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고립' 외교전에 이란 저항…중동전쟁 일촉즉발(종합)
'확전 방지' '이란 고립' 나선 美
이란 반발…"'저항의 축'서 대응"
40년만의 5차 중동전쟁 발생할까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뉴욕=김상윤 특파원] 미국이 중동전쟁 확전을 막기 위한 외교전에 본격 돌입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스라엘 외에 중동 각국을 돌면서 ‘하마스 고립 작전’에 나섰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응해 가자지구에서 지상 작전을 펼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식으로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지으려는 의도로 읽힌다.
다만 ‘하마스 배후설’로 도마에 오른 이란은 강력 반발했다.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포위를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맞대응을 예고해 파장이 예상된다. 자칫 제5차 중동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확전 방지’ ‘이란 고립’ 나선 美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블링컨 장관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 “이스라엘은 스스로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만 미국이 존재하는 한 결코 그럴 필요가 없다”며 “미국이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옆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 주목 받는 것은 블링컨 장관이 하루 뒤인 오는 13일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을 만난다는 점이다. 아바스는 하마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행보를 보여 왔다. 블링컨 장관이 아바스와 접촉한다는 것은 하마스를 보통의 팔레스타인 정파들과 분리해 고립 시키겠다는 의도다. 블링컨 장관은 이후 이후 요르단,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등을 잇따라 순방할 예정이다. ‘맹방’ 이스라엘을 대신해 중동 주요국들을 만나면서 이스라엘의 하마스 봉쇄 정당성을 설파하고 하마스 배후라는 의심을 받는 이란까지 고립 시키겠다는 일환으로 풀이된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를 통해 각국이 분쟁의 확산을 막는데 힘을 보태기를 촉구할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더 평화롭고 번영하고 안전하고 통합된 지역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다만 조 바이든 대통령의 언급대로 전쟁법 준수를 또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전 개시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가자지구 내 민간인들이 대피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가능한 한 국제법, 인도주의법, 전쟁법을 존중하고 준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블링컨 장관에 이어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역시 13일 이스라엘을 찾아 네타냐후 총리를 만난다. 그는 이스라엘 측과 논의를 통해 군사 작전 계획을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세계 최대 핵 추진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함을 비롯한 항모 타격단 을 전진 배치하는 등 이스라엘을 향해 군사 지원을 강화해 왔다.
미국 외에 유럽 국가들도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은 13일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영국은 동지중해로 해군 함정과 정찰기 등을 보내기로 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성명을 통해 “동맹국들과 함께 세계적인 수준의 영국 군대를 배치해 추가 확전 방지 노력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반발…“‘저항의 축’ 대응”
다만 이번 충돌이 서방 진영의 계획대로 흘러갈 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하마스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이란의 저항이 거세다.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이날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도착해 기자들과 만나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물과 전기를 끊고 팔레스타인 주민을 쫓아내는 것은 전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전쟁 범죄가 이어질 경우 ‘나머지 축’(the Rest of the Axis)으로부터 대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의 발언은 이스라엘이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은 직후 가자지구를 향해 엿새째 공습을 퍼붓는 와중에 나온 것이다. 이날 방문에는 레바논 당국자 이외에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PIJ) 대표단이 나와 아미르압둘라히안 장관을 환영했다. 이란은 중동 지역의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이다. 레바논에 근거를 둔 헤즈볼라 역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 정파다. 이란은 서방 진영에서 제기하는 하마스 배후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그만큼 중동 지역에서 존재감이 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미르압둘라히안 장관은 나머지 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이를 ‘저항의 축’(the Axis of Resistance)으로 명명하면서 이란과 시리아,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들 등을 거론했다. 이란 주도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동 세력이다. AP통신은 아미르압둘라히안 장관은 헤즈볼라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아미르압둘라히안 장관은 “전쟁 범죄가 계속되는 국면에서는 또 다른 전선 형성이 정말 가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자지구를 포위한 이스라엘이 지상군까지 투입할 경우 또 다른 중동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경고로 읽힌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최악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1973년에 이어 40년 만에 제5차 중동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는다.
아미르압둘라히안 장관은 앞서 이라크를 방문해 모하메드 시아 알-수다니 총리와 회담한 자리에서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민간인에게 폭탄을 터트리고 전쟁 범죄를 저지르면서 응징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된다”고 경고했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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