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념은 국가 근본·미래 방향 정하는 이정표” [헤경이 만난 사람-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논쟁서 적극 의사표현은 장관 책무
싱크탱크 ‘보훈정책개발원’ 추진도
거침이 없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뉴스메이커’다. ‘이승만기념관’, ‘백선엽 장군 동상’, ‘정율성 기념사업’ 등 현대사와 직결된 민감한 이슈 한복판에는 늘 박 장관이 자리하고 있다.
의제뿐이 아니다. 박 장관은 국가보훈처의 보훈부 격상, 그리고 미국·일본·독일·네덜란드·룩셈부르크 방문 등 전례없이 활발한 보훈외교를 통해 대한민국 보훈의 지평을 이전과 다른 수준에서 질적, 양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10일 서울 용산 보훈부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박 장관을 만났다.
▶ “논쟁에서 적극적인 의사 표현은 장관의 당연한 책무”= “한 부처의 장관으로서 대한민국과 정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일각에서 역사전쟁·이념전쟁에 앞장선다는 지적이 있다는 얘기에 돌아온 박 장관의 반문이었다.
박 장관은 “보수가 그동안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의사 표시를 하는 데 있어서 주눅이 들어 있었다”며 “좋게 말해 게을렀던 것이고, 안 좋게 말하면 눈치 보는 것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하다 지금 역사가 엉망이 됐고, 나라의 방향도 이상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장관을 임명할 때는 자기가 맡은 부분에선 장관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라며 “논쟁적인 부분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개인 차원을 떠나 장관으로서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와 이념은 공허한 탁상공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방향성이나 철학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특히 실제 국민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광주시 등 6개 기관을 대상으로 사업 일체의 즉각 중단과 기존 사업의 빠른 시정조치를 권고한 ‘정율성 기념사업’과 관련해선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대표적 사례”라며 “역사와 이념은 학자들의 단순한 논쟁뿐 아니라 국가의 근본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실질적이고 사활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서 대한민국의 적을 기념하는 사업을 막지 못한다면 장관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정율성 기념사업 철회에 장관직을 걸겠다는 의지까지 내비친 바 있다.
박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한국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이라 할 수 있는 병역문제와 직결되고, 문화·예술·체육계 등의 반론이 예상되는 아시안게임 병역특례 문제와 관련해서도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잘라 말했다.
아시안게임 입상에 따른 병역특례가 마치 군 복무라는 ‘짐’을 덜어주는 ‘혜택’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군 복무에 따른 장병들의 자부심과 사명감 고취, 그리고 공정성과 형평성 차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체육요원 병역특례는 한국의 경제력과 스포츠 경쟁력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했던 50년 전인 1973년 도입됐다. 아시안게임의 경우 지난 1990년부터 금메달 수상자만 해당된다. 이들은 3주간 기초군사훈련과 본인활동 분야에서 544시간의 사회공헌활동만 끝내면 군 복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박 장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부친을 ‘친일파’로 지칭했다며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데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제 발언은 백선엽 장군이든 문 전 대통령의 부친이든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모든 이에겐 같은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이었다”며 “이번 기회에 누가 친일이냐가 아니라 무엇이 친일이고 무엇이 애국인지에 대해 생산적인 논의를 통해 우리 사회에 보다 더 성숙하고 미래지향적인 역사관이 자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박 장관에게선 옳은 방향이라면 눈앞에 인기에 영합하거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굳건히 밀고나가야 한다는 결기와 의지가 짙게 묻어났다.
▶보훈정책 총괄 싱크탱크 ‘보훈정책개발원’ 설립 추진=이와 함께 박 장관은 보훈의 수준이 곧 그 나라의 수준이라며 대한민국이 보다 성숙된 보훈문화를 갖춰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먼저 보훈처의 부 격상 이후 달라진 변화에 대해 “보훈부로 격상되고 의전서열도 19번째가 아닌 9번째가 된 것은 그만큼 보훈이 중요하다고 이번 정부가 인정한 것”이라며 “이러한 위상 변화는 고스란히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국가유공자 분들의 자긍심 제고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가유공자 분들은 보훈 담당 부처의 위상과 자신들에 대한 예우 정도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1961년 군사원호청 창설 이래 장관급과 차관급을 오가며 부침이 있었던 지난 62년 동안 아무리 좋은 보훈정책을 내놓고 혜택을 확대해도 국가유공자 분들이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보훈정책 연구와 콘텐츠 개발을 위한 독립기관으로 ‘보훈정책개발원’ 설립도 추진중이다.
박 장관은 “격상된 위상에 걸맞은 정책능력을 갖추고 미래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보훈정책 연구와 개발을 총괄할 싱크탱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개발원이 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개발원 설립 내용을 담은 국가보훈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논의중”이라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설립 추진단 및 자문위 구성·운영을 거쳐 내년에는 설립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박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보훈부 승격 법안 서명식에서 말씀하신 ‘보훈문화는 곧 국격’이라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이것이야말로 세계 10대 강국 반열에 걸맞은 대한민국의 내적 가치를 형성해 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장기적인 차원에서 ‘보훈은 엄숙하고 딱딱하다’는 국민 인식을 깨고 일상 속에서 가깝고 친근하게 보훈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그간 무거운 보훈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보훈문화를 확산해 나가겠다. 국민들의 많은 동참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끝으로 박 장관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과 함께 ‘스타 장관’으로서 내년 총선 차출론이 거론되는 데 대해 “지금 국정감사도 있고 예산국회도 있고 아직 언급할 때가 아니다”면서 “올해 안에 마무리해야 할 것들을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선거에 떨어져봐서 아는데 유권자들의 ‘니즈’(요구)가 중요하다”며 여운을 남겼다.
신대원·오상현 기자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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