풍계곡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산림철도 잔재.

그런 깊은 심심 산골짜기에 무슨 연유로 녹슨 쇠붙이가 남겨져 있는 것일까. 답을 말하자면, 쇠붙이는 과거 일제강점기에 덕풍계곡에 놓였던 산림철도 궤도의 잔해다. 일제는 선박용 등으로 목재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우리 땅 곳곳에서 질 좋은 소나무 등을 베어 반출하면서 이곳 덕풍계곡 용소골에도 흡사 탄광의 화차를 연상케 하는 운반용 협궤 열차 궤도를 가설했다. 1939년에 가설된 산림철도는 인근 원덕읍 호산리 해변까지 길이가 41km에 달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덕풍계곡이 있는 삼척, 울진과 경북 봉화지역 등은 예로부터 질 좋은 금강송이 많은 소나무 고장으로 유명했다. 울진 소광리는 조선시대 국유 봉산(封山)으로 금표(禁標)를 설치, 속이 누런 황장목(黃腸木)을 함부로 베지 못하도록 한 곳이기도 하다.

일제는 가곡면 일원의 응봉산과 광배산, 삼방산, 복두산 등 금강소나무 군락지에서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낸 뒤 궤도 열차를 이용해 원덕읍 호산항 저목장까지 운반, 선박을 통해 반출해 간 것으로 기록 또는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덕풍계곡에 남아 있는 쇠붙이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 구석구석까지 가리지 않고 자행된 자원 수탈의 현장을 보여주는 증거 잔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후에도 대규모 산판이 벌어지면서 한동안 그대로 활용된 철도는 이후 부서진 채 방치되다가 1959년 우리나라를 초토화한 사라호 태풍 때 상당량이 계곡 땅속에 묻혔으나 지난 2002년과 2003년에 연이어 발생한 태풍 루사와 매미 피해로 인해 다시 부분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세인들의 주목을 끌게 됐다.

▲ 삼척 덕풍계곡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산림철도 잔재.

일제 잔재인 산림철도 레일이 산림유전자원보호림인 덕풍계곡에 쇠말뚝처럼 박혀 우리 땅 비경에 상처를 입히자 지난 2010년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환경보호단체인 백두대간보전회에서 철도 석축이 남아있는 일부 지역은 복원해 교육 현장으로 활용하는 한편 계곡에 매몰·훼손돼 환경을 해치는 레일은 제거하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도 했으나, 아직도 계곡에는 쇠붙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국권 상실과 영토 침탈의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 사람뿐 아니라 자연도 얼마나 많은 신음을 했는지,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하는 덕풍계곡에 깊숙이 박혀있는 쇠붙이를 통해 새삼 실감하게 된다. 덕풍계곡 트레킹은 그래서 고난의 행군이되, 오지의 자연이 보여주는 경이로움과 그 속에 배어 있는 아픈 역사로 인해 감동과 애잔함이 각별한 여정이다.

한편 산림청은 지난 2020년 덕풍계곡 일원을 ‘국가 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 일제강점기 임목 수탈의 역사와 산림 자원의 중요성을 교육·생태·문화적으로 되새기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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